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여행, 왜 간 거예요?

Be Local!

by 최칠칠



돌아와 보니 그렇게 좋았던 때가 또 없었다. 암만 자유로운 대학생이라고 해도 한 달 가까이 일상의 모든 걸 그만두고 어디론가 훌쩍 떠나는 일은 쉽지 않다. 게다가 그 대학생이 두 달 방학 중에 반절을 대학 학보사 활동을 해야 한다면 더 그렇다.


맞다. 내 이야기다. 작년에 호주로 떠날 때 내 신분은 대학생이자 학보사 기자였고 기자로서 나는 다음 학기 사회부 부서장과 학보사 차장을 앞두고 있었다. 아무래도 나는 학보사 편집진이라는 중책을 맡아 더 바빠지기 전에 어디론가 떠나고 싶었나 보다. 나는 나와 함께 학보사에 한 학기 더 남아준 고마운 친구, 알라에게 방학 동안 여행이라도 훌쩍 떠나오자고 호주를 영업했다.


알라는 나와 대학 동기이자 학보사 입사 동기다. 학보사에 합격하고 수습기자들이 우수수 중도 포기를 외칠 때 나와 함께 학보사 차장단까지 마쳤다. 2년을 학보사에서 동고동락하며 싸운 적 한 번 없고 여행도 4번이나(!) 갈 만큼 잘 맞는다. 대학에서 만난 인연은 오래가지 못한다는 속설을 깨준 고마운 친구다.


핑크 코트를 입고 브이를 하는 왼쪽이 알라. 그 옆에서 눈 감아버린 노란 목도리가 나, 칠칠


아무튼, 알라에게 왜 호주를 영업했느냐고 묻는다면 그때 호주에 엄마의 지인이 학원을 하고 있어서였다. 또 다른 이유라면 악명 높은 호주의 인종차별을 몰랐던 것 정도(인종차별은 호주에 가서도 당해본 적이 없어서 아직도 잘 모른다)? 다녀와서 호주가 너무 좋았다고 떠들다 보면 다들 인종차별을 당하진 않았냐고 걱정해줘서 그때 호주의 인종차별을 알았다.


아무튼 나는 알라를 열심히 꼬셨고 착한 알라는 내 꼬임에 기꺼이 넘어가 줬다. 둘이서 신나게 그 학원이 호주 어디에 있는지, 그 근처에서 무얼 하고 놀 수 있는지 신나게 찾으며 우리의 핑크빛 호주 여행을 꿈꿨다. 하지만 벼락같은 소식이 들렸다.


세상에, 그 학원이 한국식 학원처럼 운영되고 있다는 것이었다. 나와 알라가 상상한 학원은 어학당처럼 조금 공부하고 많이 노는 곳이었는데 그곳은 눈 뜨면 공부하고 눈 감으면 쉬는 전형적인 한국 학원이라니. 한국 학원 입시에서 탈출한 지 2년도 채 안 됐는데 자발적으로 내 돈 내고 또 그곳에 들어간다는 건 절대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그렇게 호주 여행이 물거품이 되는 듯싶었다. 그때 문득 든 생각은, '그냥 떠나면 안 되나?'였다.


혼자 옆 나라 일본을 가는 건 절대 허락해주지 않는 엄마도 친구랑 바다 건너 호주 간다는 건 허락해줬으니 우리끼리 예산 좀 잘 짜서 가보면 되지 않을까?

아니 혼자서도 여행 잘만 다녀왔고 친구들이랑도 알차고 서로 만족스럽게 다녀왔는데 장기 여행이라고 해서 못할 게 뭐야?

그리고 호주도 이민자들 많다며! 동양인 여자애 둘이 간다고 해서 무슨 큰일이라도 나겠어(인종차별을 알았다면 절대 하지 않았을 생각)?

...



정신을 차려보니 70만 원 왕복 비행기 표를 끊은 뒤였다.



일단 오고 가는 표를 지르고 보니 그다음은 일사천리였다. 갈 지역을 고르고 호텔을 보고 호주 국내 비행기표를 보고 꼭 가봐야 한다는 곳을 다 받아 적고 서로 하고 싶은 것과 절대 하기 싫은 걸 공유해가면서 갈 곳 목록을 짜고 먹고 싶은 것들도 계획에 넣고… 그러다가 이게 진짜 현실인가? 싶을 때면 비행기 표와 70만 원이 빠져나간 내 통장 잔액을 봤다. 그만큼 나를 현실로 단숨에 멱살 잡고 끌고 내려와 준 특효약이 없었다.



멜버른 시티뷰


생각해보면 정말 반쯤 이게 진짜 되겠어? 싶은 마음으로 시작했던 것 같다. 학보사에 있을 때 반쯤은 포기한 마음으로 저명한 교수님에게 인터뷰 컨택을 넣고 거절 메일이 오면 그럼 그렇지, 싶지만 진짜 되면 발등에 불이 떨어져서 인터뷰 질문지를 몇 번이고 다시 고쳐보지 않던가? 아니면 닌텐도 스위치 추첨 이벤트 같은 대형 이벤트에 응모해서 떨어지면 그럼 그렇지, 하지만 진짜 되면 눈이 커다랗게 떠지고 진짠가? 싶지 않던가.


내 호주 여행 시작이 딱 그랬다. 떠나기 전날까지 커다란 캐리어를 2개나 싸 두고서도,


'나 진짜 내일 공항 가나? 내일부터 우리 엄마랑 아빠 3주 넘게 못 보는 건가? 나 내일 늦게 일어나면 진짜 70만 원 날리는 거야?'


...라는 생각만 주야장천 했으니 말이다.







시드니 하우스 앞에서, K국 하트맛을 봐라!


하지만 돌아와 생각해보니 3주가 아니라 한 달을 꽉 채워서 떠나야 했어! 하는 후회가 막심하다. 잘 모아둔 사진과 동영상 용량은 아무리 봐도 너무 부족하고 더 찍어왔어야 했나, 는 생각이 든다. 코로나로 집 안에만 있는 시간이 많아질수록 더 그렇다. 그리고 돌아와 일상을 보낸 시간이 더 많아질수록 호주에서 보낸 추억이 점점 희미해지는 것이 안타까웠다. 호주에 있을 때는 그 공간과 시간이 내 일상이었는데, 새로운 일상에 적응했다고 해서 이전의 일상을 잊어버리고 사진과 영상으로만 회상하는 게 싫었다.


그래서 다시 노트북 앞에 앉아서 사진을 정리하고 지도에 갔던 곳을 모두 표시하며 모든 추억 글로 한데 모으기로 결심했다. 사진과 영상이 담지 못한 내 추억의 공백을 글로 채우리라.


Be Local!


대학생 둘이 스스로 번 돈으로 떠난 호주 여행의 모토를 시작으로 호주 여행기를 써 내려 가보겠다.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