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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체리 Sep 13. 2024

나랑 한 번 뜰래?

뜨개 세상으로 한 발짝

작가소개.
리틀포레스트 같은 삶을 사는 게 소망이었고, 최화정씨 같은 명랑어른이 되는 게 꿈이었는데 그것들에 한 발짝씩 가까워지는 중. 매일 달라지는 계절에 맞춘 작은 미(美)식을 즐기고, 조금씩 나아가는 뜨개에 그 뜻을 두며 살고 있다.


연희동은 내가 사는 곳에서 꽤 거리가 있다.

그 때문에 그곳에 들르는 것은 1년에 한 두어 번 정도, 아주 마음먹고 대단한 이유로 방문해야 하는 동네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찬란하게 맑은 날 우연히 연희동에 발을 디디게 된 건, 운명이었을지 모르겠다.


한 1년 전쯤 알고리즘에 바늘이야기란 유튜브 채널이 눈에 띄었다. 엄마가 하시던 뜨개 공방을 홍보하기 위해 ‘김대리’라는 별명을 한 따님이 운영하는 계정이었다. 대단한 이야기를 많이 풀어내는 것도 아니고, 조용한 백색소음 사이로 새로운 뜨개 도안을 줄창 뜨고 있는 롱폼과 새로 들어온 실로 뜬 작품을 들고 행복한 얼굴로 웃는 숏츠뿐이었다. 대기업의 정제된 그것과는 달리 왜인지 모르게 따숩고 소박한 영상들이었다. 엄마와 딸의 뜨개질로 엮인 이야기는 감동적이었으나 당시만 해도 나는 아직 뜨개라는 세상에 마음을 열기 전이었던지라 그들의 이야기는 쉽사리 희미해졌다.


그러다 우연히 방문한 연희동에 이 바늘이야기란 계정의 본체, 브랜드 오프라인 매장이 위치했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연희동에서 매력적인 작은 가게들이 몰려있는 골목을 오가다 보면 지은 지 얼마 되지 않은 듯 유난히도 반짝거리고 세련된 건물을 만날 수 있다. 여기가 어딘고 고개를 들면 banul이란 간판이 5층 높이의 건물 외관 한편에 박혀 있었다. 엄마와 딸이 운영하는 유튜브, 딸이 직접 손품을 팔아 편집한 어설픈 영상, 이런 것들을 이유로 당연히 영세한 아주 작은 가게일 거라 생각했다.


맙소사, 내 착각이었다.


후로 찾아보니 바늘이야기는 국내에서는 최대 규모의 손뜨개 관련 기업이었다. 친근하게 느껴졌던 엄마와 딸의 이야기에 이유 모를 배신감을 느꼈으나 금세 이 배신감은 호기심으로 바뀌었다. 2층까지 통유리로 뚫린 공간 안으로 수많은 뜨개 샘플과 잘 정리된 실들이 보였다. 과연 뜨개의 뜨도 모르는 내가 들어가서 뭘 얻을 수 있을까 기웃대다 삐뚤빼뚤 아가들이 썼을 법한 폰트로 지금부터 뜨면 크리스마스까지 뜰 수 있음이라 적은 포스터에 결정적으로 마음이 동했다.


지금부터 뜬다면 겨울엔 내가 뜬 목도리와 장갑을 하고 다닐 수 있을까?
미래엔 좋아하는 색들을 모두 모아 만들어 알록달록한 현란한 것들을 나의 아이들에게 만들어줄 수 있을까?

그렇게 수많은 물음표를 헤치고 단단하고 묵직한 은색 손잡이를 잡았다. 그 문을 들어설 때까지 그 순간이 날 완전히 새로운 세상으로 데려다 놓고 말 것이란 사실을 나는 미처 알지 못했다. 그렇게 시작됐다, 나와 뜨개의 인연의 시작은.


높다란 천장과 직접 짠 장들로 들어찬 가게 안은 아주 알찼다. 총면적은 크지 않았는데 매대마다 10개 이상의 작품이 보기 좋게 진열되어 있었다. 각 작품마다 어떤 실을 사용했는지, 사용된 뜨개법은 무엇인지, 그 작품을 뜨는데 필요한 스킬의 난이도는 얼마나 어렵고 쉬운지 등 조금만 관심을 가지고 들여다보면 수많은 정보가 숨겨진 공간이었다. 귀여운 꽃문양이 패턴처럼 구현된 버킷햇, 그물망처럼 송송 뚫린 손가방 등 늦여름을 장식하는 소품들이 내 시선을 사로잡았다. 생각보다 세련된 색감과 디자인에 놀랐다. 뜨개는 할머니들의 전유물인 줄로만 알았는데 이 세상이 이렇게나 넓었구나, 댕-하고 머리를 맞은 느낌이었다. 톡톡하면서 폭닥한 느낌이 손에 감긴다. 기계로 후루룩 떠버린 제품들과는 또 다르게 누군가의 숨결이 느껴지는 듯했다.


그렇지만 나는 뜨개를 할 줄 모르는 인간. 초5 시절에도 겉뜨기 안뜨기만 반복하면 되는 목도리 뜨기도 1할쯤 뜨고 당연스럽게 할머니에게 넘겼던 게 나다. 그래서 한참을 미련이 뚝뚝 떨어지는 눈으로 버킷햇 하나를 한참 바라보다 돌아 나왔다.


연희동 바늘이야기의 모습


뜨개, 한 번 배워볼까…

그때 나의 마음에는 점 세 개가 달린 아주 작은 씨앗이 하나 심겼고, 묵묵히 이 씨앗은 새싹을 틔웠다. 집에 돌아와서도 버킷햇, 가방 따위가 자꾸만 눈에 밟혀 바늘이야기의 온라인 몰을 수시로 들락거렸다. 알아보니 바늘이야기에서는 오프라인으로 수업도 진행하고 있었다. 수업까지 들을 만큼 가치 있는 일일까? 얼마 하지도 않는 수강료인데, 일상에 유익한 자기계발 따위가 아니므로 나는 꽤나 오래 고민했다. 근 3개월 가까이를 무언가 안 될 이유를 만들기라고 하고 싶은 것처럼 온라인 상담센터를 통해 이것저것 중요하지도 않은 것들, ‘갑자기 못 가는 날엔 보충수업이 가능한지’, ‘한 번도 바늘을 들어보지 않은 초보도 취미반에 들어갈 수 있는지’ 따위의 질문을 묻고 또 물었다. 딱히 큰 이유가 없는데도 ‘배우지 말자’라는 결론으로 기울던 시소의 추는 어떤 한 사건으로 반대 방향으로 홀랑 넘어가버렸다.


친구가 스토리에 ‘바늘이야기’에 들렀다며 올린 스토리, ‘귀엽다’고 한 한마디에 나는 그 미끼를 덥석 물었다.


나랑, 같이, 뜨개 한 번 배워볼래?


비로소 점 세 개는 물음표로 변해다. 누가 부추기면 금세 활활 타오르는 친구 유진과 나는 서로를 핑계 삼아 함께 수업을 듣기로 했다. 아주 작은 씨앗이 심긴 순간부터 언젠가 배우게 될 거라 확신했다. 그게 조금 더 나이 든 이후의 일일 줄 알았으나 시점이 조금 앞당겨졌을 뿐이다.


뜨개 초보의 고군분투 뜨개 일상 coming so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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