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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부니엘 Sep 19. 2024

중학교를 전교 2등으로 졸업하다

그녀의 중학교 생활


중학교 때 받은 상장 개수로만 100개가 넘는다.

그때 당시엔 과목마다 우수상을 주었으니 시험 때마다 쓸어 담았다.

12과목이라는 어마어마한 양을 암기해서 4일 동안 시험을 보던 때였다.



전 과목 평균 97~98점.

12개의 과목 전체에서 7~8개까지만 틀려야 한다. 즉, 과목에서 최소 하나씩만 틀려도 힘든 점수.

만약 어떤 과목에서 3개 틀렸다? 이런, 다른 과목 2개에서 100점으로 메꿔야 한다.

저 정도가 나와야 '전교권에서 논다'라는 평을 듣는다.

정말 치열하게 각 반의 1등들과 경쟁을 하곤 했다.



한 반에 50여 명, 총 인원 600명. 지금은 상상도 못 하지만 콩나물시루 학교라 불릴 정도로 학생이 많았다.

세상에 머리 좋은 친구들은 정말 많았고, 노력이 뒷받침되지 않으면 밀리는 것은 한순간이었다.


다행히 나는 새로운 지식을 배우는 것을 좋아했고, 빨간 동그라미는 내 자존감의 원천이었다.

(오은영 박사님이 그랬다. 점수는 기억하지 못해도 공부했던 과정에서의 감정을 기억한다고. 꾸준한 노력으로 무엇이든 잘할 수 있다는 자신감은 조금씩 다져지고 있었다.)






자유로웠던 초등학교 시절을 지나, 학업 위주의 삶에 뛰어들었다.

중학교 시절부터 내 엉덩이의 고난이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다.

학원과 과외 뺑뺑이, 하루종일 앉아있는 시간이 자연스럽게 늘어났다.

지루하거나 힘들다는 생각보다는 공부를 하기 위해선 당연하다는 생각이었다.



중간고사, 수행평가, 기말고사까지 쉬지 않고 달리면 방학 숙제가 있었고, 끝나면 다시 학기가 시작되었다.

아예 추억이 없다면 거짓말이다. 친구들과 2002년 월드컵을 응원하기도 했고, 해리포터나 타이타닉처럼 대작들을 접하고 그 세계를 꿈꿔보기도 했다. 선생님을 좋아하는 마음에 수줍어하는 여중생이기도 했다.

하루 2시간씩 친구와 동생과 컴퓨터 게임에 빠져 놀곤 했는데, 그게 삶의 작은 여유였던 것 같다.



그렇게 3년을 보냈다. 휴~

중3 올라갈 때는 전교 1등을 했고, 중학교를 졸업할 때는 아쉽게도 하나 밀린 전교 2등으로 졸업했다.





끝나도 끝이 아니었다.

그 당시에는 '비평준화'라는 고등학교 입학 시스템이 있었다.

중학교 3년 간 공부했던 모든 내용을 하루에 시험 보는 '연합고사'가 남아 있었다.

내신 성적이 충분하 가장 좋은 학교에 입학하는 것은 당연했고, 이왕 갈 거 연합고사까지 잘해서 고등학교 시작 잘해보자는 욕심이 생겼다.


그 당시 나는 연합고사 전문 학원에 다니고 있었는데, 나를 위해 큰 방 하나를 통째로 내어주었다.

학원에서는 명문고 몇 등 합격이라는 플랜카드가 필요했고, 나는 입시고사 노하우가 필요했다.

모든 과목을 달달달 외웠다. 까먹으면 또 보고, 시험 치며 또 외우고.

밤늦도록 머리 터지도록 암기는 계속되었다.



12월의 추웠던 어느 날, 나는 연합고사도 우수한 성적으로 통과하여 장학금을 받으며 명문고에 입학하게 된다.



그러나 자랑스러움도 잠시, 2월의 첫 배치고사에서 100등이 넘는.. 인생 최초로 두 자리 수도 아닌 세 자리 수의 등수를 받고 만다. 충격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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