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부터 비가 온다.
우리집 손석구와 그를 닮은 토끼같은 아들이 밥을 먹는다.
마주보고 앉은 나는 창밖을 물끄러미 보며 커피를 마신다.
"오늘처럼 비가 오는 날은 저 비처럼 촉촉한 사랑얘기 쓰고 싶다."
슬며시 미소를 지으며 그는 답한다.
"써. 쓰면 돼지."
나는 버럭 화를 낸다.
"쓰고 싶다고 써지나? 내가 연애를 못 해봐서 상상력의 한계를 느낀다."
그는 조용해진다.
그렇다. 그는 내 첫사랑.
그러니까 내가 풍부한 연애로, 풍성한 글감을 가질 수 없게 한 원인 제공자다.
사실 전혀 쓰지 않았던 건 아니다.
상상에 상상을 더해 얻어 들은 모든 소스까지 얹어 쓴 적이 있다.
"오빠, 모든 얘기에 내가 주인공이 될 수는 없어. 그러니까 내가 쓰는 얘기의 주인공이 나처럼 보일 수는 있지만 내가 아냐. 무슨 말인지 알지???디테일하게 쓰려면 지역, 직업 이런 환경설정은 뭔가 닮을 수 밖에 없지만, 하는 행동이나 사건이 실제는 아니란 거야. 그래도 그게 실제라고 착각이 들어서 오빠가 기분 나쁘면 어쩌지???"
뭔가 구구절절하고, 구차하다.
하지만 제2의 장항준을 꿈꾸는 그는 의외로 현실남편이다.
"어디, 덜 떨어진 남자랑 사냐? 소설과 실제도 구분 못하게? 신경쓰지 말고 더 자극적으로 써봐. 그래야 많이들 보고, 궁금해하고, 입소문도 나고 책도 많이 팔리지. 니 덕에 나도 편하게 살아보자."
그가 그렇게 얘기해주니 마음이 가볍다. 훌훌~ 체한 게 내려가는 듯. 기분이 좋다.
"정말? 알았어. 고마워."
"근데, 막 남자주인공이 와이프 막 때리고 그러지는 않지?"
나와 내 소설의 주인공은 분리를 하라고 하면서, 왜 정작 자신은 분리시키지 못하는걸까.
사실 그는 설정 자체에도 포함되어 있지 않다.
(넌 내 소설의 주인공이 아니라고. 쯧쯧)
이런 남자의 말을 믿어도 좋은걸까.
그런데 말이다. 다 불필요한 대화다. 읽는 사람이 없으면 다 김치국이다.
아주머니는 아무도 읽지 않으면 무효한, 쓸데없는 걱정을 산더미처럼 하느라 한줄도 쓰지 못한다.
이 겨울비처럼 촉촉한 사랑얘기 쓰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