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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윤강 Dec 18. 2023

인간은 노력하는 한 방황한다.

경도우울증 2년 차 상반기 정산.

이전 글에 언급했다시피 작년 11월부터 2월까지는 경조증에 가까울 정도로 밝고 의욕이 넘치던 상태였다.

내 스스로도 너무 밝고 기뻐서 이상한데?라고 느껴질 정도.

2주에 한 번씩 병원을 갔는데 가서 할 말이 없을 정도로 상태가 좋아졌'었'다.

우울증이 있을 때는 병원에서 가서 '이걸 말씀드려야지, 저게 힘들었다고 말씀드려야지.'라고 짧은 시간 안에 전달할 리스트를 만들어야 하는데 몸과 마음이 나아지면서는 '더 이상 힘든 게 없는데 무얼 말씀드려야 하나?'라는 생각까지 들었다.


1월 중순에 단약을 하고 2월은 행복한 방학을 보냈다.

3월은 조금 힘들지만 기운을 내기 위해 쉬는 것도 무언가를 하며 열심히 쉬었다.

그 와중에 나도 모르게 입맛이 없어서 밥을 조금씩 줄였고 10kg 가까이 불어난 살을 빼 보겠다고 다이어트 한약도 먹고 있었다.

적게 먹기 시작한 게 순전히 다이어트 한약 덕분인 줄 알았다.

지금 생각해 보면 우울증이 스멀스멀 다시 올라오려 한다는 걸 애써 모른 척하고 싶었던 것 같다.


4월 말부터 위산이 마구 올라와서 낮에 밥을 먹을 수 없게 되었다.

좋아하던 커피와 빵 그리고 술은 당연히 먹을 수 없게 되었고 일반식을 먹으면 속이 쓰려서 내과 약을 달고 다니며 죽을 먹었다.

2월에 63kg로 정점을 찍었던 몸무게가 석 달만에 55kg가 되었다.


기적의 다이어트여서 사실 나쁠 것도 없긴 했지만 위산이 올라와서 잠을 잘 수 없으니 미칠 노릇이었다.

새벽에도 속이 쓰려서 두 세시 정도에 깨고 새벽 여섯 시까지 뒤틀리는 속을 부여잡고 뒹굴다 아침을 맞이했다.

기력이 없어서 좀비처럼 걸어 다녔는데 어떻게 수업을 했는지 지금 생각해도 신기할 정도다.


처음엔 단순하게 위산이 올라와 속이 쓰리니 내과를 다녔다.

인자한 얼굴을 한 나이 든 의사 선생님은 배를 건드려보시더니 몇 마디 위로를 건네시곤 스트레스 관리를 잘해야 한다는 말씀을 하셨었다.

스트레스 관리가 안 되어서 아픈데 스트레스 관리를 해야 한다니.


삶이 어렵다고 느껴졌다.


내과 약을 먹어도 스트레스는 계속 받고 있어서 몸이 낫지를 않았다.

잠들 수 없는 나날은 더욱 이어졌고 어쨌든 기운이 없어 일찍 잠에 드는데 새벽 세 네시쯤에 식은땀을 가득 흘리며 깨어 해가 뜰 때까지를 눈을 뜬 채로 기다려야 했다.

학교에 가야 한다는 생각을 나도 모르게 하게 되면 옷이 다 젖도록 식은땀이 나기 시작했다.

식은땀을 쏟으며 눈을 뜨게 되니 그제야 우울증이 다시 도래했음을 느꼈다.


아, 이건 내가 어떻게 한다고 이겨낼 수 있는 일이 아니구나.



작년은 단순히 우울감이 지속이 되는 정도였다면 올해는 확실히 온몸이 아프면서 일상생활이 어려워지는 것을 느꼈다.


잠을 자고 싶고 적어도 밥은 먹으며 살고 싶었다.

잠을 잘 수 없었고 밥을 먹을 수 없었으며 일도 할 수 없었다.

무섭게 내 머릿속을 우울이 잠식하면서 아무것도 할 수 없는 무능한 나 자신에게 무력감을 느꼈다.

이렇게 사는 건 사는 게 아닌데.


질긴 삶을 끊어내야 이 고통이 끝난다고 어둠 속의 내가 하는 말이 귀에 맴돌았다.

급격하게 나빠지는 내 모습을 보고 남편도 안 되겠다 싶어 병원행을 권했다.

단약을 한 지 석 달 만의 일인데, 어떻게든 내 힘으로 이겨보고 싶었는데 잘 안 됐다.


안 됐다.


작년의 병원과 다른 곳을 다니면 나아지려나 싶어서 병원을 마구 검색하기 시작했다.

그렇게 최대한 빠르게 갈 수 있는 병원을 찾아간 것이 4월 말이었다.

내가 다녔었던 병원은 전문의 한 분이 하는 곳이었고 어둡고 조용한 느낌이었는데 4월에 방문한 곳은 의사도 많고 환자도 많고 조무사도 많았던 곳이었다. 그리고 밝았다.

검사지를 받아서 많은 문항에 체크를 하고 상담을 했다.


젊은 여자 선생님께서는 의료적 차원의 공감을 해주시고 작년의 데이터를 바탕으로 약을 처방해 주셨다.

푸록틴 10mg. 매일 아침저녁으로 한 알씩.

도저히 견딜 수 없다고 느꼈을 때 병원으로 이끈 나 자신에게 패배한 감정이 느껴지면서도 한 편으로는 어떻게든 살고 싶은 거라는 생각에 나 자신이 기특하게 느껴지기도 했다.




처음으로 새벽에 까무러치는 속 쓰림을 겪었던 날은 연극 <파우스트>를 보았던 밤이었다.


인간은 노력하는 한 방황하기 마련이다.


그렇다.

새벽에 뒤틀리는 속을 붙잡고 새하얗게 밤을 지새울 때도,

식은땀으로 얼룩진 옷을 빨래통에 넣을 때도,

우리 집의 층 수를 세며 내 몸뚱이가 바닥에 으깨지는 정도를 가늠할 때도,


나는 방황하고 있었다고 생각하자.

삶과 죽음의 어딘가에서,

노력하고,

방황하고,

엎어지고,

다시 일어서고,

다시 엎어지고,

그러다 보면 괴테가 한 말처럼 노력하는 사람은 구원을 받을 수 있지 않을까.


슬프게도 방황하고 또 방황한다.

우리 집은 12층이어서 매일마다 눈을 뜨면 베란다 난간에서 바깥을 바라볼 수 있었다.

식은땀을 흘리고 축축해진 채로 눈을 떠서 일어나면 어스름한 푸른 새벽이 창을 채우고 있었다.


너무나 힘들어서 다 놓아버리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5월부터 6월까지는 약이 들기 까지를 기다려야 해서 참 힘들었다.

그리고 남들과 비슷하게 추락사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을 해 보았던 계절이었다.


방황한다.


또 방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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