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 Round] 사는 게 뭐라고...

《나는 고양이라고!》《유럽, 소설에 빠지다》

by 필화

친애하는 나의 친구 필화 님, 오늘도 좋은 하루 보내고 있나요?



문득 떠올린 것인데, 편지를 열어보게 되는 시간이 그 편지의 내용을 받아들이는 전반적인 정서의 상태를 크게 좌우하는 것 같습니다.

아침에 열어보면 조금 더 차분하고 이성적으로, 오후에 열어볼 때는 활기 있고 명랑하게, 드물지만 밤에 보게 된다면 아주 많이 감정적으로… 달리 말하자면, 악보를 읽을 때 높은음자리표 옆의 조표를 결정하는 듯한 느낌이랄까요. 며칠 전 메일을 열었을 때는 마침 자정이 가까운 시간이었죠. 저는 그만 D 마이너를 그리고 말았습니다.



역시 작가들이 아무리 아포칼립스적 상상력을 발휘한들, 아니 그 무엇을 떠올린들 현실의 천박함과 졸렬함은 따라잡을 수가 없겠군요. 인간이라는 종 자체에 심각한 회의감을 갖지 않을 수 없습니다.


충격적이라는 말조차, 요즘은 그다지 충격적이 아닌 상황에서 마구잡이로 쓰이고 있어서 그 의미가 상당히 빛바래지 않았나 짐작합니다만 도무지 적절한 비유가 떠오르지 않습니다. 윤리는, 인간종의 본성이나 특질이 아닌가 봅니다. 그렇다면 그것은 문화의 소산인가요? 그렇다고 믿기엔 이 문화조차 심각하게 양분된 것 같습니다.



중산층의 소멸과 비슷한 양상일까요, 만약 정말로 중간지대의 문화가 사라져 가고 있다면 말이에요. 아, 이것은 어쩐지 사회학의 영역으로 넘어가는 문제인 듯해 이쯤에서 줄여야 할 것 같습니다. 하지만 제 짧은 소견으로, 저는 이것이 언어의 문제와도 깊은 관련이 있는 듯합니다. 갈수록 언어는 축소되어 가고- 세계는 단순화, 평면화, 양극화되어 가고 있죠.


언젠가 이 문제에 대해 깊이 생각해 볼 기회가 있으면 좋겠습니다.




각설하고,


제가 지난번에 이번엔 명랑하게 가보겠습니다라고 약조한 바가 있군요.


필화 님의 답장을 받자마자 제가 생각했던 책은… 네… 지난 라운드와 같은 장르인 것은 뭐 그럴 수 있다 치더라도, 만만치 않게 암울한 배경을 가진 이야기여서 몹시도 아쉽지만 내려놓기로 했습니다. 연달아서 음울한 이야기를 하기엔 저도 좀, 힘이 들어서 말이죠…


역시나 쟁쟁했던 후보들을 물리치고 오늘 당선된 책은, 정말 귀엽고 재미있는 책입니다. 제 기분을 끌어올리는 주요 키워드가 고양이인 것인지(설마?), 저는 오늘도 귀여운 고양이 책을 가져왔어요.



그런데 왜냐?라고 물으신다면 이렇게 대답해 드릴게요. 지난 편지를 보면서 저는 내내 인간의 본능과 본성에 대해 고민했다고요. 물론 제가 무슨 대단한 학자연하겠다고 그런 의미를 밝혀 쓰고 어쩌고를 할 수는 없지만, 그러다 보니 본능이란 무엇인가를 너무나 사랑스럽게 설파한 이 책을 떠올리지 않을 수 없었거든요.

하지만 그 책은 잠시 뒤에 이야기하기로 하고요.


… 그보다는 귀여우시고 미워할 수 없게 까칠하신 작가님 이야기를 하겠다고 하는 게 더 맞을지도 모르겠어요.




사노 요코 작가님을 모시겠습니다. 비록 별세하셨지만, 그분의 많은 작품들은 여전히 현재진행형으로 사랑받고 있으니까요.

저는 그림책으로 사노 요코를 먼저 알았습니다만 그분의 에세이를 보고 그 반전 매력에 홀라당 빠진 쪽입니다. 특히나 그… 《사는 게 뭐라고》 말이죠. 거기에 보면 암 재발 판정을 받자마자 나오는 길에 재규어를 구입했다, 는 대목이 나오는데 말입니다. 물론 그 재력이 가장 먼저 부럽습니다만 그런 걸 제외하고 그런 아득한 선고 앞에서… 의연을 넘어서 초탈하기까지 할 수 있는 그 경지가 너무나 존경스럽죠. 범인의 것이 아닌 그 정신력은 과연 어디에서 온 걸까요. 놀라울 따름입니다.



최근에는 그분이 생전에 한국의 지인과 오래도록 나누었던 서간집 《친애하는 미스터 최》를 읽었어요. 그 책에서도 사노 요코의 지독히도 신랄해서 때때로 한여름 무더위로 늘어져 버린 정신에 찬물을 끼얹는 문장들을 실컷 읽었지요.


예를 들면 이런 거예요.



고급 신문이 진실을 보도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누구보다 잘 아실 테니 부디 그런 것만 보지 마시고 저속한 주간지나 스캔들만 쓰는 삼류 잡지를 잘 보시기 바랍니다. 영화도 예술제에 출품한 고상한 작품만 보지 마시고 무협이나 조폭 나오는 걸 보세요. 귀족만 사귀는 것도 편파적인 행동이에요. 저 같은 사람도 귀한 존재임을 아시는 날이 언젠가 올 겁니다.

당신은 만날 때마다 날로 높은 사람이 되시니 저 같은 사람은 무슨 이야기를 해야 할지 도무지 모르겠사옵니다. -p.54


미스터 최,

저는 믿어요. 사람은 결코 - 다시 태어나도 - 다른 삶을 살지 않아요.

흔히 같은 실수를 해서는 안 된다고들 합니다.

그러나 사람은 같은 실수밖에 하지 않아요.

다시는 하지 않겠다고 맹세하는 것만 되풀이하는 거예요. -p.92


미스터 최가 제게 “사는 것의 천재”라고 이야기했던 사실이요. 저는 그 말을 제 내부에서 키울 능력이 있습니다. 저는 불행하면서도 큰 기쁨을 품은 채 살고 있으니 안심하세요. -p.120




이분의 대표작이라면 역시 《백만 번 산 고양이》라든가, 《태어난 아이》겠지요. 그러나, 사노 요코가 어떤 사람인지 아주 대강은 알 것 같은 제게 가장 사노 요코다운 책은 《나는 고양이라고!》입니다. 네, 이게 제가 고른 책이에요.



나는 고양이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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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이 책이 제게는 사노 요코를 대표하는 책 같이 보이느냐, 그 이유는 이러합니다.

사노 요코는 끝까지 사노 요코다웠습니다. 죽음 앞에서마저 그랬죠. 저는 이 책을 보면서 마지막 장에 이르러 이 고양이는 사노 요코 그 자체다, 라며 감동했어요.



주인공 고양이는 고양이답게 고등어를 몹시 좋아합니다. 어느 날 산책을 나온 고양이는, 진지하게 저녁 메뉴를 고민하다가 오랜만에 고등어를 먹어 볼까- 하지요. 참고로 이 고양이는 점심에도 고등어를 먹었답니다.


그런데 이게 왠일인가요. 산책길에서 고양이는 고등어들의 습격을 받습니다. 고등어들은 무려 ‘고운’ 목소리로 떼창을 해요. “네가 고등어를 먹었지!”

당연히 고양이는 혼비백산하며 도망칩니다. 고등어들은 끝끝내 고양이를 쫓아오고요. 쫓고 쫓기는 추격전 끝에 고양이가 절규합니다.

제목 그대로, “나는 고양이라고!”




과장해서 말한다면 자기 긍정의 서사라고 해도 될까요.

고양이가 그렇게 부르짖는 순간 이 수난은 난데없이 뚝 끊어집니다.


이 짧은 그림책의 백미는 마지막 장에 이르러서 느낄 수 있는데, 그건 스포일러(일까요 과연 ㅋㅋㅋ)라서 여기서는 말하지 않겠습니다.

타고난 본능은, 고양이로서도 어쩔 수가 없었던 것입니다. 고양이가 그것을 천명한 순간, 그러니 고양이에게 먹혀왔던 고등어들도 순순히 인정하고 물러날 수밖에 없었겠지요. 자연이 고양이에게 새겨준 본능을 고등어인들 어쩌겠습니까?




그러면, 인간의 본성은 무엇일까요.


이 문제에 대해서만큼은 여전히 갑론을박인 듯합니다. 스티븐 핑커가 《우리 본성의 선한 천사》를 내놓은 후 《우리 본성의 악한 천사》가 나온 것을 보면, 쉽게 결론 낼 수 없는 흥미진진한 (혹은 짜증 나는) 화두임은 분명하네요.




제 의견을 하나 내놓고 갈까요?


저는 인간의 본성까지는 모르겠고, 인간의 본능 중 하나는 스토리텔링이라고 생각합니다.

인간은 무조건 이야기를 만들게 돼 있더군요. 훌륭한 이야기부터, 치졸하기 짝이 없는 자기변명까지, 이야기의 형태는 무궁무진하지만, 아무튼 그렇더라고요. 이왕이면 각자가 좋은 이야기를 할 수 있었으면 하는 바람을 가져 봅니다. 오늘도 좋은 하루 보내시길 바라며 이만 총총.


여름을 접어가며 담화가 드립니다.











친애하는 이라니요... 정말 태어나서 처음으로 들어보는 표현입니다.


감동입니다. 친애하는 담화님.




저는 음악을 잘 몰라서 D 마이너가 제 머릿속에는 어림짐작으로만 있기에 유튜브를 뒤져 D 마이너의 피아노곡을 틀어놓고 이 답장을 씁니다. 아 이런 느낌이군요... 영화로 치면 주인공들이 배신당하기 직전이나 좌절에 빠졌을 때 나올 법한 음조로군요. 맞네요. 인간에게 희망이라고는 찾을 수 없을 우울함이 느껴집니다.



지난 편지에 저희는 인간이란 도대체 왜 이 모양인가,, 하는 대화들이 오갔지요. 저 또한 인간의 선한 마음이 어디에서 오는지 궁금하던 차에 서점에서 이런 책을 발견했습니다. 《무엇이 우리를 다정하게 만드는가》 그리고 담화님이 알려주신 《다정한 것이 살아남는다》도 있더군요. 그러고 보니 세상에 ‘다정함’을 테마로 한 책이 생각보다 많았는데, 무엇보다 놀라웠던 것은 그중에 과학책이 꽤 있었다는 것입니다. 아... 이게 무슨 일이람.


네 그래서 저는 당분간 이 ‘다정함’이라는 것에 조금 천착해 볼 요량입니다. 물론 인간의 본성에 대한 책도 포함해서요.



그건 그렇고 사노 요코님의 책 저도 정말 좋아합니다. 때로는 진지하기도, 때로는 가볍기도 하지만 모든 문장을 꿰뚫는 통찰력이 있어서 그녀의 글을 읽으면 속이 시원해지는 즐거움이 있지요. 연륜이라는 게 이런 걸까 싶게 말이지요.


그래서 오늘 소개해 주신 그 책을 빌리러 도서관에 갔다가 "아, 이 책은 어린이열람실에 있습니다. 그런데 지금 6시가 넘어서 대여가 어렵겠습니다."라는 말을 듣고 그냥 터덜터덜 돌아왔지요. 안 된다고 하면 더 하고 싶은 묘한 심리가 발동되어 내일은 꼭 책을 낚으러 가려고 합니다.



“인간이 얼마나 이야기를 좋아하는지”

‘인간의 본능 중 하나는 스토리텔링’이라는 필화님의 말에 생각나는 게 있습니다.

김영하 작가의 <내 안의 숨은 이야기를 찾아 쓰는 법>이라는 강의를 제가 작년에 비싼 돈 들여서 수강 신청을 하고 아직 다 못 들었습니다만;;; 1강은 이런 내용으로 시작합니다.


‘인류가 이렇게 퍼져나갈 수 있었던 것은 픽션을 믿는 능력’이라는 유발 하라리의 주장을 언급하면서 이런 말씀을 하시죠.

“인간들이 얼마나 이야기를 좋아했는지에 대한 증거가 전 세계에 흩어져 있다. (중략) 돌에 새기든, 파피루스에 쓰든, 심지어 번역을 해서라도 어떤 수단을 통해서든 인간은 자기가 접한 스토리를 그 재미있는 이야기를 전하려고 한다.”



이 ‘이야기’라는 것에 생각보다 많은 파다한 사람들이 주목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어요. 여기서 통칭하는 ‘이야기’ 속에는 창작도 있겠고, 독서도, 필사도, 각색도 있겠지요. 그런 모든 것들이 우리가 발 딛고 있는 세계를 만들어 가는 것이라 생각하니 재미가 있습니다.


이쯤에까지 떠올리자, 저는 다른 문화권의 이야기 한 시리즈를 소개할 마음이 들었습니다. 저도 이야기를 꽤나 좋아하나 봅니다. 아니 우리 둘 다 그러하니 이런 책 소개 에세이를 쓰고 있겠지만요.



담화님은 어떠실지 모르겠으나, 저는 영미권과 프랑스와 독일을 비롯한 유럽 몇 개 국가, 그리고 일본 작가들의 책을 많이 접한 편입니다. 그러다 보니 세계적인 베스트셀러 작가가 아니라면 그리스, 네덜란드, 라트비아, 루마니아, 룩셈부르크, 리투아니아, 몰타, 벨기에, 불가리아 쪽의 작가들은 잘 모릅니다. 그렇기에 마침 2000년대에 EU 대표 작가 소설 선으로 《유럽, 소설에 빠지다》라는 제목의 이 두 권이 한 시리즈로 출판되어 나왔을 때는 매우 신선한 느낌이었어요. 과연 그 작법도 독특하더군요. 그런데 절판이라,,, 어디에서 구할 수 있으려나요;;;



유럽, 소설에 빠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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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에 제가 블로그에 써놓은 후기가 있어서 다시 찾아보니 역시나 그 단편에 대해서 적어두었더군요. 바로 폴란드 작가 카타르지나 소불라가 쓴 <0-080 휴대폰 무료 정보 서비스>라는 단편입니다.




<0-080 휴대폰 무료 정보 서비스>

화자는 죽은 애인 다렉에 대한 그리움과 그와의 인연의 스카이다이빙에 대해, 낙하산에 대해, 그가 없는 현실의 삶에 대해서, 어린 시절 읽었던 책에 대해, 자기의 직업에 대해, 고장 난 찬장 문에 대해, 요리에 대해, 생활에 대해, 신경안정제에 대해, 자신이 무엇을 보고 있는지, 무엇을 하고 있는지, 무엇을 좋아하는지, 어릴 적 꿈은 무엇이었는지, 그리고 여기저기서 주워들은 이야기들과 그와의 추억에 대해 두런두런 두서없이 말을 합니다. 그런데 그 대사들이 참으로 맥락도 없고, 흐름도 엉망진창입니다.


이 단편에는 주인공이 단 한 명이고, 화자도 한 명입니다. 그런데도 이 소설이 소설로서 성립(?)하고 기능하면서 이 책에 실릴 수 있었던 까닭이 마지막 구절에 있습니다.


이제 그만 끊을게요. 수화기를 너무 오래 들고 있었더니 팔이 저리네요. 오래된 전화기라 불편하거든요. 게다가 당신에게 폐를 기치고 싶진 않거든요. 왜냐면 당신의 임무는 결국 특가 상품에 관해 선전하는 것이고, 참을성 있게 그 이야기를 듣고 있다가 그 상품 중 하나를 선택해야만 하는 것이 나의 역할이니까요. 자, 그럼 고마웠고요, 다음 기회에 또 만나요, 조만간 또 전화할게요. 2권 221쪽.




이 책을 처음 읽었을 때 저는 그다지 잘 쓴 글은 아니지만 의미가 있는 이야기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십수 년 만에 다시 이 단편을 보니 그 모든 것이 다 의도적으로 이 마지막 문장을 향하여 조준하고 쓴 것이라는 걸 깨달았습니다.




언젠가 어디에선가 들은 것 같습니다. 114에 전화하는 수많은 사람들에 대해. 정말로 114의 용도대로 전화번호를 묻고자 전화하는 게 아닌 사람들에 대해서. 080 무료 전화 정보서비스에서 정보를 얻는 게 목적이 아닌 사람들에 대해서.

이 이야기에서는 기실 보이지 않는 이야기를 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현대인의 외로움에 대해서, 누구에게나 필요한 청자聽者에 대해서, 돈으로 친구를 사는 시대에 대해서..



사람에게는 간섭하지 않으면서 들어줄 수 있는 사람이 필요할지도 모르겠습니다. 아니 그런 사람이 존재하길 바라기보다는, 내 얘기를 끊임없이 쏟아내며 관심을 받기 원하기보다는 상대방의 얘기를 진득하게 들어주는 자세가 우리 모두에게 더 필요한 것 같기도 해요. 옆에 있는 이들이 외로움을 느끼지 않게 말이지요.



저는 오늘 어느 정도의 청자였는지 돌이켜 봅니다. 그래봤자 가족과 친하게 지내는 지인 몇뿐이지만, 오늘의 제가 괜찮은 080 서비스였는지 점수를 매겨본다면 60점 정도밖에 되지 않을 것 같아요.


아까 저 책을 읽고 저는 영화 《타인의 삶》을 생각해 보았어요. 드라이만과 크리스타의 삶을 도청하던 비즐러를 떠올렸습니다. 위의 저 소설에서 전화를 받았던 그 누군가는 어떤 느낌이었을까요? 그 사람의 하루는 어땠을까요?



담화님

오늘 하루 얼마나 많은 이야기를 들으셨나요? 저는 오늘 괜찮은 청자였나요?



다음 기회에 또 만나요, 조만간 또 전화할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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