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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물들의 죽음엔 가해자가 없다.

목줄만 풀어줬어도....

by 쳄스오모니

난 아직도 2023년 어느 날을 기억한다. 출근길에 미친 소리로 울린 재난 문자. "국민 여러분께는 대피할 준비를 하라"

이 눈빛을 두고 내가 어딜가

내 출근길을 배웅하려는 쳄스의 눈빛을 보니 발길이 못내 떨어지지 않아 집 문을 꼭 잠궜다.


뭔 대피냐. 같이 이 집에서 죽자. 북한은 개고기 먹는다는데 우리 애는 나 없으면 어떻게 되는걸까. 강아지들은 대피소도 못가지. 아 맞다, 남한도 먹는구나. 젠장.


오발령 문자라고 다시 안내가 오기 전 20분 간의 지옥같았던 시간 동안 '우리 애랑 어떻게 살 수 있을지, 혹은 어떻게 같이 죽을 수 있을지' 이 두가지 생각이 일초에 수억번씩 교차했다. 살면서 가장 많이 죽음을 생각한 20분이었다.


이번에도 어김없이 많은 생명들이 부스러졌다.


꼭 개를, 소를, 닭을 인간 목숨보다 귀하게 먼저 살려달라는 것 까진 아니다.


그런데 한평생 묶여 사는 개들은 그렇게 음식쓰레기를 먹고 살다가 추워죽거나 더워죽거나. 운 나쁘면 보신탕 신세가 되거나, 누구한테 맞아 죽거나. 아니면 파보 같은 병에 걸려 죽거나.


닭, 돼지, 소는 다를까. 구제역, 조류독감 등 아무 영문도 모르는 채로 산채로 묻히는게 셀 수 조차 없다. 나오는 순간이 죽으러 가는 길이다.


그렇게, 많은 동물들이 사는 동안도 단 한 번의 자유도 누리지 못해봤는데 죽는 순간까지 타 죽어야하다니.


어떤 분은 본인이 돌보는 아이들을 지키러 집 안으로 들어갔단다. 그 분이 하는 말이 아직도 뇌리에 꽂힌다. "내 개가 죽는 것만큼 무서운게 어딨냐"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줄만 풀었어도, 문만 열어줬어도 살았을 생명이 태반이다. 구조하러 갈 동물단체들이 있다는게 그나마 비극 속 희망인걸까. 정말 괴로운 3월이 지나간다. 동물 친구들아. 부디 내가 상상한 것보다 고통스럽지 않았길. 미안하다 미안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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