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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파리지언니 Nov 02. 2019

할미들의 천국! 바바야가의 집

<파리의 생활 좌파들>  재구성


노년은 매우 감미롭고 아름다운 시기예요.
비로소 타인에 대한 의무에서 벗어나
호젓하게 자신만의 시간을 누릴 수 있게 되는 때지요.



며느리들에겐 까칠했지만 손주에겐 관대하고 넉넉했던 친이자 룸메였던 우리 할미!  시절 할머니는 말괄량이, 저는 애늙은이가 되어 도란도란 6.25 폭격담을 나누었던 때가 무척이나 그리운데요. 손주들은 대학생이 되어 집을 떠났고, 할머니에게 집은 늘 그렇듯 세세연년 희. 노. 애. 락 그리고 생.로. 병. 사를 거쳐간 터였지요. 그리고 그 집에서 오랜 지병 끝에 돌아가실 때 7남매 자식들은 눈물을 보이지 않았습니다.


긴 병에 효자 효녀가 없다니까요! 바야가의 집을 처음 구상한 테레즈 클레르란 여자도 85세의 어머니가 돌아가실 때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고 합니다. 어머니가 돌아가시기까지 어머니를 요양원에 보내지 않고 한 인간으로서 존엄을 지키며 삶의 마지막을 평화롭게 누리게 하기 위해 딸인 그녀는 상당한 희생을 감당해야 했다고 해요. 그 희생이 그토록 사랑했던 어머니가 세상을 떠난 순간 그녀에게 안도의 한숨을 내쉬게 만들었고 결코 그녀의 자식들에게 같은 경험을 물려주지 말아야겠다는 결심을 하게 만듭니다.


이런 탄생 비화가 있는 바바야가의 집은 여자 노인을 위한 새로운 개념의 공동체로 태어나게 되는데요. 그녀와 같은 고민, 같은 어려움에 봉착했던 페미니스트 동기를 만나 수다를 떨던 중에 결국 바바야가의 집을 설립해야 한다는 필요성에 세 사람 모두 동의한 그 때가 2000년이었습니다. 뜻있는 동지를 만나게 되자 비로소 머리에 맴돌던 생각을 실현할 힘이 생겼기에 셋은 바로 협회를 결성했고, 그때부터 회원을 모으고, 온갖 관공서를 찾아다니며 이 신념을 역설했지만 어떤 관공서도 무시무시한 혁명을, 더구나 여자들끼리만 모여서 벌이겠다는 모의를 선뜻 팔 벌려 받아주지 않았다고 하네요.


ⓒ Le Parisien



어려움과 부침에도 불구하고 2013년 2월에
몽트뢰유에 안착한 '바바야가의 집'



그러다 결정적 순간이 다가왔으니 2003년의 폭염, 말 그대로 살인적이었던 더위로 무려 1만 7000명의 프랑스 노인이 집에서 죽어갈 무렵 정부 관계자들은 모두 휴가를 떠나고 없었습니다. 모든 사람이 허둥대며 할 말을 찾던 그때 테레즈는 그들이 준비해온 바바야가의 집 프로젝트라는 대안을 회심의 카드처럼 처음으로 언론에 내놓았지요. 인구학에 대한 박식한 과학적 통계를 제시하면서 늘어나는 노년층을 지금 이대로 방치하는 것이 사회적 직무 유기라는 점을 지적하자 그 신선하고 개혁적인 구상에 모두가 쩍 벌린 입을 다물지 못했다고 하네요. 《르몽드》가 그녀들의 프로젝트를 대서특필했고, 그 후 수많은 언론이 바바야가의 집 프로젝트가 대안이라는 것을 입 모아 말하기 시작했습니다.


공공기관도 더 이상은 모른 척할 수 없는 와중 이윽고 테레즈가 40년째 살고 있는 파리 외곽 도시 몽트뢰유 Montreuil의 시장이 부지들 마련해 주었답니다. 건설 비용 중 200만 유로는 30년 장기 상환으로 빌리고, 나머지 200만 유로는 도의회와 주택부가 그 대부분을 마련해 주었습니다. 또한 주택부 장관의 전폭적 지원으로 새로운 형태의 노인 공공주택에 대한 법령도 신설할 수 있었으나, 종이 한 장에 담겼던 공동체 공간에 대한 청사진이 25개의 독립된 주거공간이 함께 모여 있는 건물로 실현되기까지는 13년이 걸려, 2013년에서야 세상에 모습을 드러냈습니다. 


(바바야갸는 러시아 민화에 등장하는 마녀 이름입니다. 바바야가의 집은 마녀들의 집이라는 뜻인데요. 모나 숄레 책의 마지막도 마녀가 등장하는 것을 보면 추측컨데 마녀라는 이미지는 당당한 여자들! 조심스럽지만 페미니스트와 연결이 되어 있는 것 같기도 합니다.)


 ⓒ Le Parisien



노인이 삶의 주체가 되어 자치적으로 운영하는,
살아 있는 연대의 주거 공간!



공간을 대표하는 디렉터나 운영과 행정을 맡아보는 인력이 따로 없고, 공동체를 구축하는 멤버들이 스스로 운영에 참여하는 공간으로 구성됩니다. 젊은 세대가 자신의 인생을 포기하고 늙은 부모를 돌보는 데 삶을 바칠 수도 없는 것을 절감했기에 여자 노인들은 서로 돕고 나눠서 일들을 감당해 나갑니다. '자치', '생태주의', '시민 참여', '연대'가 이 공간을 이어가는 네 개의 정신적 기둥으로 21명의 여자 노인과 4명의 젊은이가 한 건물 안에 있는 각자의 공간에서 생활을 합니다. 각자가 차지하는 공간의 규모에 따라 월세 시세의 절반에 해당하는 200~400유로의 월세를 내게 됩니다. 그들은 가장 빈곤한 사람들이기도 했는데, 세상에나! 프랑스에서 실제로 여자 노인이 받는 퇴직연금은 남자 노인이 받는 평균 연금보다 42% 적다고 합니다. 경제적인 이유로, 도의회의 요청하여 그곳의 아파트 네 채는 30세 이하 젊은이들에게 할당하여 소셜믹스를 이루게 됩니다.


각자의 공간에는 부엌과 화장실, 샤워실이 있고 세탁실만 공동으로 쓰는 구조로 되어있고, 1층에는 모두가 매일 만나 강연을 듣고 토론을 하며 서로가 살아오면서 축적한 지식과 지혜, 경험을 나눌 수 있는 민중 대학이 마련되어 있습니다. 이 민중 대학에는 이 공간의 입주자들뿐 아니라 원하는 모든 사람이 참여할 수 있고요. 또, 정원의 텃밭에서는 공동으로 농사를 지을 수 있습니다.


ⓒ Le Parisien


 삶을 의미 있게 해주는 프로젝트를 끊임없이 갖는 것,
그것을 성취하기 위해 온 몸을 다해 투쟁하는 것,
 마지막 순간까지 활기찬 시민으로 살다 가는 것



현존하는 요양원은 막말이 아니라 쎈말을 하자면 아직 살아 있지만 처치 곤란한 노인들을 무덤으로 보내기 전까지 집단 수용하는 공간입니다. 거기에 궁색하지 않은 생존이 있을지 언정 살아 있는 자의 존엄과 자유가 지켜지거나 죽는 순간까지 진정으로 살아 있는 삶을 보장받는 것은 감히 바라기 어렵다고 하네요. 건강을 잃은 노인들은 말년에 집이 아니라 요양원에서 잠재적인 환자, 자립성이 없는 불완전한 존재로 취급당하며 죽음을 기다릴 뿐입니다.


늙는다는 것은 사는 것의 연장일 뿐이면 얼마나 좋을까요? 여기저기 아픈 곳을 얘기하며 자식들에게 투정이나 부리다가 죽음이 찾아오는 날을 기다리는 대신 "삶을 의미 있게 해주는 프로젝트를 끊임없이 갖는 것, 그것을 성취하기 위해 온 몸을 다해 투쟁하는 것, 마지막 순간까지 활기찬 시민으로 살다 가는 것"이 테레즈의 꿈이자 그녀가 바바야가의 집을 통해 실현하고자 하는 목표였습니다.



노인을 위한 새로운 유토피아 건설의 목표를 높이 세워 들고 돌진한 테레즈 할머니!  2016년에 돌아가셨네요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 Le Parisien




*참고자료*

파리의 생활 좌파들 / 목수정 지음 (대부분의 내용을 재구성했습니다.)

지금 살고 싶은 집에서 살고 있나요 / 모나 숄레 지음, 박명숙 옮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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