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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체리봉봉 May 08. 2024

신랑이 사라졌다

날이 좋아서...
구름이 없어서...
물때가 좋아서...
여유 있는 시간이 이때뿐이라서...

이럴 때면 거북이대학 달팽이과 신랑은 손이 잽싸진다. "달달달달~~~~" 뭔가 감기는 소리가 난다. 그건 바로바로.... 낚싯줄 감는 소리이다. 일하러 가기 전에 미리 낚시짐을 싸놓고 출근하는 신랑님이시다. '휴~~~~ 우~~~'

그리고 일을 마치고 돌아온 그분이 샤워시간은 보통 때를 미나 싶을 정도로 오래 걸리는데 들어가자마자 나왔다. "뭐가 지나갔냐?" 늘 여유 있고 기품이 있는 우리 집 1호 큰 아드님이 날쌘돌이가 되어버린다. 밥도 간신히 쑤시고 털어 넣고 물때를 맞춰 떠난다. 그럼 괜스레 미안한지 지는 노을이 멋있다며 사진 한 장을 투척한다. '지금부터는 연락 안 되니 걱정 말라'라는 암묵적인 이미지이다. '노을이 좋으면 식구들을 데리고 갔어야지~'

그러면 큰 아드님의 세상이 시작된다. 밤새 쿨쿨 자다 "띠리리리리---" 소리에 눈 한번 찔근하고, "쿠------우웅!" 철커덕 현관문 닫히는 소리에 이불을 치켜든다. 이마저도 못 들을 때는 "졸졸졸-----" 시냇물소리가 하염없이 들린다. "졸졸졸졸---------" 그 칠 만두 하겠만 계속 들린다. 그러다 보면 온 식구가 일어날 시간이다.

큰 아드님은 아주 온 세상을 다 얻은 양 신나셨다. 밤을 새도 물고기만 잡으면 2박 3일은 더 샐 수 있을듯한 기력을 보여준다. 입이 귀에 걸려 어린아이 같이 사진을 보여주며 들떠있다. 가끔 허탕을 치거나 유치원, 초등학교 다닐 물고기를 잡고 놔줬다는 레퍼토리는 귀에 딱지가 떨어진다. 그래도 종종 월척을 낚아온다.

매번 분리수거로 쌓아놓은 과자박스를 그렇게 챙기더니 도마로 활용하고 비닐봉지 수십 장을 쓰고도 집에 와서 씻고 닦고 한 시간가량 이어지다 키친타월로 이집트 미라를 만들어 놓는다.

가끔 멸치도 잡고, 낙지, 해삼, 멍게, 꽃게를 잡아오지만 그거 잡고 물 한 시간 틀어놓고, 키친타월 한롤 쓰는 거를 보면 속이 뒤집어진다. 수렵, 채집에 환장하는 큰 아드님의 피는 진짜 아드님에게로 향한다. 해루질을 가서 서해바다 돌, 바위는 다 뒤집어 놓는다. "아들아! 허리 나가~~~~" 큰 아드님은 이미 포기고 들어먹질 않으니 두 손두발 들었고 내 아들은 챙겨보겠다는 심정이다.

어린이날, 어버이날 선물로 제대로 낚으신 1호님,
친정에서 초저녁 숙면을 하시고 밤 12시에 사라졌다.
나보다 친정 가는걸 더 좋아하는 남의 집 아드님이다.


친정에서 외박을 하는 남편, 아침 8시가 되어도 들어오지 않는다. 전화를 해도 안 받는다. 10시가 넘어 11시가 돼서야 들어와 1시간을 우럭을 씻는다. "이거 봐봐! 큰 거 잡았어~" 온 식구를 깨우고, 불러도 친정에서 휴일에 늦잠 자는 와이프와 핸드폰 게임에 빠진 아이들은 "어" "잘했네" 영혼 없는 멘트가 끝이다. 서운한지 나 좀 알아달라 씻고, 또 씻는다. 그래도 저녁으로 "오랜만에 먹는 회라 맛있다"는 말에 이 집 사위 어깨 좀 펴본다.

긴 여정을 마치고 집으로 가져온 우럭씨를 고이 눕힌다. 냉장고 정리가 필요하기에 바로 매운탕준비로 갖춰놓는다.

'아주 땡글땡글하고 맑은 우럭눈깔! 진짜 살아있다~' 신선도는 말하지 않아도 얘기해 준다. 처박혀있던 무를 꺼내 썰고, 잔인하게 우럭을 토막치고, 미역을 불려준다.

비린맛을 잡기 위해 생강청을 먼저 넣고, 쑥갓, 고추, 액젓, 소금, 후추를 슝슝 마구잡이로 넣어본다. 사실 고춧가루를 넣으면 애들은 은근 매운맛의 기준 없이 맵다 난리 치며 우유 한 컵, 생선한입, 우유 두 컵, 생선한입 먹기에 나름대로 속임수이다. 빨갛지는 않지만 고추를 넣어 맵지 않게보이는 고차원적 비법이다. 사실, 친정에선 지리탕을 즐겨 먹기에 이렇게 해서 푸욱 우리면 국물맛이 끝내준다.

이쯤대면 미라 등장

회도 먹었겠다 아이들에게 다소 밋밋할 수 있기에 우럭튀김? 우럭 전을 해본다. 둥둥 감긴 키친타월을 한 겹, 두 겹, 세 겹 풀다 보면 깔끔쟁이 1호님이 준비해 놓은 우럭살이 등장한다. 성질 급한 엄마는 뱃살의 가시를 잡아당겨 살쪼가리까지 덜어내고 큼직큼직 한입 쏘옥쏙쏙하게 썰어본다.

소금, 후추를 뿌리고 섞은 다음, 그냥 계란물만 발라 튀겨낸다. 그냥 간편하게 뭐 튀김가루, 튀김옷, 빵가루 집어치우고 그냥 속성 간편식 계란물만 고이 입힌다. '왜냐 귀찮으니까! 그리고 이렇게만 해도 충분히 맛있으니까!!!'

노릇노릇 맛있게 익혀지는 찰나, 타르타르소스를 만들어보자! "아드~~~ 을 양파 좀 갖고 와!" "내가 까볼게!" 어느새 물안경도 거꾸로 쓰고 칼질도 안 한 양파를 쓰담쓰담만 하고 있다. "엄마 물안경 안 썼으면 엄청 눈물 날뻔했어!" "잘했다~잘했어!"라는 말을 듣고 싶었나 보다. 양파 한 개 까고 아주 만족스러운 우리 집 진짜 아드님이다.

"피클이 없다!" 아쉬운 대로 매실장아찌를 다지고, 마요네즈 6바퀴, 양파 다진 거, 소금, 후추, 올리고당, 레몬즙까지 섞으면 아주 맛깔나고 부드럽고 감칠맛 나는 소스가 완성된다.

"맛난다." 근데 찍어먹을 소스 만드는 사이 우럭튀김이 사라진다. "야! 그만 먹어~ 너만 먹냐??? 누나도 줘야지!" "안 먹었어~"하는 입속에 우럭 2조각은 들어있다. "당당하구먼!!!" "그만 먹으라고 진짜!!!" 그럼에도 불구하고 생쥐처럼 하나씩 물고 사라진다.

간신히 차려진 밥상,  급한 대로 있는 반찬 끄집어 차려내지만 우럭주인공들이 있기에 이미 만찬이다.

혼자 3분의 2를 먹고도 집어대는 젓가락에 접근금지를 명하지만 말을 들어먹지 않는다. "그렇게 맛있냐?" "엄마가 우럭 너무 잘 먹지 말라했지???" "아빠 또 낚시 간다고~ 적당히 먹어랏!!!" 그렇게 하고도 맛있어 국물까지 말아 싸악싹 먹어낸다. 편식을 하고 초딩입맛이지만 생선은 흡입하는 아드님! 건강하게만 자라다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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