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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체리 Jul 24. 2023

지우려 할수록 선명해지는

새로 깎은 연필을 잡고 하얀 종이 위를 거닐었다

오른쪽으로 왼쪽으로 위로 아래로

가고 싶은 대로 마음껏 움직였다 그런데


삐끗

.

.

.


제멋대로 움직인 연필이 만든 선 하나가

어긋나버려 거닐던 선들을 막아대니

놔둘 수 없어 지우개로 박박 지워버렸다


지우면 지울수록 삐져나온

선 하나는 살아남아 나를 괴롭혔다


사라지지 않겠다고 다짐하듯

종이 위에 남은 선명한 자국 하나가

뚫어져라 내 얼굴을 쳐다보았다


허여멀건 틈 사이로 나는 보았다

슬픔이 내려앉은 기억 한 장을

아무도 모르는 나의 파편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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