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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차선령 Feb 12. 2024

7. 사과 살려!

애들 앞에선 찬물도 못 마신다

교대 시절, 첫 교생실습에서 1학년 대표 공개수업을 맡았다. 50까지의 수를 배우는 차시였다.

실습학교였던 부설초뿐 아니라 인근 학교 선생님들, 교대 교수님들까지 참관 대상이라 부담되었지만, 밤새 시나리오를 외워가며 알록달록 교구 준비하는 열정을 분출했다.

당일, 순조롭게 진행되었고 마지막 활동만 남았다.

50까지의 수가 적힌 사과 모양 수모형을 책상 위에 펼치고 선생님이 부르는 수가 적힌 사과를 찾아 높이 드는 활동이었다.

수를 빠르고 정확하게 찾으려 눈을 동그랗게 뜨고 집중하는 아름다운 모습이 그려졌다.


나는 뭉클함을 가라앉힌 후 단호한 어투로

여러분, 마무리합시다.  
사과를 모아
자기 책상
오른쪽에 놓으세요.

내 책상 오른쪽을 손바닥으로 ‘쿵쿵’ 큰 소리가 나게 치고 크게 손짓하여 모은 사과를 과장된 동작으로 ‘탁’ 놓았다.

제발 꿈이었으면 하는 일이 벌어졌다.

30명 아이들이 일제히 일어서 사과 모형 50개를 들고 모두 ‘내 책상’으로 진격하는 것이었다.


나를 향해 달리는 아이,

빨리 가는 친구 옷을 잡아끄는 아이,

가방끈에 걸려 넘어져

사과를 바닥에 모두 놓친 아이,

사과 몇 개가 사라졌다며 날 애타게 부르는 아이……

수업은 시간 내 마무리 하지 못했고, 내 책상 위에는 사과 1000여개가 널부러졌다.

이후 자다가도 벌떡 일어나 내 책상을 친 내 손을 원망하며 여러 밤을 지샜다.

‘가을길’ 노래를 가르치는데 내 기침소리까지 따라 부르는 우리반을 보니 잊었던 기억이 떠올라 아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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