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체리봉봉 May 01. 2024

도련님 밥상

"031-XXX-XXXX"

"어디지?"

 "XX초 보건실인데요. 체리가 열이 37.7도여서요."

 "네엥? 바로 조퇴시켜 주세요."


아침에 꿈지럭된다고 짜증 부리고, 엄살 부린다고 엄청 다그쳤는데 체리가 진짜 아프단다. "아이고 어째~" 이 모진 엄마.... 엄마는 급 정리하고 차를 끌고 정문 안까지 들어간다. 주차장에 차를 대고 입구에 서서 기다린다. "괜찮아?" 체리는 입이 대빨 나와있다. "얼른 병원 가자~ 진짜 아픈데 엄마가 나무랐구나! 미얀~ 이얀 엄마 용서해줄께징?" 급 굽신 모드를 보고 마지못해 풀어준다. "12시야 빨리 가야 병원 진료받을 수 있어! 얼른 가자!!!" 다행히 늘 대기 20명이던 병원이 한가하다. "대기 2번, 다행이다." 진료를 받으니 목이 울긋불긋 엄청 부어있고, 코도 있었다. 약까지 지어 환자님을 고이 모시고, 집 앞 마트를 가서 체리가 좋아하는 포도와 코코팜, 그리고 고기 한팩을 사서 들어온다. 늘 아프면 죽을 드셔야 하는 아이들, 하지만 죽도 딱 2끼만 먹는다. 아주 고급, VIP환자님이시다. 그럼 엄마는 머리를 굴려본다.

"그래, 지난번 사온 사태로 미역국을 끓이고, 미역죽을 끓여주자. " 급한 마음에 압력밥솥을 꺼내 고기를 푹 끓이고, 미역을 불리고... 그 와중 운동하고 하지 못한 샤워를 하고, 미루고 미룬 염색약까지 바른다. 남은 시간은 한 시간도 채 남지 않았다.

"아프니까 방에 누워있어~" "약 먹고 포도 먹고 있어! 금방 밥 줄게~ 좀만 기다려~" 엄마는 비상사태이다. 급하게 고기를 썰어내고,  압력밥솥에 온전히 의지하고 푹~ 끓인 사골처럼 맛난 미역국을 기대해 본다.

액젓을 거하게 두국자 넣고 마늘까지 넣고, 빨리 급하게 푹~ 끓인다. 급하다 급해~ 이때, 염색한 머리를 감고, 드라이까지 하고 와서 작은 뚝배기에 냉동밥을 담고 미역국을 잘게 잘게 조사 분다.

그리고 너무 바쁜 나머지, 엄마는 수업을 위해 쟁반에 음식을 고이 차리고, 끓으면 먹으라는 당부와 함께 사라진다. "엄마 수업 갔다 올게~~~" 엄마는 밥도 제대로 못 먹었다. "괜찮아! 너라도 먹으면 되지 뭐~~~" 그럼 약기운에 열이 떨어져 조금 살아난 딸은 엄지 척 사진을 보내준다. "고마워! 진짜 아픈데 나무라서 미안하고, 배고픈데 참아줘서 고맙고, 엄마 빨리 갔다 올게 먹고 푹 쉬고 있어!!!"


그리고 저녁이 되었다. 그럼, "고등어 맛있게 구워줄게~" 까다로운 봉봉이가 한몫한다. 다시 미역국을 재탕해서 끓이고, 고등어를 빛깔 좋게 노릇노릇 구워본다.

까탈스런 봉봉이, 도련님 저녁밥상과

감기에 걸린 환자, 공주님 환자식이다.

역시 약을 먹고 좀 살아나서 체리는 야무지게 먹어준다. 그릇에 덜어서 야금야금... 공주님처럼 다소곳이 먹는다. "넌 아플때가 젤 청순하고 얌전하드라~" "쉿 비밀~~~"

배고팠는지 봉봉이는 후루루 짭짭 미역을 쑤셔 넣는다. 개눈 감추듯 먹어버리는 봉봉, "너 한동안 미역국 안 먹더니~ 잘 먹네...." "어서 먹어, 잘 먹어야 안 아프고 건강하지~" 아픈 사람이 생기면 전염위기에 놓인 양, 또 한 명의 번식자가 생기지 않기 위해 초비상상태로 돌입한다. 환자도 잘 먹이고, 살아남은 생존자도 얼떨결에 더 먹인다. 그래야 엄마가 살아남을 수 있다. 누군가 아프면 엄마는 멘붕이 된다. "너는 제발 살아남자!!!"

국물만 남은 미역국, "엄마가 고기랑 미역 푸~~~ 욱  사골처럼 끓였어, 밥 말아 먹어~" "더 줄까?" 고개를 끄덕이는 아들 앞에 5분 냉동미역국으로 변신 3초 전인 국을 대령한다. 갑자기 목표물을 바꾸고 눈이 띵구르르 해진 봉봉이, "너 잘 먹는구나! 키가 쑤욱 쑥 크겠네...." 엄마는 금세 흐뭇해진다.

리필한 미역국, 리필한 김치를 열심히 맛깔나게 먹어치운다. "고등어도 먹어, 엄마가 잔가시 다 발라냈어! 어서 먹어!" "엄마 이거 써~" "뭐어???" "원래 타기 직전이 제일 맛있는 거야 맛있게 해 주려고 노릇노릇하게 구웠잖아!" "암튼 먹어봐 진짜 써어~~~" 까칠스러운 아이들은 고등어를 살짝궁 맛만 보고 손도 대지 않는다. 이렇게 맛있게 구워줬건만... 그래도 미역국을 거하게 먹었기에 이 정도는 패스해 준다. 엄마는 대인배이다.

그럼 냉동실로 직행하려던 미역국은 3개밖에 남지 않는다. 소분하다 남은 고기찌꺼기와 국물이 꽤 많다. 그럼 엄마는 씨간장이라도 되는 냥, 급하게 미역을 더 불려 끓이고, 고기육수대신 멸치액젓을 듬뿍 넣어 한솥을 더 끓여낸다. 미역만 푹 끓이면 액젓만 넣어도 시원하고 맛있다는 헛소리를 해가며 5분 냉동 미역국을 쟁여놓는다.

이제 엄마도 쉴꺼야!
급할 때 전자레인지에 딱 5분 돌리면 뜨끈뜨끈한 국 완성!
당분간 이걸로 거뜬하겠어~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