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Chofa Mar 01. 2021

[#9 공남쓰임, ~12주 차] 태동의 발견

세상 모든 일이 그러하듯 임신 이후 힘든 시기가 지나가니 아내의 컨디션이 가장 좋아지는 시기가 왔다. 


계속 허기지고 입맛이 돌아와서 아무 음식이나 잘 먹게 됨

아랫배 쪽에서 오는 통증(자궁이 커지며 생기는 통증, 태동을 통해 느껴지는 감각 등)들이 익숙해지며 신체 변화에 대한 불쾌감/불안감이 사라짐

걷기, 스트레칭, 팔/어깨 근력운동 등 신체활동을 편하게 할 수 있음

단, 일상생활에서도 숨이 가빠지고 잠들기 전에 숨소리가 커짐


18주 차 아침, 일을 하고 있는데 아내의 카톡이 울렸다. “방금 나 태동을 느낀 것 같아! 발차기를 3번이나 엄청 세게 차서 진짜 깜짝 놀랐어!” 평균적으로 임신 20주차 부터 태동을 느낀다고 하는데, 아내는 임신 16주 차 때부터 미세하게 태동 같은 느낌을 받았었다. 그리고 연락을 받은 날 확실히 라임이가 엄마에게 의사 표현을 보여준 날이었다.


막 활발히 뻥뻥 차는 느낌일 것이라는 나의 예상과 달리, 첫 태동은 아주 작은 물고기가 꼬물꼬물 지나가고 기포 방울이 터지는 듯한 느낌이었다고 했다. 아내랑 나는 한참 동안 카톡으로 우리 아기가 벌써 이만큼이나 컸다니!! 하며 감격하다가, 귀여워하다가, 뿌듯해하다가 여러 감정이 교차했다. 이런저런 설명을 해주는데 임신부만 느낄 수 있는 아이와의 교감이라는 행복에 겨워서 알아듣지 못하는 소리로 자랑을 한참 늘어놓는 느낌이었다... 부러웠다... 알아듣게 설명해달라고 계속 요청을 했더니 드디어 알아듣는 소리를 해줬다. 


가끔 피곤한 날 눈 밑이나 입꼬리에 경련이 일어나는 것 처럼 배에 미세한 경련이 일어나는 것 같기도 하다

일을 할 땐 무리해서 하는 편이라 저런 경험이 많아서 그런지 확실히 딱 이해가 됐다. 저 기분 나쁜 느낌이 행복한 아이와의 교감인 태동으로 느껴질 수 있다니... 내 아내가 너무 부러웠다. 남편들도 임신을 하게 해줬으면 좋겠다. 태동을 느끼고 싶다.


태동을 느낀다는 것은 어떻게 보면 임신 후의 너무나 당연한 변화이지만, 아기의 존재를 한번 더 확실하게 느끼는 아주 소중한 변화이다. 


초음파 검진을 받으러 가지 않으러 가도, 아기가 잘 있는지 느껴지기 때문에 안심이 된다.

달콤한 간식을 먹은 직후 태동이 격해지기 때문에 당 섭취를 자각하고 조심하게 되는 경향이 있다.

임신이 뚜렷하게 실감 나기 시작한다. 


우리 라임이는 주로 밤 10시 반, 새벽 1시경에 폭풍 태동을 하기 때문에 처음에 아내는 “아기가 야행성인가 봐..!” 하며 잠을 못 자고 있는 건 아닌지 걱정했었다. 찾아보니 태아는 엄마 뱃속에서 엄마의 수면 여부와 관계없이 하루 평균 20시간 이상 잠을 잔다고 하니 걱정할 일은 아니었고 자면서 잠꼬대하는 느낌이라 생각했다 ㅋㅋ 귀여운라임스 ㅋㅋ 그리고 규칙적인 태동 시간에 맞춰 아내 배를 쓰다듬는 태담을 하면서 라임이와 나도 교감을 하길 간절히 바랐다. 다행히 딱 한 번! 라임이가 나의 부름에 응해줬다. 면봉 같은 크기와 촉감으로 내 손바닥을 톡~ 하고 쳐주는 느낌이 들었었다. 크우... 생에 첫 하이파이브!! 야스!!


태동만큼이나 놀랍게 아내의 배도 점점 나오기 시작했다. 그전에는 아내만 알아챌 정도로 아랫배가 살짝 볼록해졌었는데, 이제는 작은 사이즈의 바가지 정도로 커졌고 임산부 속옷과 임부복이 필수가 되었다. 아내는 임신 전에 자거나 티브이 보고 책 읽을 때도 주로 엎드린 자세를 좋아했었는데, 이제는 배가 나와서 어떤 자세를 해도 불편하다고 한다. 왼쪽으로 돌아누운 자세가 배도 덜 눌리고, 소화기관에도 좋다고 하여 최근에는 바디필로우에 기대 자곤 한다. 하지만 멀쩡하게 돈 주고 산 바디필로우는 바닥에 있고 내가 그 바디필로우 역할을 대신한다... 인간 죽부인... 거친 숨소리...


엄마의 변화와 더불어 18주부터는 아기가 맛을 느끼고, 19주부터는 소리도 구분해 엄마 아빠 목소리를 기억한다고 한다. 아내는 아기에게 목소리를 많이 들려주려고, 혼잣말도 많이 하고 운전할 때 노래도 많이 불러주는데 임신 기간 내내 실제로 볼 수도 만질 수도 없는 태아의 존재감을 느끼고, 자칫 우울하고 불안할 수 있는 임신 기간 동안 아기와 둘만의 교감을 통해 행복감을 찾는데 정말 좋았다고 한다. 나중에 기회가 되면 차량 블랙박스 영상들을 편집해서 블랙박스 음악회로 포스팅을 한번 해볼까 한다. 가관일 듯...


이 시기에 엄마 아빠 목소리를 많이 들려주면 두뇌 발달에도 도움이 되고 엄마 아빠와의 교감으로 정서적으로 안정된 아이로 자랄 가능성이 커진다고 한다. 비교적 낮고 굵은 아빠 목소리가 좀 더 태아에게 잘 전달된다고 하니, 꼭 거창한 동화나 자장가가 아니더라도 일상적인 대화들로 아기에게 “잘 잤어?” “오늘 아빠랑 엄마는 뭘 했고 어땠어~“ 얘기해 주며 아빠들이 태담에 적극적으로 참여해 주면 좋을 것 같다. 


위에 잠깐 언급했지만 이 시기에 남편이 할 수 있는 아이와의 교감은 태담 뿐이다. 엄마는 계속 아이의 태동을 느낄 수 있지만 남편은 사실 태동 자체가 아직은 미미해서 아내의 반응을 통해 간접적으로 체험할 수 있기 때문이다. 나의 경우는 진짜 운 좋게 아이의 태동을 느낀 케이스이다. 다시 한번 첫 번째 하이파이브 야스! ㅋㅋ 처음에는 아내가 시켜서 억지로 하게 되었는데 이게 하다 보니까 재미가 붙는다.


가끔 내가 '태담이다 침대로.' 하고 거실에서 일어나면 아내가 조용히 속삭이며 따라온다 '오늘은 태담 들을 일 없는 것 같은데...'



아래의 목표로 태담을 하다 보니 잘못된 태담 습관을 들인 것 같긴 하지만 ㅋㅋ 부부 사이도 돈독해지는 기분이다.


진짜 라임이에게 해주고 싶은 말이 있을 때 (좋은 말이나 글을 접하고 해주고 싶을 때, 라테는 말이다 같은 꼰 대령을 전수할 때 등)

아내에게 할 말이 있을 때 (집이 좀 번잡한 것 같은데 회사 다녀오는 동안 청소기가 시끄러울 수 있으니 라임이가 이해해라, 분리수거하면 엄마가 앉았다 일어났다 많이 하니 라임이가 중력 변화에 주의해라 등)

일기 쓰듯이 말할 때 (집 밖에서 재미있는 일이 있을 때 아내에게 바로 알려주기보다는 라임이에게 말하듯 전해줄 때)


여하튼, 힘든 시기가 지나가고 라임이도 안정적으로 엄마와 교감하며 그 덕에 아내가 몸도 마음도 안정을 찾았다. 배가 점점 커지면서 아내가 힘들어하는 것이 조금 안타깝지만 나름 잘 이겨내는 듯하다! 곧 임신기간도 절반을 넘어서 21주 차 정밀 초음파가 진행되는데 이제는 30cm에 가까워지는 라임이가 어떻게 자라고 있는지 궁금하다!







이전 07화 [#8 공남쓰임, ~17주 차] 2차 기형아 검사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