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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unday Jul 16. 2022

여유와 포용의 과일

피스타치오살구타르트

계절마다 나무에게 어울리는 옷이 있듯 케이크 속 과일에게도 그에 어울리는 크림이 있다. 뭉근하게 허물어지는 바나나에는 진한 초코크림이, 밝음의 상징인 딸기는 마스카르포네 생크림이, 감정적인 레몬에게는 잔잔한 얼그레이크림이 자연스럽다.


피스타치오크림과 살구의 만남은 한껏 성숙해진  사람의 만남이다. 살구는 자두복숭아가 지닌 앳된 소녀 이미지와는 달리 한층  성숙하다. 지는 노을, 한여름 한껏 달아오른 단호박의 뺨처럼 짙은 주황의 살구는 겉보기엔 여리고 어려 보여도  속은 침착하고 여유 있다. 그래서인지 7월의 살구에서도 그런 관조의 맛이 났다. 예민하지 않은 삼삼한 물결처럼 영혼까지 부드러웠다.

피스타치오크림은 자칫 밋밋하고 느끼할 수 있어서 주로 체리나 라즈베리와 같은 경쾌한 과일과 어울리는데, 조신한 살구와의 조합은 살짝 의아하면서도 기대가 됐다. 크림을 슬쩍 떠먹자 고소함이 먼저 왔다. 알고 보니 100% 피스타치오크림이 아닌 아몬드분말이 첨가된 피스타치오다망드크림이었다. 그 위에 살며시 올라간 바닐라크림. 두 가지 크림과 파트 사브레, 살구의 즐거운 결합을 입안에서 오래 즐겼다. 안정적인 관계. 서로에 대한 신뢰가 늘 최상인, 안일한 사이. 주름 하나 없는 반듯한 마음. 오랜만의 여행에 공항을 거니는 여유로운 마음. 그런 맛이었다.

가끔 시큼한 살구도 있었다. 그것은 미숙한 짜증이나 반항이라기보다 이유 있는 방어였다. 예고 없는 신 맛을 접한 나조차 미간 하나 찌푸리지 않고 자연스레 넘기게 되던, 여유와 포용의 과일 살구.

마지막 포크질은 한 채의 집과 같았다. 머물고, 머물게 하고, 돌아오고, 돌아가는 포용의 집.

마지막 타르트의 모습은 꼭 조그만 집을 닮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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