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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시선 Mar 19. 2021

내가 살아야 하는 이유

죽지 않기를 잘했다

트라우마에서 벗어나려는 계속된 노력 끝에 나는 <죽않잘> 이라는 단어를 만들어 냈다. 죽않잘은 '죽지 않기를 잘했다' 의 줄임말인데, 고비 이후에 죽않잘을 경험하는 횟수가 많다면 앞으로도 고비를 좀 더 쉽게 넘길 수 있을 것이고, 죽않잘을 경험하지 못했더면 "아 역시 그때 딱 죽었어야 했는데 괜히 에너지 낭비만 했네" 라고 생각하면서 좀 더 미련없이 죽을 수 있을 것 같았기 때문이다.


그냥 이 세상에서 사라지고 싶다고 생각한 내 인생에도 죽않잘은 몇 번이고 찾아왔다. 친한 친구와 함께 지산 락페스티벌에 가서 그토록 다시 보고싶었던 시규어로스의 공연을 보게 됐다. 맥주를 퍼부으며 잔디밭에 앉아 시규어로스의 음악을 들으면서 나는 "안죽길 잘했네" 라고 생각했다. 좋아하는 사람과 제주도로 여행을 가서 언덕을 오르며 부드럽게 억새밭을 스치는 바람 속에서 가만히 눈을 감아보았다. 시원한 바람과 억새들이 흔들리며 내는 소리가 파도소리같기도 했다. 언덕 위에서 시원함을 만끽하면서 소리를 지르면서 "안죽길 잘했네" 라고 또 생각했다. 한 두번 이런 생각이 들기 시작하자 죽않잘은 점점 더 많이 찾아오기 시작했다. 동네에서 맛있는 샌드위치 가게를 찾아서 기뻤을 때에도, 어려운 요리에 도전했는데 성공했을 때에도, 너무 멋진 영화를 보게 되었을 때에도 나는 살아있기를 잘했다고 느꼈다.


돌이켜보면 나는 대단치 않은 일상의 사소한 것들로도 기쁨을 느끼는 사람이었다. 단지 내가 치열하게 살고싶지 않고 한국 사회의 틀에 꼭 맞게 재단된 사람들과 같지 않다는 이유로 나에게서 일상의 기쁨을 빼앗아갈 권리는 누구에게도 없었다. 홀로 선 시간들이 차곡차곡 쌓이면서 나는 내 자신에 대한 재발견을 하게 됐다. 재취업한 회사에서 나는 창의력이 있고 좋은 아이디어를 잘 내는 사람이라고 인정받았고, 일에 대한 자신감도 붙게되었다. 한번 자신감이 붙으니 일에 대한 욕심이 생겼고, 어느새 일을 잘하는 사람이라고 평가받았다. 예전 회사에서 "회사 너무 편하게 다니는거 아니냐", "애사심이 없다" 라는 말을 들으며 자괴감을 느꼈었는데, 다시 취업한 회사에서는 누가뭐라든 내 일만 말끔하게 하면 칭찬을 받았기 때문에 출근길이 그렇게 힘들지도 않았다.


세상에 사랑할수 있는 것이 얼마나 많은데 왜 하필 회사같은걸 사랑해야 하는걸까?.. 돈벌이에 과몰입하는것은 어떻게 생각해도 노예근성이었다. 집에서 15분거리인 회사를 다니면서 나는 처음으로 지옥철에서 해방됐다. 출퇴근 길에 잔뜩 화가 난 표정으로 서로를 밀치고 헤집는 사람들과 부대끼지 않게 되어서 나는 행복했다. 아침에 일어나 좋아하는 노래를 들으면서 콧노래를 부르고, 여유롭게 걸어가서 회사에 도착하는 이 사소한 일로도 내 삶의 질은 급격하게 올라갔다.


일상이 정상적인 궤도로 올라온 후 나는 그동안 연락이 뜸했던 친구들에게 다시 연락을 해보았다. 오랜 기간 잠수를 탔던 나였지만 친구들은 나를 이해해주고 반갑게 맞아주었다. 그동안 일어났던 일들과, 내가 독립한 계기, 그리고 우울증을 극복하기 위해서 했던 노력들을 이야기하자 친구들은 나를 격려해주었고 멋있다고 말해주었다. 그러니까 나는 쓸모없고 게으른 사람이 아니었던 것이다. 나는 진취적이었고 독립적이었고 내가 원하는 삶을 쟁취할 힘을 가진 사람이었다. 지금 와서 생각해보면 부모님은 내가 독립적인 사람이 되는 것을 좋아하지 않았던 것 같다. 부모님께 의지해야 하고, 부모님의 말대로 해야하고, 부모님이 평가하는대로의 사람으로 남기를 바랬던 것 같다. 부모님은 그걸 사랑이라고 말했고, 나도 한 때는 그게 정말 사랑이라고 생각했다. 나를 상처주고 괴롭히더라도 부모님이 나를 진심으로 사랑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면 그것들을 거부하기가 힘들다. 그러나 나는 이제 알아버린 것이다. 만일 그게 정말 사랑이었다고 해도, 그들이 사랑하는 방식은 틀렸다는 것을.


부모님으로부터 독립한  나는 진짜 어른이 되었다. 누군가에게 무기력하게 의지하는  보다는 책임감을 가지고 열심히 노를 젓는게 백번 나았다. 나는 새로운 세계에 몸을 던졌고,  세계는 나를 완전히 다른 사람으로 단련시켜주었다.   단단하고 성숙한 사람으로, 그리고 내가 겪었던 상처를 세상에 내보일  있는 사람으로, 결국 나와 비슷한 경험을  사람들에게 도움을   있는 사람으로 성장한 것이다. 나에게는 지울  없는 상처지만,  상처를 극복했기 때문에 나는 비로소 굳게   있었다. 그래서 나는 함부로 말할  있는  같다. 설령 부모님이라고 해도 식을 상처입힐 권리는 없으며,  사람의 인생을 옥죌 수는 없다고. 그리고  품에서 빠져나오는 것이 죽도록 무섭고 불안해도 막상 알을 깨고 나오면 새로운 세계를 만날  있으며, 지나고 나면 결국 하나의 과정일 뿐이라고. "가족" 이라는 것은 나를 사랑해주고 지지해주고 격려해주는 사람에게 붙이는 말이며, 만일  가족이 그렇지 않다면 용감하게 뿌리치고 나를 가족처럼 사랑해주는 사람들을  곁에 두면 된다고.


다시 말해 우리가 살아야 하는 이유는 수도 없이 많으며, 죽지않기를 잘했다고 생각하게 될 순간은 앞으로도 몇십번도 더 넘게 찾아올것이라고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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