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료라는 말은 너무 다정하다
회사 생활에는 여러 관계가 있다.
굳이 어떤 관계가 있는지는 말하지 않아도
회사에 다녀본 사람이라면 이미 잘 알고 있을 것이다.
나는 줄곧 한 템포씩 느린 사람이었다.
재수하고 입학한 대학에서는 동갑인 친구들이 선배였고,
군대와 휴학을 하고 입사한 회사에서는 나보다 어린 선배들이 많았다.
그런 환경 속에서 지내다 보니
나는 자연스럽게 나이를 신경 쓰지 않는 사람이 되었다.
어찌 보면 그렇게 생각하는 것이 내가 살아남는 방법이었는지도 모르겠다.
사실 나는 선배/후배를 나누는 문화를 좋아하지 않는다.
누가 먼저 입사했고 누가 나중에 들어왔는지가
왜 관계의 질서를 결정해야 하는지 이해하기가 어렵다.
선배라는 이유만으로, 후배라는 이유만으로 결정지어지는 관계와 태도들이 있다.
내가 믿는 세계와는 조금 거리가 있다.
더 놀라운 것은 이제 막 20대 후반에서 30대 초중반이 된 사람들 중에서도
아직 그 틀 안에서 살아가는 사람이 많다는 사실이다.
나이와 연차, 입사 순서로 관계의 높낮이를 재고,
그 안에서 자신이 어디에 있는지 늘 계산한다.
내가 너보다 위라고, 너는 나보다 아래라고 이야기한다.
하지만 회사 밖으로 한 걸음만 나가도 그 질서는 아무 의미가 없다.
입사 연도도 모르는 사람들, 내 직급이 어떤지 관심 없는 사람들,
몇 살이던, 결혼을 했던 안 했던, 애인이 있던 없던 어떤 잣대로 사람들 분류하지 않는 사람들 속에서
우리는 그냥 다시 '나'이다.
그래서 나는 회사에서도 가능한 한 동료들을 기준을 가지고 분류하지 않으려 한다.
나이가 아니라 태도를 보고, 연차가 아니라 소통의 방식을 보고,
직급이 아니라 일의 밀도를 본다.
관계에는 결국 온도가 있다.
그 온도는 위계로 정해지지 않는다.
더 오래 다녔다는 사실이 온도를 높이지도,
나이가 많다는 이유가 따뜻함을 보장해주지도 않는다.
온도는 사람에게서 나온다.
말투에서, 행동에서, 소통하는 방식과 일하는 방식에서.
나 혼자 실천한다고 무엇이 달라지겠냐만,
나라도 온도로 사람을 기억하려 한다.
억지로 선후배를 나누지 않고, 굳이 위아래를 가르지 않으면서,
사람을 있는 그대로 대하는 태도말이다.
회사라는 사회 안에서도
사람을 사람으로 대하는 관계가 가능하다고 믿는다.
그게 내가 이 세계에서 택한 살아가는 방식이다.
비록 힘들 순 있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