잔디에 들어가지 마세요? 들어가서 드러누우세요!

칠월 일일. 트레져리 가든스.

by 최칠칠

우릴 들뜨게 했던 번화가의 이름은 플린더스 가였다. 플린더스 역이 있는 거리였으며 멜버른의 유명 관광지들이 모여있는 곳이었다. 도착한 날이고 체력이 넘치는 건 아니었으니 우리는 주변 거리에 익숙해질 겸, 첫날에 가기로 한 몇 군데의 관광지도 방문할 겸 걸어서 이곳저곳을 돌아다니기로 했다.


그 첫 번째 장소는 세인트 패트릭 대성당이었다. 밝혀두자면 나와 알라 둘 중 누구도 천주교 신자는 아니다. 그렇지만 아름다운 고딕 양식과 스테인드글라스는 누구에게나 아름다워 보이지 않는가. 호텔에서 나와 플린더스 가를 걷다 왼편에 보인 세인트 폴 성당도 한 번 들러봤다.




7월이었지만 호주는 겨울인 탓에 입은 옷은 전부 도톰하고 가을 날씨에 어울리는 것들이었다. 겨울 날씨에 가을 옷을? 싶지만 호주의 겨울은 한국의 가을과 비슷한 날씨였다. 패딩은 오버고, 코트 정도가 딱 적당한 날씨였다.


평소 보내던 한국의 겨울이 얼마나 말도 안 되게 추운 날씨였는지 깨달을 수 있었다. 겨울인데 코트만 입어도 괜찮다니... 생각해보면 한국에서 짐을 쌀 때부터 패딩이 필요 없다는 후기에 대박이다, 는 소감을 입버릇처럼 달았던 것 같다.


세인트 폴 대성당 앞에서


세인트 폴 성당 입구에서 찍은 사진 뒤편에 보이는 건물은 플린더스 역 건물이었다. 멜버른 여행 중에 들려보진 않았지만, 이렇게 사진으로나마 남길 수 있어서 다행이다.




트레져리 가든스 뒤편 길이 시원스레 뻗어있다. 길을 배경으로 웃고 있는 알라(왼쪽)와 나(오른쪽)


세인트 패트릭 성당을 가는 길에는 트레져리 가든스가 있었다. 도심 내 있는 커다란 공원 중 하나로, 개인적으로 높은 나무들이 양옆으로 우거진 길이 인상적이었다. 옆에 있는 피츠로이 공원처럼 공원 안에 여러 건물이 있는 공원은 아니었지만 한적한 분위기와 넓은 잔디에서 자유롭게 거닐 수 있다는 점이 좋았다.


근데 잠깐. 아까 말한 문장에서 한국에서는 상상도 못 하는 점을 보지 못했는지? 그렇다. 바로 ‘넓은 잔디에서 자유롭게 거닐 수 있다’는 문장이다! 호주 공원은 잔디에 그냥 들어가서 누워도 되고 앉아도 된다!


처음 공원을 갔을 때 한국에서 으레 봤던 ‘잔디에 들어가지 마세요.’라는 팻말이 안 보여서 얼마나 신기했던지. 들어가도 괜찮다는 팻말도 없어서 괜히 찔린 마음에 트레져리 공원 잔디는 들어가지 못했지만, 주변 사람들은 아주 자연스럽게 잔디를 가로질러 나무 밑에 앉아 있기도 했고, 반려견과 함께 산책하기도 했다. 그 모습에 약간의 용기를 얻어 다음 정원에서는 꼭 잔디에 들어가 보기로 다짐했다.


알라의 손이 특별 출연했다!


한 성당을 목표로 다른 성당도 기웃거리고 공원도 방문했더니 마치 내가 호주 멜버른의 시민이라도 된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로컬 시민처럼 다닌다는 건 이런 거구나! 로컬이 된다는 것에 들뜬 나는 평소 킬 생각도 못 했던 인스타 라이브를 냅다 켰다.


알라가 인스타그램 라이브 하는 나를 필름 카메라 어플로 찍어줬다


정확히 몇 명의 소중한 친구들이 참여해줬는지 기억은 나지 않지만 분명 5명은 넘었을 거다. 친구들의 참여와 함께 나는 신이 나서 트레져리 가든스는 이렇고~ 지금은 이런 옷을 입고 있고~ 호주의 겨울이 너무 마음에 든다는 감상과 함께 주절거리다가 더 지체하다간 성당이 닫을 것 같아 다음에 또 라이브를 켠다는 말과 함께 방송을 종료했다.


낯선 땅에서 한국으로 라이브 방송을 하는 경험은 신선했다. 자주 키고 싶다는 생각이 굴뚝같았지만, 막상 다음 여행부터 라이브 방송을 자주 생각하지는 못했는데, 그 이유는 나중에 말하겠다.




아무튼 트레져리 가든스에서 다시 세인트 패트릭 대성당으로 출발하려는 차에 나는 트레져리 가든스에서 가장 인상 깊게 본 그 거리를 발견했다. 마침 사람이 적은 시간대여서(직장인들이 열심히 일하고 있을 오후 4-5시였다) 알라에게 사진을 부탁했다.


어떤 포즈로 찍을까 고민했는데, 마침 알라가 새로운 애플리케이션을 샀다고 했다. 사진 찍는 포즈를 고민하는 사람에게 여러 가지 포즈를 제공하고 화면에 그 포즈에 맞춰 서면 되는 방식이었다. 참고로 나는 내가 웃기게 나오는 사진을 좋아해서 안 해본 포즈 중에 좀 웃기고 튀는 게 뭐가 있을까, 라며 고민하던 중 딱 내 취향의 포즈를 고를 수 있었다.


짜잔~!


이 사진은 아직도 내 구글 계정 프로필 사진이다. 1년이 지나도 아직도 이 사진보다 더 즐겁고 행복한 웃음을 지은 사진을 찾기가 힘들다. 만족스러운 인생 사진 한 장과 함께 다시 세인트 패트릭 성당으로 출발하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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