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ms 텐진 파르코점
금요일은 단언컨대 일주일 중 최고의 요일이다. 다음 날이 수업이 없는 토요일이기 때문에 부담을 갖지 않아도 될 뿐만 아니라, 이번 한 주도 수고했다며 나 스스로에게 휴식의 시간을 허락하기 위한 좋은 명분이 되어주기 때문이다. 그뿐인가? 다음 날 아침 일찍 일어나야 한다는 생각을 할 필요가 없기에 저녁 늦게까지 거리를 활보하며 놀러 다녀도 양심의 가책이 느껴지지 않는다. 이 점에선 토요일도 마찬가지라 생각할 수 있지만, 아침 일찍부터 학교나 회사에 가서 고된 시간을 보내다 그날의 일과를 마치고 맞는 금요일 오후의 해방감은, 그저 하루 종일 쉬기만 하는 토요일과는 엄연히 다르다. 원래 일하고 먹는 밥이 가장 맛있는 법. 신나는 옛날 노래의 제목 대부분에 '금요일 밤 Friday night' 이 들어가는 것을 보면 쉽게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런 모든 게 용서되는 금요일이기에, 오늘만큼은 멀리 나가보기로 했다. 그래 봤자 자취방에서 도보 20분, 하카타 역에서 30분 거리인 텐진 시내에 불과했지만 평소 내 행동반경을 고려해 본다면 모험담이 되기에 충분했다. 카페 델 솔 편에서도 잠깐 언급한 적이 있지만, 텐진이란 곳은 후쿠오카의 시내로 온갖 관광객들이 모여드는 곳이다. 텐진역 자체의 규모는 하카타역에 미치진 못하지만 그를 중심으로 늘어선 백화점 건물들과 수많은 곳으로 이어져 나가는 인도는 사실상 하카타의 대선배 격인 셈이기에, 실제로 하카타에 거주하는 사람들도 약속이 생기면 텐진 근처에서 모여 노는 경우도 많다. 나 또한 하카타에선 느낄 수 없는 그런 텐진의 왁자지껄한 분위기가 좋았다. 체류 기간이 길어짐과 더불어 반복되는 일상에 지루해질 쯤의 나에게 관광객의 기분을 느껴주게 한 곳은 언제나 텐진이었고, 그렇기 때문에 그곳의 '새로움'을 되도록이면 아껴서 음미하고 싶었다. 그렇게 텐진은 내 마음속에서 자연스레 '특별한 날에 놀러 가는 곳'으로 자리 잡게 된 것이다.
이실직고하자면 처음부터 이 집을 방문할 계획은 없었다. 들뜬 마음에 텐진의 휘황찬란한 시내를 신나게 돌아다니고 백화점의 모든 층을 구경하고 나자, (당연하지만) 어느새 배가 심하게 고파왔다. 마침 백화점 파르코의 상층부에서 신발을 구경하던 참이었기에 따로 멀리 나가진 말고, 그냥 이 건물 지하 식품관으로 내려가서 그때 끌리는 메뉴를 먹기로 정했다. 게으른 건 아니고, 그냥 이게 내 성격이자 신념이었던 것이다. 백화점 구경을 마친 후 그 건물 지하(경우에 따라선 최상층) 식품관에서 식사를 하면, 그 백화점을 정말 잘 구경했다는 느낌이 든다. 아무래도 이건 나만의 생각인 것 같지만.
그런 식으로 해서 식품관을 돌아다니다 눈에 들어온 곳이 이 오므라이스 식당, OMS이었다. 백화점 식품관인 만큼 가게와 복도의 경계가 일반 벽이 아닌 낮은 펜스로 되어있어서 나의 호기심(이라 쓰고 식욕이라 읽는 무언가의 감각)을 자극하는데 충분했고, 한국에서도 제대로 된 오므라이스를 먹어본 적이 없었기 때문에 가게 앞에 세워진 메뉴판을 쳐다보면 볼수록 나의 마음은 더욱 오므라이스에 끌렸다. 가게 맞은편에 평소 자주 가던 탄탄멘 가게가 뜨끈뜨끈 육수 냄새 강공격을 시전해 온 바람에 아주 잠깐 흔들릴 뻔했지만, 한번 정한 이상 내 점심 메뉴를 바꿀 순 없었다. 나도 이제 어엿한 고딩, 메뉴 선택에 있어 외부의 유혹에 흔들리진 않는다. (나 참 그럼 오므라이스의 냄새는 유혹이 아니었던 것인가...)
신념이라기엔 뭐 하지만, 처음 가보는 식당일 경우 무조건 그 식당의 간판 메뉴를 주문하곤 한다. 어떤 사람은 음식에 대한 참된 자세라며 경의를 표해오곤 하는 반면, 어떤 사람은 앞뒤가 꽉 막혔다며 한숨을 쉰다. 그러나 나는 꽉 막힌 사람이기 때문에 언제나 간판 메뉴를 시킨다. 그리고 그 선택은 대체로 옳다. 간판 메뉴는 그 식당 자체를 평가하는 데에 있어 좋은 소재가 된다. 맥도날드의 치즈 스틱과 버거킹의 콘 샐러드를 예로 들어보자. 그 메뉴론 둘을 비교할 수 없을뿐더러 각각의 식당 자체를 전반적으로 평가하는 것조차 불가능하다. 이유는 단 하나, 그 식당의 간판 메뉴가 아니기 때문이다. 간판 메뉴를 먹어야만 비로소 그 식당을 평가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다른 식당과의 비교도 가능해진다. 바로 이 점이, 나의 '간판 메뉴'에 대한 집착을 강화시키는 것이다.
말이 길어졌는데 여하튼 요약하자면 오늘도 간판 메뉴를 주문했다는 뜻이다. 단품 880엔의 「사르르 비프 소스 특제 오므 하야시 라이스」 는 간판 메뉴인 주제에 이름부터가 과하게 매혹적이었다. 가장 기본인 간판 메뉴가 '비프 오므라이스' 같은 담백하고 단조로운 이름이 아니라니, 다른 의미로 신선했다. 메뉴가 나오기까지 시간이 꽤 걸렸지만 시간대도 시간대인 만큼 매장 내가 꽤 붐볐으니 그러려니 했다. 사실 딱 점심 시간대라기보단 인파가 줄어들 무렵의 2시 반 경이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좌석을 차지하던 많은 머릿수는 오므라이스에 대한 내 기대를 부풀어 오르게 했다. 일개 오므라이스 집이 이렇게나 인기가 있단 말인가. 내 오늘 그 실체를 폭로해주리다.
라는 어이없는 다짐과 함께 매장 내를 둘러보았다. 벽을 보고 앉는 1인석부터 푹신한 소파의 4인석까지, 보고 있자니 살짝 키치-레트로 한 인테리어가 한국의 옛날식 디저트 카페(ex: 캔X아...)를 연상케 했다. 다만 이 쪽은 인테리어가 조금 더 정돈된 느낌이고, 다른 쪽과 다르게 생과일 전문이 아니라는 점에서 차이가 있다. 이런 잡스러운 생각을 하던 참, 주문했던 「사르르 비프 소스 특제 오므 하야시 라이스」 가 드디어 모습을 드러냈다.
생김새를 보고 있자니 어째선지 바다에서 태풍이 막 생겨나기 시작할 무렵의 모습과 비슷해 보였다. 나중에 찾아보니 실제로 '회오리 오므라이스'라고도 한다고. 별칭으론 '드레스 오므라이스'가 있는데, 기발한 네이밍이다. 사실 계란이 평범한 오므라이스처럼 평평한 타원형이었다면 나나 가게를 찾은 다른 사람들이나 이렇게까지 끌리진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나는 오늘 처음 본 이 식당에, 오로지 오므라이스 지단의 모양에 이끌려서 들어왔다. 그 점부터가 이 오므라이스를 증명해 준 셈이지만, 모두 오므라이스의 '모양' 에만 현혹되어 내점한 것이라면, 처음 오는 손님에 비해 재방문객의 수는 현저히 낮음에 틀림없다. 그러나 꼭 그렇지만도 않은 듯했다. 거기서 나는 생각했다. 분명 모양만이 이 가게의 자랑은 아닐 것이다, 손님의 재방문을 유지하는 무언가가 있을 것이다,라고.
주방에서 막 나온 오므라이스는 부드럽고, 또 촉촉했다. 열기 덕에 솟아오르는 냄새 만으로도 농후한 비프 소스를 감지할 수 있었다. 무게 있는 쇠 숟가락으로 계란 지단을 살짝 끊어 밥과 함께 입에 넣었다. 살짝 과장된 표현으로 들릴지도 모르겠지만, 평생을 살면서 계란에서 이런 식감이 나올 수 있는지 처음 알았다. 수란보다는 굳건하게 형체를 갖춘 계란이, 입에 들어간 순간 깊은 풍미의 소스와 함께 어우러져 사르르 녹는다. 고소하면서도 비린내가 일절 나지 않는 계란이 한입 또 한입, 하며 나의 다음 숟가락을 독촉한다. 어느 순간부터 내 숟가락은 오므라이스에 의해 지배당하게 되었다. 일개 오므라이스가 식탁에서의 주종관계를 뒤집어버린다.
소스 또한 오므라이스의 완성에 한몫했다고 본다. 제 아무리 유기농에 맛있는 유정란이라 해도 계란 특유의 텁텁함은 감추려야 감출 수가 없을 터. 그러나 그런 계란의 치명적인 약점을 비프 소스가 커버해준 것이다. 고구마와 김치, 또는 요거트, 또는 우유(유감스럽게도 지인들의 취향이 각자 다 달랐다)와 같은 계란과 비프 소스의 조합은 접시를 받아서 식사를 마치는 순간까지 단 한순간도 질리지 않게 해 주었다. 돈까스 정식도 먹다 보면 질리는데, 그보다 더한 오므라이스를 처음부터 끝까지 완식하게 해 준 이 가게의 특제 비프 소스는 부드러운 계란만큼이나 영웅과 같은 존재였다.
앞서 재방문 손님이 꽤 있는 듯하다고 언급한 적이 있었는데, 그때까지만 해도 내가 그런 손님 중 한 명이 될 줄은 생각조차 하지 못했다. 도장깨기 느낌으로 다른 메뉴들도 도전해 보고 싶다는 마음에 간절해지면 찾게 되었다. 집 앞 편의점마냥 자주 가지 않은 건, 집 앞 편의점만큼의 거리도 아니었을뿐더러(농담 반 진담 반), 너무 자주 찾아가면 이 집 오므라이스의 '특별함' 이 사라질까봐, 아끼는 마음에 그랬던 것이다.
자주 무언가를 아끼는 나머지 그 마음이 '아까움'으로 변질되는 경우도 종종 있다. 그럴 때마다 주변으로부터 "아끼지 마라"는 말을 듣기 일쑤지만, 때로는 무언가를 아끼는 마음이 그것을 더욱 특별하게 만들어 주는 것 같다. 물론 경우에 따라선 달리 해석될 수 있지만, 아까움으로 변질되지 않는 한, 아낀다는 건 참 좋은 것 같다.
각설. 지금부터는 재방문과 다른 메뉴의 감상평을 조금 남겨보려 한다. 2회 차 방문 때는 「베이컨 버섯 크림 오므라이스」 에 도전해 보았다. 스파게티를 먹을 때도 해물 토마토류만 먹던 내가 '크림'이 베이스가 되는 메뉴를 시킨 건 꽤나 큰 도약이라고 볼 수 있다. 비프 소스에는 없던 크림만의 고소함이 더해져서 같은 계란인데도 더 달콤하게 다가왔다. 베이컨의 짠맛이 자꾸 손길을 유도했고, 버섯도 부드러운 크림소스와 잘 맞물려 조화를 이루었다. 시각적으로는 브로콜리의 공이 상당히 컸다. 베이지, 연핑크의 저채도 식재료 사이에서 돋보적인 존재감을 뽐내는 브로콜리에게 시선이 가지 않을 수 없었다. 어쩐지 집에서 초장 찍어먹던 브로콜리보다 더 맛있게 느껴졌던 건 단순한 기분 탓일까, 아니면 정말 브로콜리가 그 접시의 천상천하 유아독존 유일무이 범접불가 킹카였던 것일까.
처음 가게에 들어올 때만 해도 세 번째 방문까지 오게 될 줄은 몰랐는데, 어쩌다 보니 그렇게 되었다. 세 번이나 왔는데도 메뉴판에는 아직 먹어보지 못한 메뉴가 잔뜩 실려있었다. 그러나 신 메뉴에 대한 호기심도 잠시, 항상 단품만 주문했기에 이번만큼은 세트 메뉴를 먹어보고 싶었다. 그래서 3회 차 방문 때엔 「소고기 햄버그 오므라이스」 와 「OMS 보울 샐러드」 를 맛보기로 결심한 것이다. 이 메뉴는 다른 오므라이스 메뉴와 달리 작은 프라이팬에 담겨 나오는데, 아마 '소고기 햄버그' 의 이미지를 살리기 위해 의도한 것이 아닐까 싶다. 아무리 햄버그의 형태라곤 해도 명색이 소고기인데 일반 접시에 담으면 뭔가 특별한 느낌이 들긴 힘들 테니.
햄버그란 걸 의식하면서 먹어서 그런 건진 몰라도, 처음에 먹었던 비프 소스보다 조금 더 깊은 맛이 있었던 것 같았다. 그러나 그 맛마저도 익숙해질랑말랑 할 때쯤 햄버그가 기강을 잡아준다. 입에 넣자 육즙이 가득 퍼지는 햄버그는 전문점과 맞먹을 정도는 아니지만 오므라이스 집 치고는 훌륭한 수준이었다. 푸근하고 연한 계란 지단에 올라탄 강인한 햄버그는 얼핏 보면 한쪽에 편향되기 쉬운 조합이지만 상상 이상으로 어울렸고, 비비드 한 색감과 자태를 자랑하는 당근과 브로콜리도 선량한 소비자를 향한 시각적인 유혹을 멈추지 않았다. 크림 오므라이스 속에선 창백함에 가까웠던 녹색의 브로콜리가, 햄버그의 존재감에 지기 싫었는지 이번엔 선명한 녹색을 띠고 있었다. 뜨끈한 소스에 곁들여 먹는 두 채소 모두 푸근하고 부드러운 게 평소 둘을 즐겨 먹지 않는 나의 취향마저 개조해버렸다. 느끼해질 즈음 정신을 차리게 해주는 푸릇푸릇한 샐러드도 빼놓을 순 없다. 토마토와 파프리카, 콘, 그리고 가장 중요한 새콤 짭짤 드레싱이 잘 어울려서 입 안에 남아있던 잔향을 전부 리프레쉬해준다. 난 오므라이스와 샐러드를 세트로 판매하는 이유를 이날에야 비로소 이해할 수 있었다.
글로 담진 않았지만 세 번째 방문 이후로도 몇 번이고 이 가게를 찾았다. 생각나면 한번, 그러나 단골이 되진 않을 정도의 빈도로. 이유는 모르겠지만, 이 식당만큼은 '매일 가는 식당' 보단 '가끔 가는 특별한 식당' 의 이미지로 남기고 싶었다. 한국에 있을 때도 이런 마음이 든 적은 없었는데, 일본에서 고작 몇 주 체류한 사이에 한 식당을 점찍어두는 일이 생기다니 어딘가 복잡한 기분이다. 하카타에 거주하면서 이런 마음이 드는 식당이 얼마나 더 생길 진 모르겠지만, 더 생긴다면 그것 또한 그것대로 큰 기쁨임에 틀림없을 것이다.
주소 : 〒810-0001 Fukuoka, Chuo Ward, Tenjin, 2 Chome−11−1 福岡パルコ 本館
전화 : +81 92-235-7120
영업시간 : 오전 11:00 ~ 오후 11:00
* 저는 음식, 맛집 블로거가 아니며 매장 혹은 점주로부터 어떠한 대가를 받고 글을 쓰지 않습니다. 일본에 단기 어학연수차 2달간 후쿠오카에 체류하면서 나름 최고의 식당을 찾아 떠난 극히 개인적인 체험담을 일기 삼아 브런치에 차곡차곡 담아보려 합니다. 이 곳에 올려진 그림은 제가 직접 그리거나 촬영하여 편집한 사진으로써 저의 사전 동의 없이 무단으로 도용하거나 퍼가시면 안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