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글빛소리 Feb 29. 2024

특별한 결혼식

프롤로그

# 신부 대기실에서


"선생님!" 


11년 전에도 큰 눈이 유난히 예뻤던 주영이가 신부 대기실로 들어왔다.


"어머, 주영아! 정선에서 여기까지 온 거야? 고마워~"


"네 선생님, 진작 찾아뵀어야 했는데..."


감정이 북받쳐 오르는 듯 말꼬리를 흐리는 주영이의 눈시울이 금세 붉어졌다.


"어머! 왜 울어~ 울지 마! 선생님도 눈물 나잖아. 아... 안돼. 화장 지워진다고."


  별명이 '수도꼭지'였을 정도로 나는 눈물이 많다.

오늘은 절대 울지 않으리라 마음속으로 굳게 다짐했건만,
5학년 때의 얼굴을 그대로 간직한 채 어른이 되어
내 눈앞에 서 있는 제자를 마주한 순간,
나도 모르게 눈물이 차올랐다.

  정선에서부터 어려운 발걸음을 한 고마운 나의 제자에게, 이 무심한 선생님은 화장이 지워지는 게 더 신경 쓰였는지 인사도 제대로 나누지 못한 채,


"주영아! 나가 있을래? 이따 점심 꼭 먹고 가"


"네 선생님. 여기 선물 놓고 갈게요."


  11년 만에 나를 찾아온 제자와의 짧은 만남은 그렇게 끝이 났다. 

오랜만에 만난 지인들과 더 멀리서 온 친척들에게도 밝기만 했던 나인데, 무엇이 그리도 눈물이 차오를 만큼 가슴을 뭉클하게 했던 걸까. 10년이면 강산도 변한다는데, 명절이나 스승의 날이 되면 어김없이 안부를 물어오던 얼굴도 마음씨도 예쁜 주영이가 참 고마웠다. 선생님과 제자는 이렇게나 특별한 인연이구나 생각하다가, 문득 그 아이와 함께 했던 5학년 교실로 거슬러 올라갔다.   


# 사라진 아이들


  때는 2008년 3월, 나의 첫 발령지 정선에서 두 번째 맡은 학년은 5학년이었다. 1학년부터 6학년까지 한 반씩 전교생이 120명 남짓되었던 아담한 6 학급이 나의 첫 학교였다. 학생으로 살았던 세월이 훨씬 길었던지라, 스스로도 '내가 진짜 선생님이 맞나' 싶을 정도로 아직은 어색하고 낯설게만 느껴졌던 스물다섯 선생님.

  나는 이제 막 신규 딱지를 뗀 초보 교사였다.


  “선생님, 어떻게 하면 아이들이 잘 따를까요? 작년에 2학년이 생각보다 너무 힘들더라고요.”


  “박 선생님, 선생님이 너무 잘 웃는 것 같더라고. 학기 초에 아이들 못 잡으면 1년이 힘들어지니까 웬만하면 3월엔 아이들 앞에서 안 웃는 게 좋을 거야. 아이들에게 자칫 만만하게 보일 수도 있거든.”


“아, 잘 알겠습니다. 감사해요.”


  내심 실망스럽게 느껴졌던 조언이었지만, 이제 막 사회생활을 시작한 나는 최소한의 예의는 갖추어야 할 것 같아 연신 고개를 끄덕이며 경청했다. 선배 선생님들께 이런저런 조언을 구해보기도 하고 다른 교실을 기웃거리며 학급 운영에 대한 팁을 귀동냥으로 얻어 보기도 했지만, 결국 교실 안에 어른은 오롯이 나 혼자 뿐이니 직접 부딪혀가면서 하나씩 배우는 것 말고 다른 뾰족한 묘책은 없어 보였다.


  작년에 2학년을 마냥 귀여운 어린아이들로 쉽게 생각하다가 제대로 쓴 맛을 봤던 나는, 올해 한층 더 비장한 각오로 아이들 앞에 섰다. 교대 음악교육과에서 합창 과목이 있었는데 그때 배운 복식 호흡은 교실 현장에서는 전혀 다른 용도로 쓰이곤 했다. 배에 힘을 딱 주어 소리도 질러보고, 때로는 진심으로 마음을 쏟아부어도 ‘초보 교사’ 딱지가 내 얼굴에 붙어있기라도 한 듯 아이들은 기가 막히게 내 바람대로 움직여 주는 법이 없었다.


  그날도 여느 날과 다를 바 없이 10분의 쉬는 시간이 끝나고 3교시 수업 시간이 되었다. 아이들은 하나 같이 더 놀고 싶다는 간절한 눈빛을 보내면서도 하나둘씩 자리에 앉았다.


  그런데 몇몇 여학생들의 얼굴이 보이지 않는다. ‘무슨 일이지? 흠... 뭐 놀다가 조금 늦을 수도 있지.’라고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며 조금 더 기다려 보았지만 아이들은 들어오지 않았다.

  교실에 있는 아이들을 두고 그 아이들을 찾아 나설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지금이라면 교무실에 상황을 알리고 도움을 요청했겠지만, 그 당시에는 이 상황을 교감선생님께 알리면 뭔가 내가 아이들 지도를 잘 못하고 있는 것을 광고하는 것만 같아 자존심도 상하고 민망한 생각도 들어) 애써 아무 일도 없는 척 담담하게 교실에 있는 아이들과 수업을 진행했다.

‘학교 어딘가에 있겠지. 별일이야 있겠어?
빨리 좀 들어와라 얘들아.’


  누굴 기다려본 사람은 알겠지만 계속 시계를 힐끗거리니 오늘따라 시간은 천천히 흐른다. 

거의 20분이 지나서야 자리를 비웠던 여학생들이 앞문을 열고는 당당하게 들어오는 게 아닌가?

  나는 차갑게 식은 목소리로


“얘들아, 이리 와봐. 왜 이렇게 늦었니?”


“친구들이랑 놀다가 수업 시간이 지난 줄 몰랐어요.”


  아이들이 수업에 늦었다는 사실보다, 늦어서 죄송하다거나 다음부터 그러지 않겠다는 반성의 기색을 전혀 찾아볼 수 없었던 태도가 나의 다혈질 기질에 불을 지피고 말았다.


# 엎드려뻗쳐!

“수업 시간은 학교에서 제일 기본적인 규칙인데,
조금 늦은 건 그냥 넘어갈 수 있지만
이렇게 많이 늦은 건 그냥 못 넘어간다.

엎드려뻗쳐!”


  그 당시 3층 건물에 5학년 교실은 2층이었는데, 혹여나 내 목소리가 1층 교무실에 앉아 계신 교장선생님 귀에까지 들렸으려나 싶어 내심 흠칫했다.

  2011년 3월 초중등교육법 시행령 개정안이 시행되면서 대한민국에서 학교 내의 직접적인 체벌은 금지되었다. 행히(?) 그때는 2008년이었고 우리 학교의 거의 대부분의 선생님들이 당연한 듯 저마다의 다채로운 방법으로 체벌을 하고 있었기에, 그때만 해도 그게 아이들을 잘 지도하기 위한 최선이라고 믿었다.  


“선생님, 제가 왜 엎드려야 해요?”


“전 선생님한테 맞기 싫어요!”


  늦게 들어온 아이들 중 몇몇이 강하게 반기를 들었다. 매를 거부하는 아이들에게는 매를 드는 것조차 아깝다는 생각이 들어


“그래? 그럼 너희들은 들어가.”


  말이 끝나기 무섭게 네 명의 아이들이 자리로 돌아갔고, 조용히 내 말을 따른 두 명을 난 아직도 잊지 못한다. 한 명은 우리 반 공부 1등 우등생이었고, 나머지 한 명은 내 결혼식을 축하해 주러 정선에서 달려온 눈이 반짝이던 주영이었기 때문이다!


‘왜 하필...’


  속마음은 다 들어가라고 하고 싶었지만, 이미 내뱉은 말을 번복하기 싫었던 건지 수업 시간에 늦으면 벌을 받는 거라고 강력하게 훈육하고 싶었던 건지,

  아무튼 나의 사랑의 매는 그렇게 속절없이 우리 반 1등 진혜와 큰 눈이 반짝이던 주영이의 엉덩이로 향했다.


  다음 날 아침, 진혜와 주영이는 나에게 와서 참으로 천진난만하게 말했다.

“선생님, 저 엉덩이에 멍들었어요.”


‘아차. 이를 어쩌지.’

  속으로 무척 미안하고 당황스럽고 어제의 내 행동에 대한 후회가 밀려오면서 내심 부모님이 아시면 많이 속상해하실 텐데 걱정되는 마음에,


“많이 아팠지? 근데 부모님은 별말씀 없으셨니?”


“네. 저희가 잘못해서 혼난 거잖아요.”  


# 지금의 나를 만든 건


  나는 지금도 주영이를 생각하면 그날의 일이 떠올라 미안하기만 한데, 주영이는 오히려 가르쳐주셔서 감사하고 찾아뵙지 못해서 죄송하단다. 여러모로 미숙한 담임이었는데 아이들은 고마운 것만 기억하는지 저리도 너그럽다.


  아이들로 인해 지칠 때도 많지만, 어쩌면 교사인 내가 아이들에게 주는 사랑보다 훨씬 더 큰 사랑을 받고 있었던 건 아닐까. 5년 전 주영이에게 선물로 받은 아로마 캔들을 꺼내 불을 켜 본다. 롱한 촛불이 흔들이며 촛농이 차오르는 것을 가만히 바라보니 이들의 얼굴이 하나둘씩 선명히 떠오른다. 주영이가 정성껏 써 내려간 편지를 읽어본다.

< 선물과 함께 정성껏 써 내려간 주영이의 축하편지 >

지난 15년, 나는 스스로 성장했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나는 이제 안다.

세월이 지나도 나와 함께 한 1년의 발자취는 그들의 인생에 남아있음을 알기에, 부끄럽지 않은 선생님으로 기억되길 바라는 나의 욕심이

나를 어제보다 조금 더 나은 사람으로 이끄는 힘이었다는 것을.

지금의 나를 만든 건 8할이 아이들이었다는 것을.

손에 전해지는 온기가 내 마음에도 따스하게 스며든다.

   

  “주영아! 우리가 얼굴 본 지도 벌써 5년이 다 되어가네. 여전히 큰 눈을 예쁘게 반짝이며 너의 길을 가고 있겠지? 신부 대기실에서 선생님도 눈물이 왈칵 쏟아질 것 같아 급히 나가있으라고 한 게 너무 미안하고 후회된다. 시간을 되돌릴 순 없으니 주영이의 결혼식 때 청첩장 꼭 보내주렴. 그땐 주영이가 "선생님 나가 계세요" 하려나. 후훗.
  여러모로 미숙한 선생님이었는데, 15년이 지난 지금도 잊지 않고 기억해 줘서 고마울 따름이야. 다시 만나는 그날에는 눈물이 아닌 함박웃음 짓기로 약속해! 건강하고 매일 행복하렴.”


♡밤작가 초아의 에세이, 듣다♡

15년 전 제자가 결혼식에? / 프롤로그 / 신부 대기실에서 / 사라진 아이들 / 엎드려 뻗쳐! / 지금의 나를 만든 건 / 첫 발령지 정선에서 살아남기 / 초등교사 브런치스토리 (youtube.com)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