칠월 일일. 호주 멜버른 공항.
호주 국영 항공사인 콴타스 Qantas 항공을 타고 드디어 도착한 멜버른! 비행기에서 내리기 전부터 창가 밖으로 보이는 콴타스 항공사의 다른 비행기도 찍어보고 그랬다.
다들 해외로 여행 나가면 그러지 않을까? 나 진짜 온 거야? 같은 기분.
호주는 한국과 시차가 1시간밖에 차이 나지 않아서 더 그랬다. 분명 일본에서 왔는데 남반구인 여기는 아직도 해가 쨍쨍하고 인천 공항에서도 봤던 영어가 멜버른 공항에도 있고…
이런 나의 어벙벙함은 공항에서 나오자마자 눈앞에 보인 핸드폰 유심 개통이 생각나며 깨끗하게 사라졌다. 핸드폰. 낯선 땅 호주에서 길잡이가 되어줄 소중한 전자기기. 한국에서 어디로 개통할지도 다 정해두고서는 호주 공항을 나오는 데만 정신이 팔려 하마터면 그냥 잊어버릴 뻔했다.
초록창 블로그에서처럼 우리가 유심칩을 살 통신사는 나오는 게이트 바로 앞에 위치해있었다. 이름은 OPTUS. 호주에서 손가락 안에 드는 커다란 통신사라고 하던데 과연 멜버른을 여행하며 큰 매장을 여러 곳 볼 수 있었다. OPTUS 말고도 통신사가 하나 더 있었는데, 그때 우리가 선택한 옵션에 무료 데이터도 많고, 통화나 메시지가 전부 무료에 애플리케이션을 깔면 추가 데이터를 구매하는 방식이 다른 통신사보다 더 간편해서 선택했다.
줄을 섰지만 금방 내 차례가 다가왔다. 영어를 쓸 생각에 조금 들떴던 것도 잠시,
“무슨 옵션으로 할 건가요?”
“B요.”
“(해당하는 상품을 주며,) 다음.”
멋지게 말하려던 계획이 산산이 부서졌다. 나름 호주에 오면서 영어도 많이 쓰고 발음도 늘어서 가야지! 하고 다짐했던 마음이 흔들렸다.
설마… 이거… 여행 내내 단답형으로만 말하다 끝나는 거 아니겠지?
내가 말한 문장이 비행기 안에서 말한 ‘핫초코가 맛있네요. 고맙습니다.’ 이게 전부가 되는 건 아니겠지?
약간의 불안과 함께 유심을 갈아 끼우자 조금 뒤 통신사가 연결됐다는 알림과 함께 멀쩡하게 데이터가 작동하기 시작했다. 그때부터 우다다 가족에게 잘 도착했고 여기는 어떻다는 톡을 보내 두고서는 커다란 캐리어를 끌고 호주 버전 공항버스, 스카이버스 SkyBus 정류장으로 향했다.
스카이버스는 빨간 공항버스였는데, 2층으로 되어 있었다. 1층은 짐을 넣는 곳, 2층은 승객들이 앉는 곳. 사람들이 너무 많고 동시에 짐을 넣지 못해 친구와 따로 앉았지만, 그래도 점점 보이는 도시의 모습으로 내 관심사가 온통 쏠렸다.
공항버스를 타고 도착한 멜버른 중심부에 있는 커다란 역, Southern Cross에 도착했다. 아직 우버도, 호주의 대중교통에 익숙할 리 없는 우리는 체력도 남아돌고 어차피 호텔에서 조금 쉴 테니까,라고 생각하곤 역에서 호텔까지 걷기 시작했다.
다시 생각해봐도 그때의 나에게 제발 구글 지도를 켜서 커다란 캐리어를 끌고 호텔까지 가는 게 얼마나 힘든 일인지 알려주고 싶은 마음뿐이다. 호텔까지 30m도 남지 않은 거리까지는 평지에 인도가 잘 닦여있어서 망정이지, 호텔 근처 공사하던 길처럼 울퉁불퉁한 모양이었으면 그 자리에서 바로 우버를 불렀을지도 모를 일이다. 물론 새가슴 최칠칠은 그러지 않았다.
결국 사서 고생한 끝에 겨우 도착한 호텔 프런티어. 우리가 머물렀던 호텔은 코즈웨이 353이라는 곳이었는데, 입구가 골목에 있었다. 그러니까, 인도로 쭉 걷다가 오른쪽으로 돌고, 열 걸음 정도 가면 오른쪽에 코즈웨이 353이라는 이름이 보이는.
순간 일본에서의 호텔이 생각나며 소름이 쫙 돋았다. 일본 숙소도 근처가 썩 좋은 모습은 아니었는데. 거기도 유흥가였는데…
캐리어를 마저 질질 끌고 가서는 체크인을 하고 키를 받아 숙소에 들어가자 나의 걱정은 그저 기우에 지나지 않았다는 걸 깨달았다. 푹신하고 정돈이 잘 된 침대와 넓은 책상, 전자레인지와 헤어드라이어 등 기본적인 기기까지 전부 마련된 깔끔한 방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기에.
풀썩, 하고 침대에 누워 부비작거렸다. 오후에 호텔에 도착했지만 우리는 짧게 나가 돌아다니기로 했다. 호텔로 가는 길에 본 번화가가 우릴 잔뜩 들뜨게 했기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