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부. 내가 시니어라구요?
새롭게 이직한 회사는 기본적으로 재택근무를 했지만, 매주 1회 출근을 했다. 때마침 나의 첫 출근일 다음날이 우리 팀의 출근일이었다. 덕분에 나는 첫 출근 다음 날 우리 팀 사람들을 모두 만나 인사할 기회가 생겼다. 점심 시간에 갈 식당도 미리 예약되어 있었다. 아마도 팀 점심 회식 겸 신규 입사자인 나를 위한 상견례 자리일 것이다. 몇 년만에 회사에서 어색한 식사 자리를 갖는 것인지, 생각만 해도 숨이 턱 막혔다.
"오늘 지현님 오신 기념으로 샤브샤브집 왔으니까 다들 맛있게 먹어요! 지현님이랑 친하게 지내고! "
팀장님은 나를 위해 특별히 엄선해서 고른 식당임을 강조했다. 사실 내가 봐도 그래보였다. 식당 외관은 고급스러웠고, 메뉴를 보니 인당 4만원짜리 식사 코스였다. 신규 입사자 환영을 위해 이런 좋은 식당을 예약해주시니 감사할 따름이었다. 나는 샤브샤브를 맛있게 먹었다. 그러니까 사실은, 맛있게 먹는 척을 했다. 유감스럽게도 난 물에 빠진 고기를 먹지 못한다. 그럼에도 그걸 티낼 수는 없었다. 나는 코를 막고 숨을 참고 좋아하지 않는 샤브샤브를 열심히 먹었다. 너무 맛있다는 이야기도 덤으로 날리면서 말이다. 내가 이런 적이 예전에도 있었던 것 같은데 그때가 언제였더라?
'지현이 훠궈 처음 먹어본다며, 어때?'
'맛있는데요? 생각보다 향신료 맛이 너무 많이 나지도 않아요.'
'원래 훠궈 좋아했던거 아냐? 엄청 잘 먹는데? '
내가 신입사원 이었던 시절, 입사 후 팀의 첫 회식으로 훠궈집을 갔었다. 회식은 보통 삼겹살을 먹으러 가는 줄 알았는데, 회식 장소가 훠궈집이라 해서 당황했었다. 당시 훠궈가 유행하던 시절이었다. 물에 빠진 고기를 먹지 못하는 나는 원래 훠궈집에는 발도 내밀지 않는 사람이었지만, 훠궈를 먹기 싫다고, 나는 훠궈를 못먹는다고 말할 수는 없었다. 이제 갓 입사한 주제에 신입사원 나부랭이의 기호를 드러낼 만한 패기가 있진 못했다. 결국 나는 코를 막고 숨을 참고 좋아하지도 않는 훠궈를 정말 열심히 먹었다. 당시 내가 참 맛있게 먹어서 (먹는 척 해서) 그 모습을 보던 대리님은 나에게 원래 훠궈를 좋아하냐고 물어보기까지 하셨다. 그분은 그 후로도 오랫동안 내가 훠궈를 좋아한다고 생각하셨다.
어색한 자리, 어색한 사람들 사이에 어색한 표정을 가만히 있으니 내 앞에 놓인 샤브샤브를 한 점씩 먹었다. 혹시 내 입맛이 변해 샤브샤브를 맛있게 먹을 수 있지 않을까 싶었지만 헛된 기대였다. 여전히 물에 빠진 고기는 나에게 맛없는 음식이었다. 입에 맞지 않는 샤브샤브를 한 점씩 먹다보니 자연스럽게 우걱우걱 훠궈를 먹던 나의 신입사원 시절 첫 회식이 떠올랐다. 8년만에 다시 이런 일이 되풀이될 줄이야… 낯선 사람들 앞에서 나를 소개하는 자리이자 처음으로 같이 밥을 먹는 시간. 싫어하지만 싫어한다고 솔직하게 말할 수 없는 신입의 사회 생활을 8년만에 다시 하고 있었다. 유일하게 달라진 점이라면, 그건 내 나이와 연차 뿐이었다.
어색한 자리, 어색한 사람들 사이에 어색한 표정을 가만히 있으니 내 앞에 샤브샤브가 서빙되었다. 혹시 내 입맛이 변해 샤브샤브를 맛있게 먹을 수 있지 않을까 싶었지만 헛된 기대였다. 여전히 물에 빠진 고기는 나에게 맛없는 음식이었다. 입에 맞지 않는 샤브샤브를 한 점씩 먹다보니 자연스럽게 우걱우걱 훠궈를 먹던 나의 신입사원 시절 첫 회식이 떠올랐다. 8년만에 다시 이런 일이 되풀이될 줄이야… 낯선 사람들 앞에서 나를 소개하는 자리이자 처음으로 같이 밥을 먹는 시간. 싫어하지만 싫어한다고 솔직하게 말할 수 없는 신입의 사회 생활을 8년만에 다시 하고 있었다. 유일하게 달라진 점이라면, 그건 내 나이와 연차 뿐이었다. 나의 첫 점심시간은 이런 대화의 연속이었다.
"지현님은 나이가 어떻게 되세요?"
"저 34살이에요."
"와… 34살이요? 보기 보다 되게 동안이시다."
다들 내 나이를 듣고, 당황했다. 나이에 비해 어려보인다는 평과 함께 말이다. 칭찬인지 뭔지 알 수가 없었다. 동안이란 이야긴 감사했지만, 그만큼 내 나이가 이 조직에선 객관적으로 많다는 의미이기도 했다.
"지현님은 몇년차세요? "
"저 올해로 8년차에요."
"와 경력이 엄청 많으시네요."
8년이라는 나의 연차가 이곳에선 시니어로 인정받기 충분해보였다. 팀장님과의 첫 면담에서 내 이름 옆에 당당히 ‘시니어’가 적힐 수 밖에 없는 이유였다.
8년 전 코막고 입에 안맞는 훠궈를 맛있는 척 먹었던 신입사원이, 8년 후 처음 이직한 회사에서 입에 안맞는 샤브샤브를 맛있는 척 먹는 늙은이가 되었다. 점심시간을 마치고 사무실로 돌아가는 길, 생각이 많아졌다. 이 조직에서 잘 적응하려면 내 나이가 주는 새로운 무게감을 받아들여야 했다. 인정하기 싫었지만, 그때 그 훠궈를 먹던 신입사원은 8년의 세월이 지나 이제 시니어가 되었다. 그간 내 위의 수많은 선배들과 일하느라 쉽게 깨닫지 못했을 뿐이다. 첫 직장의 우물 밖을 나오니 내가 받아들여야 할 첫 번째 과제는 이제 내가 더이상 선배들 뒤에 숨을 수 있는 어린 직원이 아니란 점이었다. 머리로는 이해하고 있었지만 아직 마음으로는 받아들이지 못했다. 예상하지 못한 새로운 숙제를 받은 기분이었다. 그냥 난 이직해서도 내 일만 잘하면 될 줄 알았는데, 가슴 한 켠이 답답해졌다.
- 나… 이 회사에서 잘 적응할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