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차선령 Mar 02. 2024

17. 엄마를 숨겨야 하는 교실

실패한 공개수업

방학에는 발령을 앞둔 신규 선생님, 교직경력이 3년이 되어 1급정교사 자격을 받으실 선생님들과 학급살이를 나눌 자리가 많다. 전남에 발령받은 2년차 공개수업 이야기를 해드린다.


평화로운 마을, 순수한 학생들.

그러나 사람이 그립고 사랑이 고픈 곳.

그 상처를 보듬는 역할까지 해야하는 학교.

우리반 학생 5명 모두 사정은 달랐지만 할머니께서 키우고 계셨다.


참 난감했다.

1학년 국어 교과서 맨앞부터 어머니, 아버지라는 단어를 읽고 써야 했으니 말이다. 우리반 활동지를 따로 만들어 어머니, 아버지 단어를 최대한 숨기며 수업했다.


1학년 통합 교과서에는 <가족>단원이 있다. 우리 가족과 행복했던 경험을 표현하는 공개수업을 계획했다.


동기유발 단계에서 선생님의 가족, ‘할머니와 나’의 추억을 소개했다. 우리 할머니 사진을 보면서 내 이야기에 쏙 빨려들었다.


“‘이놈 할머니’라고 불렀어.

선생님이 잘못하면 무섭게 ‘이놈~’하고 부르셨거든.

혼내고 나선 다락방에서 모나카과자를 꺼내주셨지.“


선생님 할머니는 지금 어디에 있어요?”


나는 당황했다.


“음, 돌아가셨어. 하늘나라에 계셔.”


아이들은 갑자기 패닉에 빠졌다.


우리 할머니도 하늘나라로 가요?“


”음, 사람은 누구나 나이가 들면 죽는단다.“


우리 할머니 죽으면 나는 누가 지켜줘요?“



우리반은 순식간에 울음바다가 되었고 나는 그 울음을 멈출 수 없었다.


나는 꾸역꾸역 활동을 유도했지만 아이들은 꺽꺽 울음을 참는 소리만 내고 아무 반응도 하지 않는다. 수업목표를 도달하지 못했고, 울음소리로 가득찼던 공개수업은 그렇게 끝났다.


공개수업을 실패한 날, 밤새 그 수업을 다시 구상했다. 할머니와 행복하게 오래 살기 위한 다짐을 하는 수업으로.


그날 이후 내 역할을 다시 세웠다. 그 아이들을 굳세게 키우기로 했다. 스스로를 단단하게 지킬 수 있도록. 두려워 했던 일을 마주 하더라도 무너지지 않게.


당연하게만 생각했던 일이 누군가에게는 당연하지 않을 수 있다.

선생님도 선생님이 처음이라 시행착오를 겪으며 누군가를 세심하게 채워줄 길을 찾아 간다.

이전 16화 16. 입술은 몇 개?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