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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셰프 지선 Apr 11. 2024

봄을 먹다

1. 루바브와 치즈

루바브가 도대체 어떤 맛이 나느냐 물어본다면, 봄내음 가득히 머금은 상큼한 풀이라고 표현하고 싶다. 생으로 먹으면 질긴 섬유질과 풋내 때문에 이것을 무슨 맛에 사 먹나 싶겠지만, 조화가 잘 어울릴 재료와 함께 요리해 먹으면 또 봄이 왔구나 하며 눈과 입이 너무 즐거워지는 재료 중 하나이다.


메뉴를 개발할 때 나는 제철 채소나 과일을 살핀다. 특히 페이스트리 셰프(파티셰)에게 봄과 여름은 아드레날린이 뿜어 나오는 계절이다. ‘요리사라면 누구나 제철 따지겠지 ‘라고 생각하면 오산이다. 시중에 오픈한 디저트 카페, 또는 디저트 테이스팅 바들 중 철이 아닌 재료를 시그니처 라며 줄 곧 사용하는 곳들이 많다. 그들을 비난하려 꺼내든 예시가 아니라, 그만큼 파티셰(페이스트리 셰프)로서 제철 식재료를 디저트에 표현하기가 매우 어렵다는 것이다.


총괄셰프는 봄 디저트를 올려 달라는데 그 쉬운 딸기는 지겨워 올리고 싶지 않았다. 아이디어가 넘쳐흐를 정도로 많은 날엔 머릿속에 발전기를 차단한다. 그리곤 무턱대고 14번가 유니언 스퀘어 파머스 마켓(시장)을 가곤 한다. 맨해튼 14번가에 위치한 파머스 마켓에 가면 로컬 농부들이 곡물, 꽃, 과일, 채소, 꿀 등등 본인들이 농사지어 수확한 식재료들을 매우 싼 값에 판매한다. 꺼버린 뇌 발전기는 시장에서 만큼은 절대 키지 않는다. 그것이 메뉴개발을 하는 나의 첫 단계이다. 그저 둘러본다. 냄새도 맡아보고 과일 상태도 눈으로 본다. 농부들과 이야기도 나누며 올해 가장 좋은 봄철 수확에 대해도 들어본다. 그러다가 갑자기 꺼진 발전기의 스위치가 켜지기도 한다. 어떠한 식재료에 대해 전문가(농부)와 이야기하다 보면 아 이 사람들이 이 재료를 수확하기까지 이 만큼의 정성을 쏟아부었구나. 씨앗일 적부터 시장에 꺼내질 때까지의 그 정성은 내가 예술 행위를 부여했을 때 더 가치가 올라간다는 것을 알고 있다. 그렇게 나의 메뉴개발이 시작된다.


소중히 알게 된 식재료는 절대 맛없게 만들어져 손님에게 나갈 일이 생기지 않는다. 루바브와 딸기 조합은 쓰고 싶지 않았다. 너무 맛있지만 남들 다 하는 너무 뻔한 건 나를 접시 위에 표현하기 성에 차지 않는다. 이런 경우, 나는 내가 싫어하는 식재료를 생각해 본다. 염소치즈. 내가 싫어하는 식재료를 사용했을 때 좋은 점은 이를 맛있게 만들기 위해 많은 손길이 필요하다. 결국 내가 마음에 닿을 지경에 오르면 그 재료를 좋아하는 사람들에게 너무나도 완벽한 디저트가 될 것이고, 그 재료를 싫어하는 사람들에겐 생에 처음으로 맛있게 먹은 염소치즈 디저트가 될 것이며, 나의 디저트가 오랫동안 그들의 기억에 남을 것이다.


루바브의 독특한 향과 상큼함은 설탕을 만났을 때 아름다워진다. 딸기 대신 히비스커스로 루바브의 풋내는 잔잔히 덮어주었고 색감 역시 보충해 주었다. 개인적으로 엘더플라워(딱총나무 꽃)와 화이트 와인 조합을 좋아하는 편이다. 발레리나와 발레리노가 그려지는 조합이다. 서로가 갖고 있는 매력이 엄청나는데 이 두 재료가 함께 사용된 요리나 디저트를 먹을 땐 항상 한 편의 아름다운 발레 공연을 코와 입으로 보는 듯한 느낌을 받곤 한다. 엘더플라워와 화이트 와인을 사용하여 펑키한 염소치즈를 보다 고급스럽게 표현하였고 테라곤의 힘을 빌려 봄의 정원을 연상시켰다.


맛 조합이 완성됐다고 해서 디저트가 메뉴에 올라갈 수 없다. 내가 데리고 있는 디저트 파트 요리사들이 아무리 바빠져도 아무런 실수 없이 일관되게 플레이팅을 해서 내 보낼 수 있을지 등등 많이 따져야 한다. 그렇게 적게든 한두 번 많게는 열 번 이상의 테스팅을 거쳐야만 메뉴에 올릴 수 있다.


작년 봄에서 여름 사이 정말 사랑받았던

Rhubarb & Goat Cheese Semifreddo

이야기가 담긴 음식은 맛없을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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