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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둠을 뚫고 아침 해는 떠오른다.

by 최담

새해가 밝았지만 짙은 안갯속에 갇혀 있는 듯하다. 마주한 세상이 어둡고 춥다. 주고받는 덕담도 공허한 메아리로 들린다. 걷어 내지 못한 가시덤불을 이고 지고 살아가는 기분이다. 떠오르는 아침 해를 보며 한 해의 안녕과 소망을 기원하고 환한 웃음으로 희망찬 미래를 꿈꿔야 할 시간이 미친 세력들의 폭주와 대형 참사 앞에 멈춰 섰다. 참담한 사고로 희생되신 고인들의 명복을 빌며 사랑하는 가족과 소중한 사람을 잃은 모든 분들께 깊은 애도와 위로의 마음을 전한다.


어제보다 힘든 오늘이 이어지고 있다. 그래도 우리는 살아내야 하고 살아남아야 한다. 먼저 가신이들의 삶을 되뇌며 기어이 견뎌내야 한다. 산자의 기억 속에서만 그 존재를 불러낼 수 있기에 우리는 누군가와의 정다웠던 추억과 다 주지 못한 사랑과 망설이다 말하지 못한 읊조림을 끄집어내야 한다. 눈물도 마음껏 흘려야 하고 소리도 힘껏 질러야 한다. 부를 수 있는 이름일랑 끝 간 데 없이 불러내야 한다. 허망함과 무력함, 원망과 설움도 토해내야 한다. 산자들은 그 모든 것을 받아 안고 어느 한 곳, 애도의 공간 속으로 스며들어야 한다.

다시는 이런 비극이 없기를 바라고 바라며 차가운 겨울바람에 젖은 눈을 말린다.


뜬눈으로 지새운 분노와 항거의 밤들이 지나고 있다. 섣부른 단죄의 약속도 받아 냈다. 갈길은 멀지만 지치지 않으려 한다. 그들이 바라는 건 느슨해지고 희미해져 불빛이 사그라드는 것임을 알기에. 살아남아 외치는 자유와 민주주의 만세 소리는 멈추지 않고 멀리멀리 퍼져 나간다. 삶과 존재의 의미, 더불어 사는 세상의 가치를 아는 이라면 모두 하나의 불빛으로 모여들고 일어서리라.


깊은 겨울밤, 잠 못 드는 이들이 많다. 저마다의 마음들을 분출하지 못하고 안으로만 삭이는 안타까운 날들이다. 술을 잔뜩 마신 친구가 전화를 해서 두서없이 화풀이를 해댄다. 다행이다. 화풀이의 대상으로 나를 찾아 줘서.

하루 종일 무언가에 홀린 듯 뉴스만 보다가 걷잡을 수 없이 요동치는 마음에 힘이 든다며 지인이 전화를 했다. 목소리가 젖어 있다. 멀리서 온 전화였다. 시간과 공간을 넘어 들려오는 힘없고 나직한 음성이 현재의 처지를 뚜렷하게 보여준다. 세월이 많이 흘러 기성의 때가 묻었을지라도 오래전 그날처럼 다시 힘껏 힘을 내보자고 다독였다. 우린 여전히 동지라며.


세상 돌아가는 일에 무심하지 않은 사람들, 세상의 불의에 맞서 싸우는 사람들, 세상의 아픔에 함께 슬퍼하고 품을 내어 주는 사람들, 알면서도 기어이 아프고 힘든 길을 가는 사람들 덕분에 오늘을 살아낸다.


시간이 흐르며 자연스레 낡아 떨어지고 닳아 없어지는 무언의 사물들이 많아진다. 억지로 부러지거나 잘려 나가지 않고 때가 되어 소명을 다하고 사그라드는 손때 묻은 연장이나 소품들이 늘어난다. 주변의 모든 존재가 자연스럽게 소멸되어 간다면 얼마나 좋을까 문득 생각해 본다.


해가 저물고 떠오르기까지의 시간은 모두에게 다른 간격으로 다가온다. 마주하고 견뎌내는 오늘의 시간이 너무 길거나 아주 짧거나 모두 힘들다. 하루를 온전히 받아들일 수 없는 날들이 그리 멀지 않기를 바란다.

모두가 자신에게 맡겨진 일과 소중한 사람과 즐거운 여가에만 몰두해도 일상이 가득 채워지는 그런 날들을 아침 해가 뜨는 것처럼 뜨거운 일렁임으로 맞이하시길 기도한다.


짙은 어둠을 뚫고 새벽은 온다. 아침해가 우뚝 솟아오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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