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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시선 Sep 03. 2018

나를 위해 요리를 한다는 것

단순히 음식을 만드는 행위 그 이상

고백하건데, 나는 요리를 즐겨하는 타입은 아니었다. 부모님과 함께 생활할 때 내가 할 수 있었던 요리라고는 김치볶음밥, 그리고 라면이 전부였다. 또 밥보다는 군것질이나 빵을 즐겨 먹는 편이었기 때문에 저녁을 거른다고 하며 엄마 속을 썩히는 일도 다반사였다. 나보다 먼저 자취를 시작한 언니가 집에 올때면 엄마는 항상 '뭐 먹고싶니?' 라고 물어봤는데, 그때마다 항상 '밥..된장찌개.' 라고 대답하며 뭔가 특별한 음식을 기대했던 나를 좌절시키는 언니가 이해가 되지 않기도 했었다. 내가 언니에게 '왜 좋아하지도 않던 된장찌개를 왜 매번 해달래?' 라고 퉁명스레 쏘아붙였을 때, 언니는 '야, 너 밖에서 맛있는 된장찌개 사먹는게 얼마나 어려운 줄 알아?' 하며 밥그릇을 쓱쓱 비우고는 했다.


몇 년이 지나 독립을 한 후, 조미료 맛에 혀가 얼얼한 찌개와 꾹꾹 눌러져 떡이 진 스댕 그릇에 담긴 밥을 매일같이 사먹다 속이 턱 막히는 기분에 가슴을 두드리며 비로소 나는 언니의 말을 이해할 수 있었다. 그 날, 어딘지  모르게 체한 기분에 연신 물을 들이키며 나는 반짝반짝 윤기나는 쌀을 숟가락으로 푹푹 떠서 묵은지김치에 싸 먹고 싶다는 생각을 한 것이다.


처음으로 요리를 위한 재료들을 구비하면서 한식을 요리하려면 이렇게나 많은 재료가 필요하다는 것을 처음 알게 되었다. 소금, 설탕, 고춧가루, 간장, 매실, 다진마늘, 참기름, 맛술, 올리고당, 굴소스, 새우젓, 국물용멸치, 다시다.. 없는 지갑을 털어 필수 재료들을 산 후에 메인 재료를 사며 쓴 눈물을 흘려야 했다. 밥 해먹는게 사먹는 것 보다 싸다고 누가 그랬습니까..1인 가구에게는 사먹는 것 보다 요리를 해 먹는 것이 턱없이 더 비쌌다.


처음으로 했던 요리는 묵은지 고등어 찜이었다. 약간 비리고 왠지 모르게 너무 달고 매웠지만 내가 만든 요리여서 그런지 계속 손이 가 허겁지겁 밥을 두공기나 뚝딱 비웠다. 밥을 먹고 난 후 기분좋은 포만감이 나를 덮쳐 나도 모르게 배를 두드리며 말했다.

 '아~ 잘먹었다.'


오랜만에 느끼는 기분에 흡족해 하며 나는 앞으로 저녁을 사먹지 않기로 결심했다.



그 후로 요리는 나의 가장 중요한 일상 중 하나가 되어버렸다. 사먹는 커피값을 아끼더라도 저녁은 무조건 내가 먹고싶은 요리를 해 먹겠노라 다짐했던 것이다. 요리를 한다는 것은 나에게 단지 밥을 해먹는 것 이상의 행위였다. 퇴근을 한 후 콧노래를 부르며 나는 마트에 들린다. 계절마다 맛있게 먹을 수 있는 식재료가 구비된 마트에서 계절의 변화를 느낀다. 푸르고 싱그러운 달래와 애호박을 잘 다듬어 보들보들한 두부와 함께 한소끔 끓여낸 된장찌개, 무를 냄비 밑바닥에 깔고 돼지목살에 묵은지를 돌돌 감아 매콤한 청양고추와 함께 끓여 촉촉해진 묵은지돼지고기찜, 화이트와인으로 쪄낸 모시조개로 만든 매콤한 봉골레를 먹는 것은 단순히 먹는 행위이기 보다는 살아있다는 기분을 느끼고 또 내일을 살아낼 힘을 충전하는 하나의 의식이 된 것이다.



니체 철학에서는 자신의 삶을 창조하고 결정하는 주체적인 삶을 사는 인간을 '초인(위버멘쉬)' 라고 부른다. 삶에대한 긍정성으로 현실을 노래하듯이 살아야한다는 니체의 말은 자칫 허무주의에 쉽게 빠질 수 있는 현대인들에게 긍정의 힘을 준다. 한때 나는 어떻게 하면 그렇게 강인한 사람이 될 수 있을까 매일 생각했다. 삶은 잘 흘러가다가도 내 뒷통수를 세게 후려치고 나를 좌절하게 했기 때문에 나같이 약한 사람은 절대로 삶을 긍정할 수 없을 것이라고 생각했던 것이다. 하지만 강인한 사람으로 살아가는 것은 생각보다 쉬웠다. 그냥 한 순간 순간 현실을 받아들이고 그 순간에 의미를 부여하며 살아가면 된다. 오늘 나를 열받게 하는 일이 있다면 청양고추를 팍팍 넣은 떡볶이를 해 먹으면 된다. 마음이 우울하다면 따뜻한 미역국을 밥에 말아 오징어 젓갈 한숟갈과 함께 떠먹으면 금새 마음이 풀린다. 밥해먹는것에 니체 철학을 운운하고 난리야 라고 생각할지 모르지만 요리를 하고 먹는 행위, 이 행위야 말로 삶을 긍정으로 받아들이는 첫 걸음이 아닐까?


니체는 방랑자와 그 그림자에서 우리들이 의식주를 소홀이 여기는 경향이 있다고 지적한다. 사람들은 고상한 삶이란 자신과는 다른 머나먼 세계에 있는 양 이야기 하지만 우리 인생의 토대를 확고히 지탱하고 있는 것은 의식주라는 기본적인 것이며, 의식주만이 우리를 살리고 현실적으로 이 인생을 살아가도록 만들기 때문에 이 생활을 향해 진지하고 흔들림 없는 시선을 쏟아야 한다고 말한다. 이렇듯 나를 위해 요리한다는 것은 나를 존중하고 자존감을 지켜나가는 것과도 상통한다.


나는 음식에도 영혼이 있다고 생각한다. 누구나 느끼겠지만 편의점 도시락이나 사먹는 밥을 매일 먹으면 잘먹었다는 기분 보다는 끼니를 때웠다는 느낌이 먼저 든다. 또 왠지 모르게 힘이 빠지고 가끔은 우울감에 젖게 된다. 그러나 방금 지어 윤기가 좌르르해 꿀떡꿀떡 넘어가는 고시히카리 쌀, 계란에 부친 두부와 김치볶음같은 단순하고 밋밋한 저녁을 지어 먹을 때에는 나 자신에게 사랑받고 대접받는다는 것을 느낀다. 하루 하루 무엇을 먹느냐에 따라 내 몸과 정신도 달라지는 것을 느꼈다. 우리의 무의식 속에서 부모님이 해주셨던 애정이 담긴 밥상이 자리하고 있기 때문일까? 밥을 하는 행위는 단순히 음식을 만드는 그 이상의 것, 나를 사랑하고 대접해 주는 하나의 방법이다.


요리하는 재미를 안 후로는 광파오븐기를 하나 사서 양식도 종종 해 먹고는 한다. 감자나 닭같은 재료는 한식처럼 물에 넣고 삶아 먹는 것 보다는 버터와 함께 지글지글 구워 먹는게 더 맛있다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애호박과 가지, 토마토를 얇게 슬라이스 해 토마토 페이스트에 올린 라따뚜이와 허니레몬치킨로스트를 먹으면서 금요일 저녁을 영화와 함께 보내면 아무것도 부럽지 않다. 특별한 저녁은 일주일동안 고생한 나에게 주는 선물이다.


이번년도 겨울, 브런치에서 영화 리뷰를 보고서는 친구와 함께 리틀 포레스트를 보러갔었다. 그 잔잔하고 평화로운 영화를 보면서 내가 펑펑 울어 친구를 난감하게 만들었던 이유에 대해서 다시 생각해 보게 된다. 배고픔, 그건 단순한 식욕이 아니라 마음의 허기짐이 아니었을까? 사랑과 온기를 주던 요람을 떠나 매서운 세상에 부딪히며 우리는 가슴 한 가운데에 구멍이 뻥 뚫린듯 한 허기짐을 느낀다. 그 허기짐은 삼각김밥으로는 채워지지 않는다. 김치찌개 백반으로도 채워지지 않는다. 아마 사랑으로만 그 구멍을 매울 수 있을 것이다. 사랑은 반드시 다른사람에게 받아야 하는 것이 아니라 내가 나에게 줄 수도 있다는 것을 나는 요리로 배웠다. 나는 사랑이 고플 때 엄마에게 전화를 해 레시피를 물어본다. '엄마, 닭볶음탕 소스 어떻게 만들어? 그 맛이 안나' 하면 엄마는 이렇게 대꾸한다. '집에 있을때는 지긋지긋하게도 밥 안먹더니 너도 자취하니까 밥 밥 거리는구나. 어디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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