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소문자cho Nov 18. 2018

마피아와 싸워서 이기려면?

실전은 기세야

    하늘은 우리 가족이 유난히도 담대한 것을 어찌 아셨을까. 2000, 아빠의  발령지는 2 인티파다가  시작된 이스라엘이었다. 집만 나서면 헤매는 길치 방향치 아빠는 유치원을  다닌 딸내미를 태우고 화염이  가라앉지 않은 뿌연 거리 사이로 차를 몰았다. 멀리서 폭발음이 들리기도 했다. 나는 엄마 아빠와 함께라면 진짜 위협은 없을 거라고 믿었다. 그래서 모든 일은 그저 신기하고 조금 흥미진진하게 기억되었다.


    2011년, 오사마 빈 라덴이 사살된 봄에는 파키스탄에 있었다. 경계는 삼엄했지만 아직 고등학교를 덜 다닌 겁 없는 청소년이었던 터라 어느 밤 친구들과 방탄차를 질주하다가 도시 외곽의 어느 마을에 들어서게 됐는데, 아마도 백인 친구를 본 주민들이 우리 차에 총을 쐈다. 위태로웠지만 우리는 도망쳤고, 운이 좋았다고도 할 수 있을 것 같다.


    세 식구 중 엄마만은 그래도 좀 조심스러운 편인데, 깡다구라고 해야 할까, 막상 일이 닥치면 강해지는 성격인 듯싶다. 15년 전, 러시아에서 그것을 목격했다.


    모스크바 부임 후 집을 구하던 우리 가족은 아빠 일터 옆 아파트에 매물이 나왔다는 소식을 듣고 한걸음에 달려갔다. 지독한 교통체증에 누구라도 진저리가 나는 나라, 그래서 학교까지 차 타고도 한 시간은 잡는 나라에서 엄마는 고민이 있었다. 차 한 대로 아침마다 같이 사는 2인의 출근과 등교를 처리할 방도. 그건 아무리 머리를 싸매 봐도 무척 어려운 일 같았다. 하지만 아빠가 걸어서 출근할 수 있는 거리라면? 해결이었다. 집이 7년째 비어 있다는 이야기를 듣고도 엄마의 발걸음은 가벼웠다.


    밖에서부터 무척 오래된 아파트임이 한눈에 들어왔다. 겉보기에 이래도  소비에트 연방의 상원의장이 살던 유서 있는 곳이라고 부동산 직원이 부연했다. 내부엔 두둑한 카펫이 창마다 커튼인 척하고 걸려있었다. 태피스트리 대용인지 벽에도 걸려있었다. 바닥에도 덕지덕지 깔려 있었다. 현관에도, 신발장 앞에도, 부엌에도, 복도에도, 등이란 등은 죄다 샹들리에였다. 이곳엔 모든  ‘투머치였다. 갈고리가 성인  정수리까지 내려왔다. 금박의 가구는 빛깔이 참으로 탁하여 노리끼리했다. 무수한 카펫의 모서리들이 자꾸 발에 걸리적거렸다. 몇번을 휘청하던 엄마가 바닥을 조심하라고 일러주었다. 먼지를 한세월 먹은 카펫 여러 개가 조각조각 필사적으로 겹쳐져 있었다. 조금 후 엄마는 급기야 대체  밑엔 뭐가 있는 거냐며 켜켜이 들춰냈다. 시커멓게 섞은 마룻바닥이었다.


    그럼에도 엄마는 집을 계약했다.  우중충한 소굴이 마음에 들어서가 아니라, 그러기로 마음을 먹고 왔기 때문에. 집주인은 비싸게 받고 떼어 먹힐 염려도 없는 외국인에게 렌트를 주게 되어서 무척 신나 했다.  젊은 여자였는데 모스크바에 아파트를 여러  갖고 있었고, 졸부라길래 그래도 젊다고 생각했다. 집은 퍼니시드, 그러니까 가구가 (몹시 가득히도)  있는 상태였다. 엄마는  커튼,  카펫,  가구를 모조리 가져가 달라고 했다. 집주인은 그러기로 했는데, 카펫을  걷어내고 나니 바닥이 아무래도 이상했는지, 알아서 마루를 전부 갈아주었다. 이스라엘에서 이삿짐이 도착하자 엄마는 원래 쓰던 밝은 가구로 집을 채웠다. 가구가 날개였다.  분위기는 완전히 탈바꿈했다. 이제야  크기로 넓어 보였고  나이에 비해 모던해 보였기 때문에 오는 사람마다 어쩜 집이 이렇게 멋지냐고 감탄했다.


    그리고 그중엔 집주인의 수행원  운전기사  신복인 조금은 정체불명의 남자도 있었다. 무성한 콧수염의 사나이. 문제의 발단이  사나이다.  남자가 집을 보고 너무 놀라더니, 집주인에게 우리가 돈을 너무 적게 받고 있다고 말을 했는지, 집주인이 갑자기 욕심이 나서 렌트비를 세배로 올려 달라고 요구를 해왔다. 그렇게 좋은 집에 살면서 월세가 너무 적지 않느냐는 이유를 댔다. 그리고   시도가 먹혀들지 않자 변호사를 선임해서 하루아침에 소송을 걸어왔다. 엄마 아빠가 계약 당시 회사에서 대대로 써오던 계약서 양식을 그대로 썼는데, 변호사가 계약서를 꼼꼼히 살펴보니 구멍이 있었던 것이다. 계약이 무효니까 집을 비우라는 거였다.


    재판부에서 기한까지 출두하라는 명령서를 보내왔다. 아빠는 팔레스타인 접경지역에서도  하나 까딱 않는 분이심을 기억하자. 그는 담담하셨고 그는 말씀하셨다, 이건 마치 ‘독도 문제라고. 우리집을  비우냐고. 응할 가치도 없다고. 소환서는 가볍게 씹혔다.


    조수석에서 그래 왔듯 엄마는 열심히 길을 찾았다. 못된 집주인변덕에 순순히 놀아 날수 없다며, 굳건한 기개로 버티기에 돌입했다. 주변에 도움을 청하러 다녔다. 대부분은 그냥 이사 가라는 조언이었다. “그러다가  맞으면 어째요”, 진심으로 걱정하는 말들을 들었다. 부동산에서도 설득이 들어왔다.  집을 구하는 수고와 일체의 이사 비용책임질테니 그냥 나오랬다. 주인 여자가 '마피아의 여자'랬다. 그게 아니여도 15  러시아는 100불이면 청부 살인하는 곳이었다. 이번엔  앞으로 빨간딱지가 날아왔다.


    러시아 법원의 상위 법원은 유럽 EU 재판소다. 엄마는 불의에 이렇게 쉽게 굴복하면 부끄러운 거라고 했다. 그리고 "이건 내가 유럽에 가서라도 싸워서 이기겠다라고 선언했다. 미국 대사관에 변호사가 있다는 이야기를 듣게 되었다. 엄마는 자문을 받으러 갔다.  알게  사실은, 러시아 법에 의하면 계약 무효가 됐을  세입자가 월세를 내지 않아도 된다는 것이었다. 아무렴. 이에는 , 법에는 .


    그렇게 돈 안 내고 산   달이 지나자, 마음 급해진 주인 여자에게 전화가 왔다.  돈을 안내냐, 따져왔다. 네가 그렇게 만들어서 법적으로 돈을  수가 없다, 엄마가 말했다. 너네   생각은 있는 거냐, 집주인은 성질을 부렸다. 우리는  내고 살고 싶다엄마가 대답했다. 그랬더니 소송을 취하해줄 테니 밀린 월세를 내라고 하더니 끊었다. 우릴 내쫓으려던 집주인의 계략은 그렇게 다소 허무하게 끝났다.  길로 변호사가 방문하더니 기존 조건 동일하게 계약서를 새로 써주었다는 결말이다.


    대부분의 일에 안이한 천성의 아빠와 어떤 일에도 만반의 태세를 갖추는 엄마가 그렇게 함께 지켜낸 집에서 살았다. 무데뽀 아빠. 치밀한 엄마. 서로 한참은 다른 사람 같지만, “그까짓  “파이팅사이의 간극은 생각보다 좁다. 물러서자고, 피하자고 설득하는 쪽이 없으니 말이다. 엔간해선 동요하지 않는 자와 끝까지 맞서는 자는 결국 뜻을 같이한다. 이것이  분이 지금까지 모험을 함께 하고 있는 이유일지도 모른다. 서로 다른 용기를 갖고 살아가지만  배짱을 함께 한다.




목차로 돌아가기 

매거진의 이전글 무슬림들은 테러리스트가 맞잖아?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