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년 새로운 학생을 만나는 것이 재밌어지는 방법
학생에 대한 공식적인 기록은 생활기록부에 쓰게 돼있다. 내용과 양식에 제한이 있어 재미가 없다. ‘1인 1역을 성실히 수행하며 학급 운영에 적극적으로 참여하여 타의 모범이 됨.’ 따위의 문장으로 가득하다.
그 대신 나는 혼자만 보는 노트에 학생들을 내 방식대로 스케치한다. 물론 이 노트에 등장하는 인물은 실제 학생으로부터 인상만 받았을 뿐 허구의 인물이다. 겉으로 보이는 모습에 착안하여 속 안의 생각을 내가 함부로 창작하여 캐릭터를 만든다.
A는 전성기였던 초등시절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남들보다 성장 시기가 일찍 와서 초등학교에서는 A가 가장 달리기가 빠르고 축구도 잘했다. 게다가 공부도 잘해 인기가 많았다. 중학교 와서는 A의 성장이 제자리 걸음을 하고 있었는데 그동안 친구들은 성장기를 맞았다. A의 존재감이 약해지는 데드크로스가 시작됐다. A는 이런 성장 시기의 부조화를 겪고 있다. 그 부작용의 하나로 남을 인정하지 못하는 ‘비아냥’의 습관이 생겼다. B가 과학 수행평가 결과가 좋은 것을 보고 “강남 애들과 비교하면 이건 아무것도 아니다”라고 굳이 말한다. C가 축구를 잘하니 “선수하기에는 늦은 나이라며 일반인치고 잘하는 정도”라고 폄하한다. D가 유튜브를 시작했다. A는 D에게 “관종이냐”며 “그 시간에 공부하는 게 나을 것”이라고 깎아내렸다. 지금 A에게 가장 필요한 치료방법은 본인의 성장이다.
K는 운이 없다. 천방지축으로 친구들과 몸싸움을 하고 놀았다. 한참 땀을 내고 장난을 치다 보니 자기가 헤드락을 건 사람이 여학생이었다. 성문제가 거론되고 있다. 농구 골대에 슛 연습을 하는데 마음대로 안된다. 스스로에게 욕을 뱉었는데 마침 체육선생님과 눈이 마주쳤다. 아무래도 선생님이 욕을 들은 것 같다. 침을 뱉고 싶은데 뱉을 곳이 마땅치 않아서 머금고 있었다. 더 이상은 참기 힘들어보이는 창문으로 한 움큼 뱉어냈다. 그런데 그 침이 선배 발 옆에 떨어졌다. 하나하나 본심을 밝히고 해명하고 싶지만 그럴수록 오히려 부작용만 생긴다. 해명을 시도하면 변명이라며 더 큰 비난이 돌아오고, 입을 다무니 사춘기 반항이냐며 나무란다. 스스로 생각해도 자신이 이상한 사람이 된 것 같다. 상담 선생님이 해주는 이야기가 지금 K에게 필요한 것이 아니라서 말이 헛돈다. 지금 K는 위로나 충고보다 운이 필요하다.
H는 같은 학년 친구들에 비해 누나, 언니 같은 학생이다. 본의 아니게 학급회장이 된 것도 동생들을 돌보는 심정으로 봉사의 의미가 컸다. 그러다 보니 지쳐간다. 남학생들은 자신이 장난을 웃으며 받아주니 점점 정도가 심해지고 선을 넘는 경우도 생긴다. 천성이 싫은 소리를 못하는 쪽이라 장난치는 애들한테 정색하기 쉽지 않다. 분위기를 싸하게 만들고 싶지 않으니 그냥 한번 더 참는다. 엄마도 선생님도 H에게 칭찬을 많이 해주니 그 기대에 부응하려고 더 참게 된다. 그런데 가끔은 눈물이 난다. H도 아직 중학교 1학년일 뿐이란 말이다.
이런 학생은 실제로 존재하지 않는다. 내 노트에는 가상의 인물들이 여럿 있다. 처음에는 재미로 시작했는데 이 낙서가 학생들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된다는 것을 느꼈다. 표면적으로 이해하기 쉽지 않은 녀석들에 대해 사연을 내가 직접 만들다 보니 그 행위 자체가 학생을 이해하는 일이 됐다. 물론 제멋대로 이해하는 것일 수 있다. 하지만 내가 받아들일 이해의 폭이 넓어진다는 측면에서 의미가 있다.
소설 속 인물들은 결함이 있고 오해받는 인간들이다. <차남들의 세계사>의 나복만, <파친코>의 선자, <브람스를 좋아하세요..>의 폴이 그렇다. 책을 읽는 동안 독자는 이 완전하지 못한 인물들에게 감정을 이입하고 각자의 사연에 감동한다.
택시기사 나복만은 자전거 접촉 사고 때문에 돈 주고 딴 면허가 위태로워질까 봐 경찰서를 제 발로 찾아간다. 한술 더 떠 글을 몰라 교통과 대신에 정보과에 가서 자기 신상을 털어놓고 온다. 그렇게 도로교통법 대신에 국가보안법 위반자가 되어간다. 선자는 멋진 남자 고한수를 잘 모르는 채로 사랑하게 되고 아이를 갖는다. 영악하지도 못해 세상의 짐을 스스로 매고 최선을 다해 삶을 살아내지만 정작 아들에게 이해받지 못한다.
폴은 또 어떠한가. 자신을 편하게만 여기고 소홀히 하며 다른 여자를 만나는 남자 친구에 지친다. 그러던 중 젊고 멋진 남자가 적극적으로 다가오자 자신도 흔들리고 만다. 그러나 결국 자신을 소중히 여기지 않는 그 편안한 남자에게로 회귀한다.
학생들을 떠올려보면 나복만처럼 소심한 경우가 없고 선자처럼 순진한 경우도 드물다. 그리고 폴처럼 답답한 사람도 많지 않을 것이다. 여기에 비하면 우리 학생들은 꽤 괜찮은 것 아닌가? 학생들 하나하나가 각자만의 세상을 살아가고 있다. 각자의 세상은 본인이 주인공인 하나의 작품이고 우리는 그 작품을 제삼자의 시각으로 볼뿐이다. 학생을 소설 속 주인공처럼 보면 이해 못 할 일도 없다.
학교의 일은 매년 반복된다. 비슷한 일로 연차를 쌓아가고 매너리즘이 찾아오기 시작한다. 이럴 때도 학생을 텍스트로 삼아 읽으면 교직 생활이 풍성해진다. 매년 25명의 주인공들이 내게 텍스트로 주어지고 이들을 정확하게 독해하려면 매너리즘은 사치다. 학생의 세상을 읽어보자.
p.s. 우리 반 한 녀석이 키 150센티에 몸무게 40킬로도 안되는데 자꾸 거친 패드립을 해서 애들에게 얻어맞기 직전까지 가는 일이 벌어진다. 과연 이 녀석의 사연은 무엇일까. 아 맞다. 모든 아이가 이해되는 건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