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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의 노벨상 수상을 보며

빈 공간을 허락하지 않는 나라

by 글사랑이 조동표

추석 연휴, 일본의 노벨상 수상 소식이 연이어 흘러나왔다.


"2025년 노벨 생리의학상, 말초면역관용 조절 T세포 연구자 3인에게 수여"

“2025년 노벨 화학상, 금속-유기 골격체(MOF) 개발자 3인에게 수여.”


올해 일본은 생리의학상과 화학상 수상자를 배출했다. 한 해에 두 명의 수상자. 이로써 총 31번째 수상자가 탄생했다.


세계는 “일본의 2관왕”을 주목했지만, 나에게는 그 이면이 더 크게 다가왔다. 일본이 걸어온 길과 한국이 아직 서 있는 자리를 비교하지 않을 수 없었기 때문이다.


역대 일본의 노벨상 수상을 분야별로 보면 물리학상 12명, 화학상 9명, 생리의학상 6명, 문학상 2명이다. 평화상은 개인 1명, 단체 1곳이고, 경제학상 수상자는 아직 없다.


- 빈 공간이란 무엇인가


금속과 유기물이 결합해 만든 구조체, 그 안의 미세한 빈 공간은 당장 쓸모없어 보였다. 하지만 과학자들은 바로 그 무의미한 틈에서 미래를 보았다. 이산화탄소를 포집하고, 신소재를 만들고, 에너지를 저장하는 무궁무진한 가능성이 그 속에 있었다.


한국 사회는 이 ‘빈 공간’을 어떻게 대하는가?

우리는 늘 “성과”와 “속도”를 강요한다. 연구비는 단기간 실적 중심으로 집행되고, 대학은 당장 논문 수와 피인용지수로 줄 세운다. 실패는 용납되지 않고, 도전은 언제나 예산 삭감과 비난의 대상이 된다. 결국 과학자들은 안전한 주제를 좇고, 기초연구는 ‘사치’로 치부된다.


빈 공간을 남겨두지 않는 사회, 그곳에서 어떻게 미래의 노벨상을 꿈꿀 수 있을까.


- 일본의 길, 한국의 길


일본은 1980년대부터 기초과학 투자에 공을 들였다. 세계와의 경쟁에서 당장의 성과를 얻지 못해도, ‘빈 공간’을 지켜내려 했다. 그 결과 수십 년 뒤, 지금의 2관왕이라는 결실을 얻게 된 것이다.


반면 한국은 기초연구에 대한 지원보다 ‘단기 성과’에 집착해 왔다. 정치적 이해와 정권의 홍보 효과가 연구비 배분을 좌우했고, 교육 현장은 입시 위주의 경쟁에 갇혀 창의적 사고를 질식시켰다. 과학자가 연구실에서 실패를 거듭하며 미래를 준비하는 대신, 평가와 보고서 작성에 매달려야 하는 현실. 이것이 우리가 만든 구조다.


- 정책이 바뀌어야 한다


한국이 진정으로 노벨상을 원한다면, 혹은 그보다 더 중요한 미래 세대를 위한 토양을 원한다면, 정책부터 바뀌어야 한다.


1. 기초과학 장기 투자 – 10년, 20년을 내다보는 재정적 뒷받침 없이는 결코 성과가 없다.


2. 실패를 제도적으로 보호 – 연구자는 실패해야 성장한다. 그 실패를 지탱해 주는 장치 없이는 혁신은 없다.


3. 교육의 전환 – 입시와 성과 중심 교육에서 벗어나야 한다. 창의적 사고와 질문을 키우는 환경 없이는 과학 인재가 길러질 수 없다.


4. 정치적 간섭 최소화 – 정권 홍보용 연구비 집행이 아니라, 연구자 공동체의 자율과 전문성을 존중해야 한다.


- 빈 공간을 허락해야 미래가 있다


노벨상은 목표가 아니라 지표다. 한 나라가 과학을 어떻게 대하는지, 교육을 어떻게 설계했는지, 미래를 얼마나 길게 준비했는지 보여주는 거울이다.


한국은 지금까지 ‘빈 공간’을 허락하지 않았다.

즉각적인 성과를 요구하고, 실패를 두려워하며, 긴 호흡을 잊었다.

그 결과는 자명하다. 세계의 무대에서 우리는 여전히 ‘추격자’에 머무르고 있다.


이제는 달라져야 한다.

빈 공간을 두려워하지 않고, 그 안에 씨앗을 심을 수 있는 사회.

그럴 때 비로소 한국의 미래는 노벨상이라는 상징을 넘어, 진정한 혁신의 무대를 열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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