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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릴리 Apr 18. 2022

아빠를 닮지 않은 연인 찾기

헤어지고 난 뒤 가끔 전연인과 재회할 가능성을 점칠 때가 있다. 그는 현재 연인이 있는데도 갑자기 맘이 돌아서서 결국 내게 돌아올 거라는 미련이 마음 한 켠에 남아있는 것이다. 이제까지는 그런 생각이 들면 설레고 좋았다. 그런데 세 번째 워크숍을 마치고 불연듯 그 생각이 났을 때, 설레는 스스로에게 이런 말을 건넸다.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아. 미련이야. 이 말을 스스로 하면 마음이 무너질 줄 알았는데 아무렇지도 않았다. 이제 이렇게 생각할 수 있구나.


연애 텀이 꽤 있는 편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곰곰이 생각해보니 나는 연애를 하지 않을 때에도 꾸준히 짝사랑이나 썸을 타며 누군가와 관계를 맺었다. 빠지는 남자들의 공통점은 딱 하나다. 다정함. 아버지와 다른 남자들. 다정하고 무해하며 내가 이길 수 있는 남자들. 냉소나 잘난척보다는 부드럽고 천천히 말하는 남자들. 잘 웃고 곁을 내주는 사람들. 그런 상대가 내 세상에 나타나면 부르르 떨렸다. 잘 되기도 하고 안 되기도 했다. 들여다보면 그들은 다정함 말고는 또 공통점이 없었다. 누구는 다정하고 회피형이었으며 누구는 말투는 다정한데 이성을 좋아하지 않았고 누구는 다정하고 우유부단했다. 나는 그 사실을 다정하고 자격지심이 있는 남자와의 연애를 마치고 깨달았다. 아! 다정함이라는 건 하나의 특성일 뿐이구나. 혈액형이나 mbti보다도 그 사람에 대해 덜 알려 주는구나. 그거 하나만 보고 불나방처럼 덤벼들었기 때문에 실망하는 순간이 많았구나.


사실 내가 다정함과 애정을 받고 싶은 상대는 아빠였다. 할 일을 다 했느냐고, 성적이 왜 이러냐고, 혼낼 순간을 호시탐탐 노리는 아빠 말고 뭘 좋아하는지를 묻고 함께 해주는, 내 발걸음에 맞춰 걸어주는 아빠를 원했다. 아빠가 해주지 못한 것을 다른 남성들로부터 채우고자 했다는 것을 오랜 상담 끝에 알았다. 청소년기에 탐닉한 책이나 드라마 속에는 그런 남성들이 나왔다. 여자 주인공이 얻고자 하는 것을 알고 정신적이나 물질적으로 채워주는 남자들. 그 옆에는 자신에게 애정이 돌아오지 않더라도 한 여자만을 지켜보는 남자들도 있었다. 모든 드라마가 그런 이야기를 했기 때문에 나는 연애를 하면 자연스러운 수순으로 '남주'들이 나타날 거라고 믿었다. 하물며 서브남주라도!


현실의 연애는 훨씬 답답했다. 연애 상대는 나같은 평범한 인간이기 때문에 어설펐다. 그들은 남주가 될 재력이나 매력이 없었고, 서브 남주가 될 만한 지조도 없었다. 드라마에서는 갈등이 로맨틱한 방법으로 해결되었지만 현실 연애의 갈등은 지지부진한 기싸움의 연속이었다. 좋았던 기억도 많고 지난 연애로 성장한 부분도 있지만 언제나 실망으로 끝났다.


연애가 끝나고 고통에 허덕이다 상담을 시작했다. 헤어진  몇개월이 지났는데 감정이 돌아오지 않았고, 잔잔한 우울감이 매일 계속되자 상담실을 찾았다. 상담 선생님은  가지를 강조했다. "감정은 무시한다고 사라지지 않아요." , "애정은 누군가가 주기만을 기다리는 것이 아니고 스스로 줘야하는 거예요."


처음에는 어떻게 해야 할 지 감이 잡히지 않았다. 그래서 주위 사람들에게 연락을 하고 빈 시간을 채웠다. 그 시간도 지루해질 무렵, 지난 연인들이 했던 일을 따라했다. 내가 받고 좋았던 것들을 하기 시작했다. 뭘 해야하는지가 아니라 뭘 원하는지를 스스로에게 묻기, 혼자 있더라도 말로 화를 내거나 글로 쓰기, 시간을 들여 요리를 하기, 자기 전 오늘의 수고를 칭찬하기, 힘든 순간에는 내 잘못이라도 우선 상대를 실컷 욕하기 같은 것들. 어색해도 거울을 보며 사랑한다고 말했다. 처음에는 그 말을 하고 자리에 앉아 엉엉 울었다. 내게 그 말을 단 한 번도 한 적이 없었기 때문이다. 당연히 아빠에게 들은 적도 (내가 기억하는 한) 없었다.


이제는 넉살을 떨며 스스로에게 말을 하거나 감사한 일을 하루에 세 개씩 쓰며 평범한 하루를 제법 좋은 날로 둔갑시킨다. 그러다보니 보지 않았던 것들이 보인다. 내 곁에는 무수히 많은 다정한 여자들도 있었다. 밥을 해주고 한창 이야기를 들어주며 좋아하는 선물을 부담스럽지 않게 건네고 눈물을 닦아주는 여자들이 많았다. 하지만 그들의 애정은 이성 연인이 주는 것보다 한 단계 낮은 것으로 여겼다. 연인들의 다정함은 쉽게 부풀려 의미를 부여 했으면서 우정의 이름으로 건네지는 것들은 그러지 못했다.


내가 다정한 누군가를 찾는 일은 앞으로도 계속될 것이다. 습관처럼 그런 상대를 만나면 고개가 돌아가고 마음의 빗장이 풀릴테지. 그에게 선택받는 일이 내 가치처럼 느껴질 것이다. 하지만 이제는 말할 수 있다. 다정은 언제든 내가 주거나 받을 수 있는 거라고. 잘 모르는 상대에게 다정을 바라지 않아도 돼. 애정을 댓가로 하는 무리한 요구를 거절할 수 있어.  소녀들은 영원히 소녀가 아니라는 말을 들었다. 그들은 자란다. 자립한다. 책을 읽어주는 아빠를 갈구하던 한 소녀도 그렇다. 받아야 마땅한 애정을 구걸하지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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