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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재원 May 11. 2024

슬럼프와 슈퍼스타 K

나의 장편 소설 부활 프로젝

소설이 대략 절반쯤 완성되었을 때다. 모든 작가가 슬럼프에 빠진다는 바로 그 시점이 나에게도 닥쳤다. 우선 제일 먼저 드는 생각이 있다.

이 이야기가 과연 재미있을까?


처음엔 신이 나서 쓰기 시작하지만, 어느 정도 진행되면 모든 작가가 느끼는 고민이다. 이미 작가는 그때까지 진행된 이야기를 수 천 번 이상 읽고 고민한 후라, 스토리에 둔감해지고 판단이 흐려진다. 재미가 있는 것인지, 말이 되는 이야기인지. 등등.


두 번째로 드는 생각은 소설을 끝내고 난 후다.


이 소설을 완성시킨다고 무슨 소용이 있을까?


컴퓨터 파일로만 존재하거나, 기껏해야 내 손으로 프린트해서 작가 친구에게 보여줄 것인데, 왜 나는 소설을 쓰고 있는 것일까? 그런 회의감이 밀물처럼 밀려들었다.


일단 시간과 노력을 들였으니 어떻게 해서든 책으로 출간되면 좋겠다고 생각했고, 그래서 보통 어떻게 책을 출간하는지 알아봤다. 두 가지 방법뿐이었다.


1. 출판사에 투고한다.

2. 문학상을 받는다.


출판사에 투고해서 성공한 몇 개의 사례들이 전설처럼 전해오고 있었다. 하지만 현실에서는 정말 드문 일이었다. 지금은 출판사와 출판사 직원들, 출판사 업무에 대해 잘 알게 되었는데, 투고한 글이 출판사 직원에게 선택되는 일은 정말 어렵다.


보통 출판사는 내야 할 책은 많고, 직원 수는 적기 때문에 투고로 들어온 원고를 꼼꼼히 챙겨 읽기가 매우 어렵다. 공식적으로 출판사 홈페이지에는 원고 투고를 받는다고 되어 있고, 대부분 답변도 잘 오는데(물론 거의 정중한 또는 틀에 박힌 거절 답변이다), 나의 원고가 얼마나 제대로 검토되었는지 알 길은 없다.

   

그렇다면 남은 것은 문학상을 타는 방법인데, 이건 일 년에 한 명 정도 뽑는 데다가, 원칙적으로 다른 문학상에 중복 투고하면 안 되기 때문에, 확률적으로 당선 가능성이 매우 낮다. 게다가 문학상이라는 것이 원고가 일정 수준이상 되면 그다음부터는 해당 연도 심사위원들의 취향이나 성향에 크게 영향을 받는다. 작가 입장에서는 정답을 모르고 계속 문제를 풀어야 하는 상황과 비슷하다.  


그러니까 문학상 수상은 아주 귀한 자격증 시험에 합격하는 것만큼 어려운데, 자격증 시험은 그나마 어떻게 공부하면 되는지 알지만, 문학상은 대비가 어렵다.


"구체적인 당선 방법? 그냥 좋은 작품을 만든다"이다.


그즈음 출판 시장과 책을 출간하는 방법에 대해 조사를 해볼수록 지금 나의 작업이 무의미하게 느껴졌고, 글은 쓰기 싫어졌다.


그렇게 글은 안 쓰고 빈둥빈둥 인터넷 서핑만 하다가 우연히 슈퍼스타 K라는 동영상을 발견하게 됐다. 정확하게는 슈퍼스타 시즌 2였고 ‘허각’이 대상을 받은 그 대회였다. 처음에는 참가자들이 그냥 노래를 참 잘한다고 생각하면서 보기 시작했는데, 방송사의 악랄한 편집과, 눈물을 빼놓는 신파적인 설정에 점점 빠져들어 계속 다음 편을 클릭할 수밖에 없었다. 마지막 한 명을 뽑을 때까지 잔인한 방식으로 계속 참가자가 떨어져 나갈 때, 과연 저 사람들이 대회에서 탈락하면 앞으로 어떤 인생을 살까? 하는 애처로운 심정이 들었다.


그러다가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저렇게 어린 사람들도 자신의 꿈을 향해 과감하게 경쟁에 뛰어들고, 탈락을 두려워하지 않는데, 나는 지금 무엇을 두려워하는가? 왜 떨어지고 난 다음에 느낄 허탈감을 미리 걱정하는가?


허각이 슈퍼스타K 최종회의 마지막 무대에서 이적의 ‘하늘을 달리다’라는 노래를 부르고 있을 때, 나는 슬면서 집필 중이던 소설 워드 파일을 다시 열었다. 슈퍼스타K에 참가한 아이들보다 간절하지 않다면 도대체 무슨 일을 할 수 있을까?라는 생각은 짧았지만 강렬했던 나의 슬럼프를 그렇게 보기 좋게 깨 부셨다.



참고로 이 대회에 참가했던 박보람 양이 얼마 전 사망했다는 뉴스를 접했다. 슈퍼스타K에 등장했던 참가자들에 대해 개인적으로 친근감을 느끼고 있었는데, 무척 안타까운 마음이 들었다.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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