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방에 히어로가 너무 많사오니》《당신 인생의 이야기》
필화님 계신 지역은 날씨가 어떤가요.
여기는 어제부터 호우주의보와 경보 메시지가 번갈아 들어오고 있습니다.
덕분에 저는 당당하게 운동도 걷어치우고 집안에 들어앉아 책도 읽고 일도 하고… 글자와 멀어질 수 없는 삶을 즐기고 있답니다. 즐기고 있는 거 맞을 거예요, 아마.
그건 그렇고 필화님 INTJ 셨군요. 저는 왜 지금껏 필화님이 ISTJ라고 생각했을까요? 저는 뭐라고 생각하시나요? 필화님이 제 MBTI를 맞추실지 몹시 궁금해집니다. 그러고 보니 MBTI 소설집이 출간돼 있는데, 그건 혹시 아시나요(저는 흥미롭게 읽었습니다. 제 MBTI 타입의 단편에 대한 사견과는 별개로…)?
저는 필화님의 답신이 도착하는 즉시 출력을 해서 펜을 든답니다. 그리고 눈을 당기는 대목에 표시를 하고 후보가 될 만한 책 제목을 쭉 적습니다. 이번에 물망에 오른 책이 상당히 많았어요. 이걸 다 얘기를 할 필요는 없지만, 왠지 제 사고의 흐름을 한 번쯤 소개해 보는 것도 나쁘지 않겠다 싶어서 이야기해보려 합니다.
언제나 사랑받아 마땅한 어린이,라는 표현은 김소영 작가의 《어린이라는 세계》를 대뜸 떠올리게 합니다. 사랑스럽고 귀엽고 가끔 코끝도 찡해지는 일화들이 가득하지요. 인류애가 죽죽 떨어지는 하루하루를 보내고 계십니까? 이 책을 읽으세요. 인류애를 급속 충천할 수 있습니다.
한 사람, 아니- 두 사람의 인생을 새장 같은 곳에 가둔 것이나 마찬가지인… 뭐라 형용해야 할지 말조차 찾아지지 않는, 그런 폭력을 행사한 사람과 삶을 유린당했으나 결코 삶을 포기하지 않은 이를 보며 엠마 도노휴의 《룸》을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이내 타라 웨스트오버의 《배움의 발견》도요. 그러나 모두… 네, 제가 삼킨 말이 무엇인지 짐작하시리라 믿습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자신의 삶에 뭔가 문제가 있다는 것을 전혀 느끼지 못하고 있다가, 식스센스는 아무것도 아닐 것 같은 충격적인 삶의 반전을 맞이한 뇌과학자의 《사이코패스 뇌과학자》를 떠올렸습니다. 자신의 삶이 바닥부터 흔들리는 것 같은 사실을 맞닥뜨린 기분은 과연 어떤 것일까요. 저는 감히 상상하지 못하겠습니다.
이 책의 저자인 제임스 팰런은 가족들의 뇌 스캔 사진을 보다가 전형적인 사이코패스의 패턴을 가진 사진을 발견하고 몹시 놀라워합니다. 그리고 그 뇌의 주인이 바로 자신임을 알게 되죠. 현실이 픽션보다 더하다는 것은 바로 이럴 때를 위한 말인 것만 같습니다(정확히는 Fact is staranger than fiction이지만…).
그으러어나아… 제가 지금까지 주워섬긴 책들의 목록을 보면 눈치채셨겠지만 《어린이라는 세계》를 제외하고는 모두가 무겁습니다. 정말 정말 무겁고 축축합니다. 안 그래도 이 습한 계절에… 차마 권할 수가 없습니다. 제가 이번에 (저 치고는) 유별나게 답신이 늦었던 이유였어요. 저는 다른 괜찮은 책이 떠오르기를 기다렸습니다.
드디어 뭔가가 생각났기에 유레카를 외치고 싶었지만 저는 또 고민합니다. 왜냐면 이번에도 단편집이어서요. 어째서인지 저의 선택 범위는 자꾸자꾸 좁혀지는 것 같습니다. 제가 원래 무차별 독서를 지향하는 사람인데, 왜 이럴까. 나는 김비서도 아닌데 왜 이럴까, 정말…
아 몰라, 뭐면 어떻습니까. 지금 우리는 뇌내명랑수치를 좀 억지로라도 끌어올려야 할 필요가 있습니다. 그러니까 저는 이 책을 처방하겠습니다. 짜쟌, 제목 하여 《근방에 히어로가 너무 많사오니》! 캬… 제목부터 신난다(그렇다고 해, 빨리).
왜 하필 히어로물이냐고요?
빌런들이 판치는 세상에 필요한 건 뭐라고?
세상이 그들을 원한다, 슈퍼히어로! (반드시 펀치라인 느낌으로 읽어주세요)
필화 님도 아시다시피 제가 4년인가 5년 전에 골드러시하면 떠오르는 그곳에서 살지 않았겠습니까. 참으로 평화롭고도 지루한 도시였습니다.
그곳에 도착한 이튿날 저는 당장 도서관으로 튀었습니다. 사람은 쉽게 변하지 않거든요. 그리고 놀랍게도 저는 그곳에서 제 눈에 가장 익숙한 문자로, 저의 최애 작가들의 이름을 발견하지 않았겠습니까? 이를테면 정세랑(갑분고백타임인데 정세랑 작가님 진심 사랑합니다 만수무강하시고 다작해 주세요 더 많이…)이라든가 김금희라든가 듀나라든가… 그리고 김보영(무조건 읽으세요. 읽으시라고요!)이라든가!!!!!!!
세상이 다 아름다워 보이더군요. 와, 한국 책 읽고 싶어지면 여기서 보면 되겠다- 생각했죠. 물론 그렇다고 제가 거기서 국제배송 시키지 않은 건 아니지만, 어쨌건!
서가 하나에 가득 들어찬 한국 소설들을 보며 내적 환호를 질러대다가 마침내 제가 골랐던 책이 바로 이것이었습니다. 제가 좋아하는 작가가 세 분이나 참여하신 앤솔로지였으니까요. 참고로 저는 앤솔로지를 좋아합니다. 게다가 SF는 저의 최애 장르입니다(원래는 판타지였는데, 바뀐 지 좀 됐습니다).
그러니까 언제가 됐건 제가 SF/FAN 장르를 언급할 때 쓰는 모든 찬양 표현에는 심각한 편향이 있음을 감안하고 읽어주셔야 합니다.
이 책에는 코믹하게 빵빵 터뜨리는 내용부터 아아, 하고 시큰한 감동을 끌어올리는 내용까지 입맛대로 골라 드실 수 있습니다. 가격은 단돈… 네, 그만할게요.
역시 제가 좋아하는 유머를 구사하시는 작가님의 오프닝으로부터 저는 포복절도를 시작해서 두 번째 작품이자 표제작인 《근방에 히어로가 너무 많사오니》를 읽으며 앞이마를 냅다 후려갈깁니다… 퀀텀점프적인 상상력이 뭔지 궁금하십니까? 이걸 읽어보시면 됩니다. 그리고 <웨이큰>에 이르러서 크흠, 하고 뭔 일이 있었냐는 듯이 헛기침을 하게 되죠. 시선은 45도로 좀 멀리 본 채…
저는 SF/FAN 장르를 쓰는 작가들의 상상력이 정말 좋습니다. 존경하고 미친 듯이 탐식합니다… 그만하자… 진짜 막눈광 [주: 맑은 눈의 광인. 맑은 눈을 하고 있지만 왠지 모르게 광기가 느껴지는 인물을 뜻합니다]이 된 기분이야…
앤솔로지를 보면 저는 항상 그 구조를 눈여겨봅니다.
편집자의 의도라든가 센스 같은 것이 읽히니까요. 그 또한 앤솔로지의 재미 포인트입니다.
제가 학교 다닐 때 이런 얘기를 필화 님과 한 적이 있는지는 모르겠는데 저는 에디터쉽에도 관심이 많거든요. 우리가 또 콘셉트, 아이덴티티 이런 거 중요하게 보지 않습니까.
세상에는 재미있는 것이 너무 많고 배울 것은 더 많고 볼 것은 더더더더더, 갈 곳은… 그냥 말을 맙시다. 잘 먹고, 잘 자고, 열심히 건강 관리해서 우리 더 많이 즐겁게 읽고 이야기 나누고 공부하면서 살아요, 필화 님!
안녕 담화님..
이번에도 역시 많은 질문을 던져주시는 담화님...(나한테 왜 이래요... ㅎㅎ)
여하튼, 담화님의 MBTI는 제 기억으로는 ENFP 아니신지? 아마도 의외일 것이라며 말씀해 주셨을 때 제가 거짓말하지 말라며 깔깔깔 웃었지요. 직업군 중 연예인들이 가장 많다는 ENFP인 작가님, 좋은(잘 팔리는) 웹소설도 많이 쓰시고, 연예계도 데뷔해 주시길 바랍니다. (아 그럼 너무 재미있을 것 같아요!!! 제가 제1시청자는 못해도 열 번째 안에는 들도록 해보겠습니다.)
아 그리고 MBTI 소설집 및 에세이 종류가 출간된 것은 알고 있습니다만, 저는 기본적으로 인간의 성격이 16가지에 국한될 리가 없다고 주장하는 지라 읽어보지는 않았습니다.
인간을 그렇게 유형화시키는 노력이 굉장히 의미 있는 일보인 것 같기도 하지만, 되려 인간을 단촐하게 유형화시키고 단정 지어 버림으로써 더 심도 깊게 인간의 내면을 파헤쳐보려는 노력을 멈추는 것은 아닌가 생각합니다. 핸드폰 화면 하나조차도 똑같이 쓰지 않는 인간들인데 말입니다.
타인에 대해 이해하려는 노력은 누구나 조금 더 시도해 보았으면 좋겠어요. 이해할 일이 없을 정도의 매우 상식적인 사회가 되면 더욱 좋겠습니다만...
아 그나저나 제가 담화님께 정말 감사드리는 부분이 있습니다.
두 어 달 전 저는 아침에 눈을 뜨면서 ‘아 이제 나의 청춘은 끝이 났구나’라고 느낀 날이 있었습니다.
저에게 청춘은 화살표였습니다. 목표를 향하여 달려가고, 호기심과 의욕으로 가득 찬 노랗기도 하고, 빨갛기도 한 ‘불타는 화살표’ 말입니다. 그런 에너지의 신호인 화살표가 사라졌다고 생각하니 내심 슬펐지만, 그것을 인정해야 다음의 ‘인생의 2nd round’를 맞이하는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단 말입니다.
그런데 담화님의 ’잘 먹고, 잘 자고, 열심히 건강 관리해서 우리 더 많이 즐겁게 읽고 이야기 나누고 공부하면서 살아요.’라는 청유의 한 마디가 마치 필라멘트 전구가 전기를 받아 지지직 소리를 내다가 ‘탁’ 소리를 내며 켜지는 것처럼 제 안의 불 나간 화살표를 켜주었답니다.
그래요. 우리의 이 건강한 지적 호기심을 계속 충족해 나갈 수 있도록, 상식적이고 품위 있어야 할 이 생을 지속해 보도록 해보아요.
자 여기까지가 하고 싶었던 말이고요...
책으로 넘어가 보도록 할까요?
《근방에 히어로가 너무 많사오니》이 책에 대한 담화님의 소개 글을 읽고 저의 독서 편향성에 대해 반성했습니다. 왜냐하면 저에게 SF라고는 단 한 권 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바로 테드 창의 《당신 인생의 이야기》말입니다. (SF나 판타지는 영화로 봐야죠... 책이라니!!라고 생각합니다만, 그저 상상력의 부재 때문이 아닐까 싶기도 하고요.) 이 책도 역시 단편 모음입니다만, 저는 맨 앞에 실린 단편 <바빌론의 탑>를 좋아합니다.
바벨탑을 타고 올라 하늘에 닿으려는 주인공을 떠올리면 그와 동시에 지옥을 투어하고 온 이야기가 담긴 단테의 《신곡》도 떠오릅니다. 책을 두 권이나 말씀드려서 죄송합니다만, 제가 눈여겨보는 것은 사후 세계에 대한 인간의 호기심과 상상력입니다. 이 방대한 일에 대해서 상세한 논쟁을 할 만큼의 지식은 없습니다만... (심지어 저는 단테의 신곡 중에서도 지옥편(인페리노)밖에 읽지 않았...) 저는 그저 이 두 이야기를 일구어낸 ‘다음 생’에 대한 인간의 호기심과 창작열에 대해 운을 띄워보고 싶었어요.
천국이든 지옥이든 사후세계에 대한 인간의 호기심, 탐구심 그리고 상상력과 지독한 편집증은 인류 전체의 대대적인 에베레스트이죠. (에베레스트는 정복이라도 가능하지;;) 임사체험에 대한 책이 꾸준히 팔리고, 화제가 되고 있는 걸 보면 역시 인간은 죽음 이후의 세계에 대해 지독한 관심을 가지고 있는 게 분명합니다. 생명연장을 위한 기술은 끝도 없이 발전해오고 있긴 합니다만, 결국 모든 인간은 죽음을 피할 수 없으니 말입니다.
오늘 아침 《당신 인생의 이야기》가 SF인가 아닌가에 대한 논의를 남편과 나누었습니다만, 아무리 봐도 이 책은 오히려 절대자를 궁구 하는 인간의 심리를 다룬 책이 아닐까 싶습니다. 둘 중 뭐가 되었든 역시 작가의 상상력, 이 글의 서사와 구조, 그리고 세계관(기독교 세계관에 기초하고 있긴 합니다만, 작가의 히스토리를 보면 납득이 되듯 과학적 지식이 있어야 쓸 수 있는 책인 것은 분명합니다.)은 무척 매혹적이고 끝을 봐야 할 것 같은 흡입력이 있습니다.
과연 하늘을 뚫고 신을 만날 것인가? 그가 그린 하늘과 신의 모습은 어떨 것인가가 매우 궁금했거든요. 덕분에 마지막 구절은 정말 충격이었습니다. 분명 천국을 향해 떠난 그가 연 문은 지상이었습니다. 하.... 그의 천국은 현생인 걸까요... 우주는 그런 구조로 생긴 것일까요? 천국을 찾았더니 지상낙원을 맞이한 걸까요? 아니군요. 그가 마주한 것은 사막이었으니 말입니다..
어느 날, 탑을 올라가던 광부들은 경사로 가장자리에서 탑 위를 보든 아래를 보든 똑같아 보인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올려다보거나 내려다보는 행위는 이제 두려움을 불러일으켰다. 어느 쪽을 보든 연속성이 주는 확신은 사라져 버리고, 더 이상 자신들이 지상의 일부가 아니라는 느낌을 받기 때문이다.
탑을 오르는 여정의 이 단계에서 힐라룸은 몇 번이나 절망감에 사로잡혔다. 알고 지내던 세계를 떠나보내고, 그 세계와 소원해진 듯한 느낌이 그를 괴롭혔다. 마치 대지가 불신의 죄로 그를 추방하고, 하늘은 그를 받아줄 가치가 없는 인간으로 간주하고 거부하는 듯한 기분이었다. 야웨가 어떤 징조를, 인간의 이 역사를 승인한다는 확답을 내려주기를 그는 갈망했다. 그러지 않는다면, 그들의 영혼을 결코 따뜻하게 환영해 주지 않는 이런 장소에 어떻게 계속 머물러 있으란 말인가? p.31
이제는 왜 야웨가 탑을 무너뜨리지 않고, 정해진 경계 너머로 손을 뻗치고 싶어 하는 인간들에게 벌을 내리지 않았는지를 뚜렷이 알 수 있었다. 왜냐하면 인간은 아무리 오랫동안 여행을 해도 결국은 출발점으로 되돌아오도록 되어 있기 때문이었다. 몇십 세기에 걸친 인간의 노력도 천지 창조에 관해 그들이 이미 알고 있는 지식 이상의 것을 밝혀주지는 않았다. 그러나 인간은 그런 노력을 통해 상상을 초월한 야웨의 예술성을 흘끗 보고, 이 세계가 얼마나 정교하게 만들어졌는지를 깨달을 수가 있다. 이 세계를 통해 야웨의 창조는 밝혀지고, 그와 동시에 숨겨지는 것이다.
이렇게 해서 인간은 우주에서의 자기 위치를 깨달을 수 있는 것이다. p.51
절대자와 죽음 이후의 세계에 관해서 인류는 지리멸렬할 정도로 탐구해 왔으나 저 개인의 경험에 국한시키자면 저는 그 모든 것에 대해 호기심을 갖기보다는 되려 성경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쪽을 택한 편입니다. 그래서 이 모든 놀라운 세계관에 대해서 스스로는 절대 상상력이 발휘되지 않는다는 걸 이제야 알게 되었지요. 때문에 더더욱 이들의 상상력이 어디서부터 시작되었고, 어떻게 이런 탄탄한 서사와 구조를 만들어내고 매듭을 지어내는지 그저 신기하고 놀라울 뿐입니다.
직장인들을 위한 창의성 교육을 기획하고 담당했던 제 과거가 부끄러워지는군요. 우리의 상상력은 어디에서 출발하는 걸까요?
작가님, 이쯤에서 작가님께 도움의 손길을 내밀어 봐야겠군요.
현재 쓰고 계신 그 소설을 어떻게 시작하고 구상하게 되셨는지 좀 살짝쿵 알려주세요!! (내용은 안 알려주셔도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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