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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칠칠 Jan 16. 2021

은으로 뒤덮였다면 어땠을까?
교토 은각사

그렇지만 이끼로 뒤덮인 모습도 운치 있었습니다.


    오전 10시. 빡빡한 일정을 시작하는 시간이다. 지난밤에 편의점에서 사 온 오니기리 주먹밥 하나를 먹으며 오늘의 첫 번째 목적지, 은각사로 향했다.


    교토에서 어디를 가야 할지 찾아볼 때 양대 산맥처럼 나오던 관광지가 두 개 있었다. 금각사와 은각사다. 그 둘의 이름이 가장 많이 나와서 양대 산맥처럼 느낀 것도 있지만 위치도 그 표현처럼 딱 정반대였다. 금각사는 서쪽에, 은각사는 동쪽에 있었다.


    뭐가 더 좋아 보였다면 삐까번쩍한 금각사에 방문했을 수도 있었지만, 이번 교토 여행을 짜다 보니 경로가 대부분 교토의 동부에 있어 자연스레 은각사를 목적지로 정하게 됐다. 금각사는 아마 다음 교토 여행에 가지 않을까, 싶다. 타이밍을 맞출 수 있다면 새해에 맞춰 가고 싶다. 새해가 되면 그해의 운세를 뽑는 행사를 한다던데, 거기에 참여해보고 싶기 때문이다. 아마 간다면 2022년의 운세를 알아볼 수 있지 않을까?




    아무튼 이튿날 맑은 날씨에 은각사로 출발했다. 미완의 목조 건축물인 은각사는 원래 사찰 관음전 전체를 은으로 덮을 계획이었다고 한다. 하지만 재정상의 문제로 그리 할 수 없어 미완으로 남았다고. 그렇지만 그 특유의 소박함으로 일본의 국보이자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돼있다. 되려 이런 비하인드 스토리가 ‘정말 이 사찰이 은으로 덮였다면 어땠을까?’라고 생각하게 만드는 재미를 더해준 것 같다.


졸졸졸 시냇물


    은각사 바로 앞에 있는 버스 정류장에 도착하면 얼마 걷지 않아 벚꽃 나무가 양쪽에 늘어진 입구가 보인다. 그 입구로 향하면 조그마한 운하가 은각사 입구를 지나 그 옆에 뻗은 철학의 길까지 안내한다.


옅은 분홍색이라 더 예뻤던 벚꽃


    내가 방문했던 때가 일본 내에서도 벚꽃이 많이 피기로 유명한 시기였나 보다. 그날 어디를 방문해도 사람이 정말 많았다. 평소라면 사람이 복작거리는 곳이 피곤하다며 인적이 드문 곳을 찾았을 텐데 그날은 왜인지 그 인파 속으로 들어가 발걸음을 맞추고 싶었다.


    사람들과 같이 걷는 듯, 홀로 걷는 듯 걷다 보니 어느새 은각사에 도착해있었다. 표를 구매하고 안으로 들어가면 채도가 낮아 차분한 분위기의 사찰이 시야를 가득 채운다.


    차분한 진갈색과 짙은 녹색 사이에 스며든 상아색. 은각사가 품은 분위기를 구성하는 조각이었다.


    하지만 이 은각사를 더 특별하게 만들어주는 점이 있다면 나는 이끼라고 말하고 싶다. 이끼. 요즘은 정말 보기 힘들다. 이끼만 두고 본다면 사실 둬봤자 좋을 게 없다. 이끼가 자라는 곳은 습하고 잘못 밟았다가는 미끄러지기 십상이라 다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이끼는 심녹색이고, 은각사의 나무와 돌 위에 얇게 덮인 이끼는 괜히 한번 만져보고 싶은 충동이 들 정도로 부드러운 감촉이었다. 이끼는 은각사 건축물을 모두 보고 그 전경을 위에서 내려다볼 수 있는 돌계단에서 가장 많이 볼 수 있는데, 이끼에 뒤덮인 돌계단을 보다가 은각사 전경을 보면 그렇게 감탄이 나왔다.




    은각사 건물들 사이를 돌아다니다 이 돌계단까지 올라오면 복작거리던 사람들이 많이 줄어든다. 혼자 이것저것을 꺼내기에 많은 공간을 가질 수 있어서 나는 어젯밤 엄마에게서 온 카톡을 기억해 셀카봉으로 영상 통화를 걸었다. 멋대로 바다 건너 타국에 와 버린 딸이 나름 좋은 풍경을 엄마와 공유해 사과하는 타이밍을 만들어보려는 몸부림인 셈이었다.


“엄마! 나 교토다!”


    아직도 기억하는 내 첫마디다. 엄마가 화를 내지 않고 어휴,라고 작게 한숨만 내쉰 게 그나마 다행이었을까. 엄마는 흥분한 목소리가 아닌, 밥은 잘 먹고 다니니?라는 말투로 내게 안부를 물었다. 어쩌면 내 얼굴을 1초 보여주고 바로 은각사의 전경을 보여준 탓에 화를 낼 타이밍이 없어서 그랬을 수도 있다. 하지만 뭐가 어쩌면 어떤가. 엄마가 지금 당장 화만 안 내면 만사 오케이지!


    미안함 반, 머쓱함 조금, 그리고 얼른 엄마가 이 광경을 멋있다고 말해주길 바라는 마음에서 나는 신이 나 엄마에게 이곳이 어떤 곳인지, 어제 일본에 도착해서 얼마나 힘들었는지를 은각사 돌계단 귀퉁이에 앉아 떠들어댔다. 엄마는 5분 남짓 됐던 내 이야기를 차분하게, 어떨 때는 재미있다는 반응을 해주며 들어줬고 나는 조금씩 사람이 밀려오자 저녁에 다시 통화하겠다는 말을 남겼다. 엄마는 마지막에도,


“어쩜 그렇게 감쪽같이 거짓말을 하고 애가 겁도 없이 혼자 비행기를 탈 생각을 했어?”


라고 물어왔다. 혼내는 말투가 아니었지만 저지른 잘못이 있기에 나는 군말 없이 웃기만 했다. 건강하고 다치지 않고 별 탈 없이 지내겠다는 약속 하나와 저녁에 사진을 많이 보내주겠다는 약속 두 개를 하고 영상 통화를 마무리했다.


    은각사에서 엄마에게 자총지총을 고하고 다시 돌계단에서 내려온 나는 마지막으로 그 전경을 눈에 꽉꽉 눌러 담았다. 정말이지 은각사에 방문한다면 다들 그 뒷산 계단에 올라가 이끼도 만져보고 은각사 전경을 바라보는 걸 추천한다. 금각사에 가본 적이 없어 비교는 할 수 없지만 분명 금각사에 다녀와도 은각사에서 느낄 수 있는 이 감상을 잊지 않을 자신이 있다.


    1시간 동안 은각사도 구경하고 엄마에게 이실직고도 해서 마음도 홀가분해졌겠다, 나는 배를 든든하게 채우기 위해 은각사 입구 앞에 있는 아이스크림 가게도 지나쳐 점심으로 먹기를 고대했던 식당으로 향했다.


바로 찍어먹는 냉우동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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