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군가를 위해 뜨는 일, 그저 사랑.
뜨개 초보의 고군분투 뜨개 일상
작가소개.
리틀포레스트 같은 삶을 사는 게 소망이었고, 최화정씨 같은 명랑어른이 되는 게 꿈이었는데 그것들에 한 발짝씩 가까워지는 중. 매일 달라지는 계절에 맞춘 작은 미(美)식을 즐기고, 조금씩 나아가는 뜨개에 그 뜻을 두며 살고 있다.
날이 갑자기 추워졌다. 가을의 냄새를 만끽할 여유 없이, 겨울에 가까운 온도와 습도에 어깨를 움츠리며 집을 나선다. 이제 제법 뜨개로 뜬 소품을 쓸 수 있는 날씨다. 오히려 럭키비키-하다며 신나게 강의실에 도착하고 나니 강의실이 전주와 달리 빽빽하게 들어차 있다.
날이 추워지니 다들 뜨개를 생각하는구나.
내가 수강하는 반은 취미반. 따로 정해진 커리큘럼 없이 10회분씩 결제하고 매주 같은 시간에 모여 각자 원하는 뜨갯감을 가지고 와 뜨면 된다. 2시간의 수업 시간 동안 각자 작품을 쭉 떠내려가다 어려운 부분을 마주하면 선생님을 불러 해결하고 그 방법을 배운다. 아예 처음 뜨개질하는 초짜들에게는 선생님이 돌아가며 시간을 할애해 코잡기, 매직링 만들기 따위의 기초 지식을 가르쳐준다. 대신 회당 1만 원꼴의 아주 가성비 좋은 수업, 좋게 말하면 자율적인 수업이라 매번 수강생의 출입이 들쑥날쑥했다.
그래서인지 여름에서 가을로 넘어가는 약 2개월의 기간 동안 꾸준하게 그 자리를 지키고 있는 건 나와 나의 친구 유진, 아주머니 한 분 정도가 다였다. 멀리서 보건대 그녀는 주로 커다란 스웨터나 가디건 등을 뜨고 있었다. 그걸 토대로 가늠해 그녀는 우리보다 훨씬 오래 뜨개를 떠 온 인물이려니 생각할 뿐이었다. 말 한마디, 눈인사 한 번 나눈 적 없이 어깨 너머로 아주머니가 선생님께 뜨개 중인 편물의 실수를 짧게 하소연하거나 ‘선생님’하고 다급하게 부르시는 목소리만 들었을 뿐이다. 그럼에도 우리는 매주 급변하는 날씨와 새로운 사람들 속에서 유일하게 꾸준히 시공간을 공유하는 일종의 동료로서 막연한 연대감을 느끼게 됐다.
아, 물론 그녀의 마음을 실제 알 도리는 없으니 내가 추론한 것이다.
최소한 나는 그녀에게 연대감을 느끼고 있었다.
어느 날은 수업을 마치고 잠시 화장실에 간 친구 유진을 기다리는데 뒤늦게 짐을 챙기고 나온 아주머니와 엘리베이터 앞에서 마주쳤다. 다른 수강생들도 아니고 약 7주간 오가며 서로를 인지한 사이인데 뭐라도 해야 할 것 같아 뜨개인으로서의 인사를 건넸다.
뭐 뜨세요?
한껏 미간에 힘이 들어가 있던 그녀의 표정이, 내 한마디에 따스한 물 위에 떨어뜨린 얼음장이 스르르 녹아버리듯 풀어졌다. 처음 보는 그녀의 온화한 표정!
“저요? 요즘은 스웨터 떠요. 우리 딸 거. 이거 전에는 손주 거 모자랑 목도리 세트로 뜨고 스웨터 뜨고 있어요.”
“우와, 힘들지 않으세요?”
“어휴- 도안 그대로 했는데도 어깨 쪽 사이즈가 아무리 봐도 이상해서 집에서도 두 번을 푸르고 오늘도 다른 부분 때문에 푸르고 하다 가는 길이예요. 화딱지가 나서 지금 뜨기 싫어 죽겠어요.”
나는 아직 옷을 뜰 엄두는 내지도 못할 입장이었지만 몇 차례 했던 일을 번복하며 어떤 마음이었을지 너무 공감이 가서 ‘화딱지’란 절묘한 단어 선택에 웃음이 났다. 혹 비웃는다고 생각하실까 억지로 웃음을 참고 미간에 힘을 주고 답했다.
“아이고, 힘드시겠다!”
맞장구에 그녀는 내가 차마 묻지 않은 이야기들을 쏟아냈다. 그녀는 나와 나의 친구 유진이 하는 대화를 들었다며 아이가 있지 않냐며 물었다. 역시나 그녀 역시 뜨개를 하는 내내 귀를 쫑긋 사람들에게 귀 기울이고 있었나 보다.
“앗, 저 말고 제 친구요! 두 돌이에요.”
그녀는 눈을 반짝이며 본인이 직전에 짠 손주를 위한 모자와 목도리에 관해 이야기했다. 파란색, 베이지색, 갈색 세 개의 색깔 실을 섞어 떴는데 얼마나 예쁘게 조합이 되었는지 자랑하며. 그녀는 유진의 아이에게도 어울릴 것이 틀림없다며 그 도안을 떠보라고 추천했다. 그녀는 어떤 실을 쓰면 더 예쁜지 당부했다. 엘리베이터가 다시 1층으로 돌아가 버려 버튼을 몇 번이나 다시 누르고 엘리베이터의 문이 세 번쯤 공허하게 여닫힐 동안 우린 다소 어정쩡하게 서서 뜨개 토크를 나눴다.
내가 생각하는 뜨개의 묘미는 마음 편한 지인과 도란도란 수다 떨며 뜨는 재미인데, 홀로 조용히 뜨시느라 얼마나 힘드셨을까. 나는 아이 옷을 뜰 일은 한참 멀었지만, 괜히 오바해서 맞장구를 쳤다. 딱딱하게 경직되어 있던 그녀의 표정과 몸짓이 한층 부드러워졌다. 눈은 반짝반짝. 화장실에서 돌아온 유진이가 어색하게 나와 아주머니를 둘러보았다.
손주 주시려고 뜨신 모자랑 목도리가 있는데 진짜 귀엽대.
지금은 스웨터 뜨신대!
아주머니가 어색하실까 부러 크게 설명한다. 어색한 상황에 유진도 가볍게 목인사를 하고 오늘의 대화는 마친다. 1층에 도착해 공방 문턱을 나서는 찰나에 아주머니가 가볍고 따스하게 눈인사했다. 나름대로 수업을 지켜온 짬이 찬 취미반 선배(?)들로서 역시 그녀도 나와 나의 친구 유진에게 막연한 연대감을 가지고 있었음이 확인됐다.
겨우 그 대화가 무어라고, 마음이 한결 따스하고 몰랑해진 기분이었다. 집에 돌아와 그 기분이 무엇인지 곱씹었다. 내가 이렇게 쉽게 사람을 좋아하는 사람인걸까? 아니면 그냥 익숙한 사람과의 대화라 좋았던걸까?
돌아보면 뜨개방에 수업을 들으러 오는 이들의 나이 범주가 꽤 넓은 편이었는데, 주로는 40대, 50대에 이르는 어른들이 많았다. 언니라고 하기엔 어색하고 아주머니라 부르기엔 제법 가까운 나이대의 어른들 말이다. 사회에선 이 나이의 인물들을 만날 일이 많지 않아 그저 막연하게 ‘먼 존재’쯤으로 생각했던 사람들이 뜨개 수업에서 만난 이들은 모두 눈이 반짝반짝했다. 설령 그녀들이 손주가 있는 할머니라고 해도, 수업때마다 신나는 목소리로 선생님께 새로 시작하는 도안을 자랑하고, 실이 적합한지 묻고, 스스럼없이 ‘선생님'하고 본인 또래일 법한 선생님을 부르는 모습을 보면 나와 크게 다르지 않은 존재처럼 느껴졌다. 무엇보다 뜨개를 하는 그들의 모습은 참 행복해 보인다.
그러니까 내가 뜨개를 하며 마주한 아주 작은 인간 군상들은
나이 할 것 없이 모두 귀엽고 사랑스러운 사람들뿐이었다.
그 나이에도 귀여움과 사랑스러움을 장착할 수 있는 비결은 이들이 사랑할 줄 아는 사람들이기 때문일 것이다. 뜨개를 배우는 사람들 대개가 처음엔 자신을 위한 작품을 뜨다가도 결국 자신에게 가장 소중한 사람 순서로 선물할 무언가를 뜨고 있다. 그러니까 분명 사랑을 나눌 줄 아는 사람들, 그리고 그걸 직접 만들어 나누는 데서 되려 행복을 얻는 사람들이다. 거기서 오는 연대감과 동경에 서로에게 애정을 가지게 되는 거였다.
예를 들어, 나의 곁에서 뜨개를 하는 친구 유진은 첫 수업부터 7주간 내내 자신의 아이를 위한 목도리, 바라클라바, 모자를 색색이 뜨고 있으며, 오늘에서야 인사를 나눈 아주머니 역시 우리보다 긴 시간 뜨개를 하며 자신의 아이와 그 아이의 아이를 위한 것들을 만들어 왔을 것이다. 나 역시 지난번 할머니 선물로 뜬 모자를 시작으로 짝꿍을 위한 목도리를 뜨기 시작했다. 누군가를 위해 뜨개를 한다는 건 정말 진한 사랑을 바탕으로나 가능한 일임을 직접 확인하고 있다. 몇 번을 푸르고 다시 뜨는 과정을 여러 차례 겪다 보면 삶에 대한 진한 회의감까지 느끼게 된다. 나의 친구 유진과 아주머니 모두 피붙이를 위한 선물만 뜨고 있는 것만 봐도 알 수 있다. 한 작품을 만들려면 보통 최소 6시간에서 30시간까지 걸리니까 이런 시간이 응축된 형태의 사랑은 아무나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그러니까 우리가 단순히 시공간을 공유하는 것만으로 묘한 친밀감과 연대감을 느끼고 있는 건 아닐 것이다. 어쩌면 우린 제법 진하게 사랑할 줄 아는 사람들, 그러니까 무적 뜨개 사랑단이라고나 할까? 내가 느끼는 묘한 연대감과 따스한 마음이 어디에서 온 것인지 확인하고 나니 나에게 찾아온 뜨개란 취미가 더욱 사랑스럽다.
자, 그럼 오늘도 뜨겁게 사랑하러 가볼까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