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 몰타에서의 승마 그리고 트레킹
예전부터 승마를 해보고 싶었다. 운동 신경은 없지만, 말은 한 번쯤 타보고 싶었다. 그래서 몰타에서 승마 체험을 하기로 했다. 몰타의 승마 체험은 실내가 아니라 바다가 보이는 돌길에서 이루어진다. 메일로 예약 신청을 하고 당일날 호주에서 태어나 수영도 잘하고 승마 경험도 많은 옆집 언니와 함께 골든베이에 위치한 승마장으로 향했다. 언니와 나 이외에 독일에서 온 모녀도 같은 날, 같은 시간에 체험을 하게 되었다. 간단한 인사를 나누고 우리는 말에 올라탔다. 나를 태운 말은 '베이비 샴푸'라는 이름을 가진 6살의 수컷 말이었다.
인솔자를 따라 말을 타고 아스팔트 길을 지나 돌길 입구에 다다랐다. 처음부터 난이도 '상'인 길에서 승마를 하게 되다니 왠지 모르게 긴장이 되었다. 다그닥 다그닥 말굽 소리에 숨겨졌지만, 턱이 있을 때마다 나의 몸은 올라갔다 내려갔다를 반복하며 뼈 소리를 내었다. 하지만, 그 고통을 아무렇지 않게 만들어버리는 바다 풍경 덕에 황홀하기까지 했다. 눈은 노을이 피기 시작하는 평화로운 바다를 향해있었고, 바람과 말발굽 소리가 공기를 가득 채웠다. 그 와중에 큰 눈을 가진 1일 나의 말, 베이비 샴푸는 돌 틈에 피어있는 꽃이나 풀을 뜯어먹기 바빴다. 한 시간 반 정도의 승마 체험을 끝내고 뿌듯하게 돌아왔는데 다음 날, 아니 그다음 날까지도 침대를 벗어나지 못했다. 친구들과 재즈바에 가기로 약속했는데도 불구하고 일어나질 못했다. 그리고 엉덩이에는 색다른 도전의 결과로 영광의 상처인 멍이 들었다.
몰타에서는 자연과 함께 하는 일상이 자연스러웠다. 승마나 바다 요가와 같은 특별한 체험도 있지만, 주중에 습관적으로 바닷가 산책을 가거나 주말에 조금은 먼 곳으로 트레킹을 다녀오기도 했다. 트레킹을 할 수 있는 곳은 여러 곳이 있다.
한 번은 친구들과 삼삼오오 모여서 트레킹을 다녀왔다. 바닷가 주변의 번화가를 벗어나 섬의 서쪽으로 향했다. 우리는 작은 만리장성(?) 같은 Victoria line을 따라 한참을 걸었다. 주변 풍경이 이국적인 가운데 묘하게 토속적이었다. 높은 곳에 올라가 아래를 바라보는데 드넓게 펼쳐진 한국 시골의 평야를 보는 것 같았기 때문이었다.
트레킹에 재미를 들인 나는 이후에 친구들과 함께 번화가에서 1시간쯤 버스를 타고 가서 남쪽 바닷가 근처에서 트레킹을 한 적도 있다. Golden bay에서 시작해서 Riviera beach, Qarrana bay, 그리고 Ta' Lippija까지 쭉 이어지는 길을 따라 걸었다. 중간중간 쉬면서 각자가 싸온 간식도 먹고 이야기도 도란도란 나누며 시간을 보냈다. 나의 트레킹 절친은 아르헨티나에서 온 마티아스라는 친구였다. 마티아스는 나보다 한살이 많았는데 항상 사람을 모아서 함께 트레킹을 다녔다. 친구는 구글 지도 하나를 보며 길을 정말 잘 찾았다. 덕분에 가끔은 탐험대가 된 듯한 착각에 빠졌다.
몰타를 떠나기 며칠 전에도 우리는 지도에 잘 나오지 않는 Fisherman's Cave를 찾아 떠났다. 위치상으로는 분명 이곳이 맞는데 입구가 없었다. 한참을 주변을 살펴보다 작은 구멍 속으로 들어갔는데 기대 이상의 동굴이 우리 앞에 나타났다. 이렇게 몰타에서는 늘 자연과 함께했다. 바다와 산을 고를 필요 없이 함께 즐길 수 있었다. 건물 틈에서 살다가 특별한 날에 자연을 마주하는 것이 아닌 일상 속에서 자연을 오감으로 느낄 수 있었던 몰타가 그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