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 먹었습니다, 그 한 마디를 하지 못했다.

칠월 일일. 세인트 패트릭 대성당.

by 최칠칠

트레져리 공원에서 위쪽으로 두 블록만큼 이동하면 세인트 패트릭 대성당이 나온다. 첨탑이 위를 향해 우뚝 뻗은 것이 특징인 고딕 양식으로 지어졌다던 이 성당은 짓는데 80년이 걸렸다고 한다.


성당 내부로 들어갔을 때 보이는 정면


대성당 안으로 들어가면 세로로 길게 쭉 뻗은 예배실이 바로 보인다. 위를 보면 천장이 얼마나 높은지 사진으로도 그저 까맣게 보일 뿐이다.


올록볼록한 기둥


그 높은 천장을 받치고 있는 크림색 기둥은 올록볼록한 모양을 하고 있다. 기둥을 잘라서 본다면 아마 네잎클로버 같은 모양을 하고 있지 않을까. 네 개의 하트 모양 잎처럼 생겼을 것 같다는 상상을 하며 천천히 예배실을 걸어봤다.


맨 앞으로 가면 하얀 대리석과 함께 신부님이 미사를 보는 단이 나타난다. 냉담자인 나도 아주 어릴 때 세례명을 받을 적 저 단 비슷한 곳에서 축사를 받은 적이 있었다.


한참이나 빤히 대성당을 보다, 사진을 찍기를 반복했다. 기도를 한 것 같기도 하고, 하지 않은 것 같기도 하다. 하지만 만약 했다면 다음 학기의 순탄한 발간을 기도하지 않았을까, 싶다. 기도는 기도로만 끝난다는 것을 알면서도 말이다.


세인트 패트릭 대성당의 가장 큰 특징은 대성당 내부 촬영이 가능하다는 점이다. 플래시와 소리 내어 촬영하는 것은 불가능하지만 노을이 가득 비치는 스테인드글라스 빛만 있어도 충분하다. 세인트 패트릭 대성당 전에 들린 세인트 폴 성당에서는 촬영 자체가 불가능했고 이후에 갔던 성당들도 내부 촬영이 어려웠다는 점을 생각해보면 괜스레 대성당에서 좀 더 사진을 찍을 걸 그랬다.




사람이 별로 없어 한적하고 조용하게 대성당 안을 관람하고 나온 뒤 우리는 다시 플린더스 가로 돌아가기로 했다. 돌아가는 도중에 끼니를 해결하고 시청 앞도 다시 가보기로 했다. 공원도 돌아보고 대성당 내부에서도 별로 앉지 못해서 다리가 조금 아파 플린더스 가를 지나는 트램이 간절했지만, 그래도 우리는 꾸욱 참고 세인트 패트릭 성당 맞은편에 있는 Parliament 역을 통과해 펠레그리니스 에스프레소 바에 도착했다.


밥 먹으러 갔다는데 웬 에스프레소 바? 싶겠지만 이름만 그렇지 이곳은 다양한 종류의 이탈리안 파스타를 파는 곳이다. 중후한 노신사 두 분이 주방을 책임지고 계셨다. 대부분 메인 요리 파스타는 안쪽 주방에서 조리돼 나오고 밖에 있는 바에서는 카페 메뉴가 주를 이뤘다.


식당 내부가 좀 특이했다고 생각했는데, 아무래도 식당의 이름에 ‘바’가 있으니 일반적인 식탁이 아니라 바 형식의 식탁이 많았다. 벽 한쪽과 기다란 카운터에 길게 바가 붙어있었고 2인용 식탁이 4개뿐이었다. 우리가 방문했을 때는 식탁이 만석이어서 벽 쪽 바에 자리를 잡고 앉았다.


주문을 기다리는 칠칠


가게 분위기는 굉장히 화기애애했는데, 나이가 지긋한 분들이 대부분 이곳의 주방장들과 오랜 친분이 있는 분들인 것 같았다. 그만큼 단골이 많은 곳이라는 뜻이겠지?


단골이 많은 동네 식당을 발견했다는 것에 들뜬 마음은 오래 가지 못했는데, 벽에 붙은 메뉴판에 쓰인 수많은 파스타 메뉴에서 아는 게 별로 없었기 때문이다. 기껏해야 치즈가 들어간 파스타, 해산물이 들어간 파스타 정도?


게다가 따로 주문을 받는 점원도 없어서 어디다 주문을 해야 하는지, 선불을 해야 하는지 어떻게 돈을 지불해야 하는지 하나도 몰라 난감했다. 다른 손님이 주문했다면 그걸 보고 냉큼 따라 했겠지만 어쩐지 가게에 들어온 지 5분이 지나도록 주문을 하는 손님이 하나 없었다.


그렇지만 주문을 하고 밥을 먹어야 했다. 우리는 해산물 파스타로 메뉴를 통일하고 나는 벌떡 일어나 카운터(로 보이는 카페 바) 근처에서 서성거렸다. 웬 키 작은 애 하나가 통로에서 버벅거리니 그걸 발견하신 카페 담당 주방장이 나를 불렀다.


“뭐 필요한 거 있으신가요?”

“아, 저, 해산물 파스타 2개요.”

“2개요?”

“네, 2개요.”

“알겠습니다.”


그리고 주방으로 휙 들어가는 주방장님.


뭐지. 후불인가? 나 맞게 주문한 거겠지? 잘 말한 거겠지?


알쏭달쏭한 기분과 조금 불안한 기분으로 주문한 음식을 기다렸다. 기다리며 핸드폰도 조금 만지작거리고 주변도 둘러봤다. 긴장해서 그런지 파스타가 나오는 시간이 점점 늦어지는 것 같았다. 그리고 그렇게 느낄수록 나의 불안도 더욱 커져만 갔다.




오늘의 저녁: 해산물 파스타


“해산물 파스타 나왔습니다.”


마침내 나온 우리의 파스타! 절로 우와!라는 탄성이 나왔다. 접시 한가득 나온 많은 양에 파스타 위에 듬뿍 올려진 온갖 종류의 해산물까지. 해산물 특유의 비린 바다향이 물씬 올라왔다. 나는 그게 괜찮았지만, 알라는 오래 맡기 힘들어했다. 비린 향에 대한 호불호를 제외하면 해산물 파스타를 저녁으로 선택한 건 훌륭했다고 볼 수 있다.


그렇게 다 먹고 기분 좋게 계산까지 끝냈더라면 완벽한 에피소드였겠지만 끝은 그다지 만족스럽지 못했다. 계산해주시는 주방장분이 우리에게 음식이 입맛에 맞았냐는 형식적인 인사를 건네셨는데 이걸 한 번에 알아듣지 못해 전혀 못 알아듣고 얼렁뚱땅 대답을 못 하고 계산이 끝나버렸기 때문이다.


여행을 다녀온 지 몇 달이 지나도 이 점이 손톱 밑에 끼인 모래처럼 마음에 걸렸다. 물론 이 경험을 발판 삼아 다음 식당에서부터는 대답도 꼬박꼬박 웃는 얼굴로 할 수 있었지만 맛있는 음식을 요리해주신 분께 맛있게 잘 먹었다는 말을 못 한 건 변함없는 사실이기 때문이다.


코로나가 잠잠해지고 다시 멜버른에 갈 수 있다면 꼭 한 번 더 들려 이번에는 꼭 대답하고 싶다.


정말 잘 먹었다고. 그때 못 한 인사를 꼭 드리고 싶었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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