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니스 여행자의 세계출장 견문록 06
마리오카트 타봤어요? 아직?
아 진짜 뭐했어요, 빨리 여기로 와봐요.
예상했던 대로였다. 아니, 나보다 멤버들이 훨씬 더 들떠 있었다. 참새가 방앗간을 그냥 지나치지 못하듯, 뼛속까지 게이머인 이들이 이곳을 마다할 리 없었다. 어쩌면 나보다 더 먼저, 더 깊이 이곳의 정보를 꿰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누가 누굴 인솔해 온 건지 헷갈릴 정도로 그들은 이미 저만치 앞서 달려가고 있었다.
워크숍의 첫 공식 일정으로 낙점한 곳은 신주쿠에 갓 문을 연 ‘VR ZONE Shinjuku’였다. 반다이남코 엔터테인먼트가 운영하는 이 VR 테마파크는 오픈한 지 두 달도 채 되지 않아 도쿄의 새로운 랜드마크로 급부상하고 있었다. 관광객과 현지인이 뒤섞여 인산인해를 이루는, 그야말로 ‘핫플레이스’의 열기 속에 발을 들이는 순간, 사람들이 왜 그토록 이곳에 열광하는지 단번에 실감할 수 있었다.
드래곤볼, 에반게리온, 공각기동대, 마리오 카트까지. 이름만 들어도 가슴이 뛰는 세계적인 IP들이 고퀄리티 VR 콘텐츠로 구현되어 있었다. 어린 시절을 함께한 익숙한 캐릭터와 세계관이 가상 공간 속에 생생하게 살아 움직이고, 그 품 안으로 직접 뛰어들어 주인공이 된 듯한 경험은 단순한 재미를 넘어선 뭉클한 감동이었다.
VR 업계에서 흔히 쓰는 표현인 ‘상상이 현실이 되는 공간’이라는 말이 이보다 더 잘 어울리는 장소는 없었다. 멤버들의 눈빛은 이미 ‘골수 게임 개발자’의 날 선 분석보다는, 꿈을 찾은 소년들의 순수한 호기심으로 반짝이고 있었다.
워크숍을 기획하며 처음 이곳을 발견했을 때, 내 머릿속엔 자연스럽게 얼마 전 베를린에서 겪은 강렬한 기억이 스쳤다. 스타워즈의 광팬으로서 IFA 2017에서 체험한 ‘제다이 챌린지’는 내게 단순한 경험 이상의 사건이었다. VR에 관심 있는 '척'만 하던 나를 ‘진심’으로 돌려세운 결정적 계기였기 때문이다. 그날 내가 느꼈던 그 전율과 확신을, 우리 멤버들에게도 고스란히 선물하고 싶었다.
결과는 대성공이었다. 멤버들은 입장과 동시에 다양한 콘텐츠에 몸을 던졌고, 어느새 VR이 주는 본연의 즐거움에 깊이 매료되어 있었다. 나와 친구는 그 광경을 흐뭇하게 지켜보며 잠시 뒤처져 있었다. 1층 로비에서 관람객들의 동선과 편의시설을 분석하며 직업병 섞인 관찰을 이어가던 중이었는데, 금세 저 멀리서 "빨리 와서 이것 좀 보라"는 멤버들의 들뜬 재촉이 날아왔다.
한참을 웃고 즐기는 사이, 멤버들은 이 신기한 공간 속에서 아주 중요한 진리 하나를 발견해냈다. 바로 가상 세계에서도 결코 변하지 않는 가치인 ‘함께하는 즐거움’이었다. 그리고 그날의 깨달음은 훗날 우리가 걷게 될 행보에 결정적인 나침반이 되어주었다.
註) 2025년 현재 이 장소는 도큐 가부키초 타워라는 새로운 랜드마크가 들어서면서 없어졌다
오후에는 도쿄게임쇼(TGS) 2017 관람을 위해 마쿠하리 멧세로 이동했다. 케이요선을 타고 카이힌마쿠하리 역에 내리는 순간, 역사를 가득 메운 인파와 거대한 전시장 규모에 압도당했다. 매년 지스타(G-STAR)를 빠짐없이 챙겼기에 게임쇼라면 익숙하다고 자부했지만, 세계 4대 게임쇼로 꼽히는 TGS의 스케일은 차원이 달랐다.
본격적인 관람에 앞서 역 근처에서 든든히 배를 채운 우리는 거대한 전시장을 다 함께 다니는 건 비효율적이라고 판단했다. 입구에서 티케팅을 마친 뒤, 각자 관심 있는 부스를 자유롭게 둘러보고 정해진 시간에 다시 모이기로 했다. 멤버들이 흩어지고 나자 인솔자라는 무거운 역할에서 벗어난 나는 비로소 홀가분한 마음으로 쇼장 이곳저곳을 구경하기 시작했다.
사실 내게 이번 TGS 관람은 신주쿠 VR 체험이라는 본 코스에 덧붙여진, 일종의 ‘미끼’ 같은 일정이었다. 그런데 예상치 못한 곳에서 발걸음이 멈췄다. 한국콘텐츠진흥원이 운영하는 한국 공동관 부스 앞이었다.
“아니, 이게 누구야? 여긴 무슨 일로 왔어요?”
거짓말처럼 우리에게 시드 투자를 해준 기관의 담당 이사님과 마주쳤다. 알고 보니 투자사 포트폴리오 중 한 팀이 이번 공동관에 부스를 냈고, 격려차 도쿄까지 날아온 참이라고 했다. 순간 머쓱한 기분이 들며 눈치가 보였다. ‘당장 망할 것 같다며 투자해달라고 읍소하던 놈들이, 돈 받자마자 해외 나와서 한가하게 노는 거 아냐?’ 혹시나 그런 오해를 살까 봐 도둑이 제 발 저리는 심정이 되었다.
하지만 걱정은 기우였다. 그는 반갑게 인사를 건네며 나를 주변 사람들에게 적극적으로 소개하기 시작했다. 현장에 부스를 낸 기업 대표들부터 진흥원 관계자까지, 정신없이 명함을 주고받다 보니 위축됐던 마음도 한결 편안해졌다.
그때, 진흥원 매니저 한 분이 내게 물었다. “맘모식스는 이번에 왜 부스 안 냈어요?”
나는 “아무도 안 불러주는데 어떻게 나가요?”라며 억울한 ‘프로 불참러’ 표정으로 대답했다. 그러자 그는 내년 1월 대만 게임쇼(TGS)에 경기도 공동관이 꾸려질 예정이며 곧 참여 기업을 모집할 것이라는 귀중한 정보를 건넸다.
그때 처음 알았다. 게임쇼 참가 방법이 자비(自費)만 있는 게 아니라, 기관의 지원을 통해 부스비, 통역, 심지어 항공권과 숙소까지 제공받으며 나갈 기회가 많다는 사실을 말이다. 엉겁결에 나는 공고가 뜨면 무조건 신청하겠노라 그 자리에서 덜컥 약속을 해버렸다.
다음편, '일본 도쿄 : 빨리 가려면 혼자, 멀리 가려면 함께 3' 으로 이어집니다
'비즈니스 여행자의 세계출장 견문록' 이번 주는 매일(월~일) 연재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