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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담 Aug 13. 2024

중독된 사랑, 그 황홀함

너에게 가는 길이 너무 멀다

그를 만나러 간다. 충만한 설렘이다. 거기까지의 물리적 시간은 30분. 마음의 거리는 제로. 늘 거기에 가고 싶지만 쉽게 갈 수 없다. 일상을 벗어나기 힘든 시간의 연속이다. 다른 걸로 채우려 하면 할수록 그에 대한 간절함만 더해간다.


봄부터 시작된 일들이 아직 마무리되지 않았다. 공사가 생각보다 길어지면서 자잘한 일들을 놓치거나 미루었다. 농장을 운영하면서 가장 큰일이 진행되고 있으니 당연한 수순이다. 배우고 경험하는 일들은 끝이 없다. 새로운 분야의 작업은 크고 정확하며 섬세함을 요구했다. 혼자 할 수 없기에 더 다양하고 체계적이며 규격화된 절차와 형식과 규범이 필요했다. 그 과정을 거치며 또 한 단계 올라섰다. 올라선 그곳은 우월하거나 돋보이는 자리가 아니다. 그 자리는 더 베풀고 나누며 살아가라고 주어졌다. 감사한 일이다.


바쁜 와중에 갈 수 없어 안달 난 그곳으로 향했다. 출발 전부터 들뜬 마음은 가라앉을 줄 모른다. 애타게 그리면서도 만나지 못한 시간이 오래다. 오늘은 겸사겸사 큰맘 먹고 출발이다. 여러 일이 있지만 마음은 콩밭에 있다. 목적지 근처에 그가 있기 때문이다.


굽이굽이 고갯마루 넘어가던 길이 4차선으로 뚫렸다. 늘 한산하다. 수려한 주변 경관은 덤으로 누리는 사치다. 대청호의 멋진 풍광을 감상하며 달린다. 겹겹이 펼쳐진 산마루의 원근과 명암은 한 폭의 동양화다. 멋진 드라이브 코스로 강력 추천이다. 그가 있어 가는 길이 아름답고 여유로워 설렘은 배가 된다. 그냥 가도 좋은 길 끝에 좋아하는 그가 있다.


몇 년 전 우연히 그를 알게 됐다. 그와 비슷한 부류를 수없이 만나 왔지만 첫 만남에서 그는 나를 사로잡았다. 나는 거침없이 빠져들었다. 모든 면에서 안성맞춤, 한마디로 최고였다. 완벽한 조화로 드러나는 모습은 가히 독보적이다. 대체불가의 존재감이 그곳에 있었다. 멀지 않은 그곳에.  


일 년 내내 있어도 마냥 좋은데 그는 일 년에 6개월만 모습을 드러낸다. 첫 등장은 매년 5월 중순쯤. 겨울을 지나 봄이 오면 나는 그를 만나고 싶어 조바심이 난다. 애써 기다리다 5월이 되면 그가 있는 곳에 전화를 건다. 두근대는 마음으로 묻는다. "혹시 나왔나요?" "네, 나왔어요"라는 대답에 환호성을 지른다. 들뜬 마음에 당장 달려가고 싶지만 참는다. 그가 나왔다는 사실만으로도 마냥 좋은 날들이다. 이제나저제나 기회를 엿보다 여차하면 달려간다.


그는 "팥빙수"다. 비주얼은 완벽에 가깝다. 묵직한 그릇에 넘치듯 담겨 있는 모습은 온몸을 자극한다. 조화의 극치, 더 이상의 비교 불가.  

팥빙수의 기본은 팥과 얼음이다. 지역에서 생산된 팥을 맞춤하게 삶아낸다. 팥알은 적당히 영글어 있다. 팥은 위에도 듬뿍, 중간에도 듬뿍 담겨 있다. 적당한 단맛도 한몫한다. 얼음은 부드럽게 갈아내 눈송이처럼 소복이 쌓인다. 위에 놓이는 산딸기와 블루베리, 복숭아와 인절미의 원산지도 팥과 같다.


아내는 팥빙수를 좋아하지 않는다. 대신 맛있는 옥수수만 보면 그냥 넘어가지 못한다. 반면에 나는 옥수수를 좋아하지 않는다. 서로 이해가 된다. 안타깝지만 어쩔 수 없다. 각자의 취향에 따른 옥수수와 팥빙수의 간극은 크다. 일치하는 한 가지는 정말 맛있어야 한다는 거다.


팥빙수를 파는 카페에 혼자 갔다. 얼굴 가득 웃음을 띠며 주문을 했다. 점원이 물었다. "숟가락은 몇 개를 드릴까요?" 나는 주저 없이 대답했다. "하나만 주세요." 순간 놀란 표정의 점원 얼굴이 재밌다. 그 팥빙수는 보통 2명에서 4명이 먹는 양이다. 계속 말했다. "이따 갈 때 두 개 더 포장해 주세요." 마음은 몇 개를 더 포장하고 싶었지만 겨우 참았다. 이쯤이면 중독이다. 혼자서 감격하며 먹고 있는 데 다른 테이블에 손님들이 흘끗 흘끗 쳐다본다. 개의치 않는다. 내가 좋아 즐기는 이 순간, 그 누구도 신경 쓰지 않는다. 타인의 시선까지 토핑 삼아 음미하며 한 숟갈 한 숟갈 떠먹는다. 중독되면 무아지경의 황홀경에 빠진다. 팥빙수에 중독되기 위한 첫째 조건은 팥에 미쳐야 한다. 나는 유독 팥을 좋아한다. 팥이 들어간 모든 음식을 애정한다. 시원하고 하얀 얼음과 환상적 조화를 이룬 팥빙수를 좋아하는 건 당연하다.

그렇다고 아무 팥빙수나 먹지 않는다. '메뉴판보다 원산지 표시판을 먼저 본다'라는 고집스러운 먹거리 선택 기준 때문이다. 그곳의 팥빙수는 중독될 수밖에 없는 모든 조건을 갖췄다.


어느 하나를 엄정한 잣대로 찾고 있는 데 맞춤한 모습으로 나타났을 때 느끼는 희열은 일상의 축복이다. 자주 경험할수록 좋다. 내게는 그런 종류가 여럿 있다. 먹거리 중에는 '팥빙수'와 '서리태 콩국수'다.

8월의 한가운데,  누그러진 더위마저 예전의 폭염 수준이다. 유독 여름을 힘들어하는 나를 견디게 하는 팥빙수의 존재가 멀지 않은 곳에 있어 다행이다. 겨울에도 찾고 싶은데 10월까지만 모습을 드러낸다는 사실이 안타까울 뿐이다. 다시 공백의 시간이 찾아오면 '기다림은 희망이다'라는 나름의 명제를 되뇌며 참고 견딘다.


며칠 전 그곳에 근무지를 둔 지인이 팥빙수 두 개를 포장해 갖다주셨다. 아들도 가끔씩 그곳을 지날 때면 어김없이 팥빙수를 포장해 온다. 감동의 순간들이다. 포장된 팥빙수를 냉장고에 넣어 두고 있는 시간의 흐뭇함과 두근 거림은 중독된 자만이 누릴 수 있는 호사다.


중독된 사랑의 끝은 달콤하다. 단절된 중독의 간절함은 또 다른 희망이다. 여럿의 중독된 일상들이 나를 밀어간다. 나는 그 중독들을 사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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