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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초들 Dec 17. 2023

1차 합격을 축하한다

수고했노라, 자랑스럽노라

1차 합격을 축하한다 



         

휘몰아치는 북풍의 요란함 속에서 백설이 난무하고 있다.   

   

지난 19일, 고향에 내려왔다. 내가 태어난 곳, 잔뼈가 굵어진 곳! 잊지 못할 고향이지만, 내게 고향은 무한한 한(恨)이 서려 있는 곳이다. 짙은 어둠과 고요 속에 잠겨 고향, 소박·순결 등이 출렁거리던 옛 고향의 정취는 이제 거센 물질문명에 밀려가고 .

    

가난에 찌들러 외로운 세월 온통 짊어지신 어머니, 커가는 자식들이 대견해 보이는지 입가에 함빡 미소를 짓고 있다. 총명하고 마음 착한 아버지께서는 못다 이룬 꿈 때문에 공허하셔서 하루하루 술로 채우신다. 이러한 구체물에 관심 없는 동생들, 뭐가 그리 좋은지 끼득끼득 웃고 또 웃는다. 그 틈바구니에 낀 나는 오늘도 온통 마음 시리다.


       

承弟야!

며칠 사이 안녕하지? 네 염려 덕분에 아무 탈 없이 고향에 도착했다. 기차로, 버스로, 배로, 도보로 이동하여 나는 지금 도초도에 있다. 거리가 멀어져서일까? 너에게 진한  연모지정(戀慕之情)을 품는다. 단순한 감정이 아닌 밀도 깊은 연모지정이다. 바람결에 휘날리는 하얀 눈이 네가 있는 광주 하늘까지 갈 수 있다면, 나의 모든 걸 깡그리 보내고 싶다. 웬걸 그럴 수 없으니 내내 아쉬움뿐이다.

    

그윽하고 고적한 겨울밤! 적막하고 지루한 긴 밤을 나 혼자 지키려니, 벌써 부담감이 100배다. 지루한 시간을 총총히 밀어내려고 이불속 깊숙이 몸을 파묻고서 이리저리 뒤척거려 본다.   

  

고즈넉한 시골 하루가 지나간다. 오랜만에 경험하는 시골 생활은 몹시 적응하기 힘들다. 마치 이방인이 된 듯, 흐르는 시간 속에서 오로지 너 承弟를 그리워하는 마음으로 하루를 낸다. 23일 고모님 댁에 다녀오니, 웬걸 동생들이 네 편지를 가지고 이리 뜯고 저리 뜯으며 네 아름답고 고운 마음씨를 읽는다.

    

浩兄이는 항상 불안한 마음이다. 표리부동(表裏不同)한 심혼(心魂)을 갖고 산다. 외롭고 쓸쓸한 감정을 갖고 산다는 건 그렇게 낯선 일은 아니다.


흔히 청춘을 한껏 구가하는 젊은이들, 나는 젊은이이면서 그들과 친화(親和)되지 못하고 주변인(周邊人)으로 맴돈다. 좋지 못한, 건전치 못한 사고방식, 미래지향(未來指向)적이 아닌 하향(下向)적인 생활. 그래. 그런지도 모르지. 하지만 나는 성실하게 살련다. 모든 일에 성실하게 임하려는 게 나의 굳은 생각이요, 인생관이다.    


       

承弟야!

때때로 浩兄이는 매우 차갑고 무섭다. 척박한 삶이 나를 그렇게 만들었다. 하지만 가슴속 깊은 너의 방은 따뜻하다. 따뜻하고 포근한 마음을 항상 갖고 있다. 이 마음 일관되도록 나의 모든 여건과 환경, 처지가 허락된다면 얼마나 좋을까?  

   

1차 합격을 축하한다. 너의 지난 노고에 진심으로 감사하고 싶다. ‘수고했노라, 자랑스럽노라’라고 힘차게 말하고 싶다. 너의 합격이 우리 가족 모두의 기쁨이 되었다. 미안하다. 심한 부담감을 안겨주는 浩兄이가 원망스럽지?      


그럼 길고 긴 얘기는 나중으로 미루고 이만 그친다. 너의 건강을 빌며.


          

1981.12.24.() 浩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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