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영봉 형님과 굴착기(포클레인)

[농부가 만난 사람들-5]

by 최담

굴착기 조종사인 영봉 형님은 사랑꾼이다. 가끔 두 분이 통화하는 걸 옆에서 듣고 있으면 깨소금이 쏟아진다. 서로를 존중하고 아끼는 마음이 멀리서도 느껴진다. 조금은 투박한 외모와 중장비 일을 한다는 선입견이 있을 수 있지만 형님은 예외다. 늘 웃는 얼굴이 트레이드 마크다.

60을 훌쩍 넘긴 형님은 요즘 친구들의 부러움을 사고 있다. 정년 없이 자신의 기술만 가지고 능력껏 일하며 돈을 버는 지금이 행복하고 만족스럽다.


영봉 형님과 한 몸이 된 '굴착기'는 산업화 이후 대규모 공사현장에서 가장 뚜렷한 공을 세운 장비다. 일반적으로 ‘포클레인’이라 부른다. 물론 자연을 파괴하고 훼손하는 부분도 있지만 인간의 이로운 삶을 위한 공정에서 굴착기의 존재는 절대적이다. 과장하면 하루아침에 산을 옮기는 무시무시한 위력을 지녔다. 굴착기는 다양한 기능으로 우리 삶과 밀접하게 관련되어 있다.

KakaoTalk_20250402_214510213_02.jpg


귀농 후 처음 농장을 조성할 때부터 굴착기는 많은 일을 해냈다. 농장 부지를 조성하고 길을 내며 원활한 배수를 위한 작업까지 굴착기의 역할은 절대적이었다. 지역에는 굴착기를 가지고 일하는 사람들이 엄청 많다. 종사하는 사람들이 많은 만큼 장비의 규격과 역할, 일하는 방식도 천차만별이다. 굴착기를 자주 불러 일을 맡기게 되면서 굴착기 조종사의 능력에 따라 시간과 돈, 작업의 효율이 좌우됨을 알게 됐다. 일의 속도와 정교함은 물론 몰랐던 부분까지 꼼꼼하게 찾아서 알려주고 정리해 주는 조종사를 일찍 만나는 건 행운이다.


오래전, 동네에 집을 짓고 있는 현장에 들렀다. 황토집을 짓기 위한 터 파기부터 기초공사, 평탄작업, 다지기까지 능수능란하게 일하는 모습을 지켜보며 놀라움을 감추지 못했다. 굴착기의 움직임은 자유롭고 부드러우며 예리했다. 진짜 프로였다. 조경을 위한 돌을 쌓는 기술도 예술이었다. 굴착기에 집게를 장착해 무거운 돌을 요리조리 돌려가며 한단 한단 쌓아가는 모습은 감탄사가 절로 나왔다. 주인공은 지역에서 일 잘하기로 TOP3안에 들어가는 영봉 형님이었다. 유려한 손놀림에 세밀한 동작까지 빈틈이 없었다. 그때부터 굴착기 관련 일은 무조건 영봉 형님께 의뢰했다.


영봉 형님은 농고 축산과를 졸업하고 소 키우는 일을 시작했다. 수입이 없어 화물기사 일을 병행했다. 함께 소를 키우시던 아버지가 돌아가시며 새로운 일을 찾았다. 운전했던 덤프트럭을 팔고 굴 찾기를 구입했다. 이후 IMF로 사료값이 폭등하며 한우농가들이 큰 타격을 입었다. 반면에 중장비는 호황을 누렸다. 기사까지 두면서 일할 정도였다. 형님은 타고난 성실함과 노력으로 굴착기 일과 관련해서는 최고의 전문가가 되었다.

이제는 경력도 35년이 넘는다. 경력만 오래된 것이 아니라 일하는 정교함은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 굴착기로 할 수 있는 모든 일에 걸림이 없다. 믿고 맡기면 된다. 한때는 공주, 청양, 완주까지 일하러 다녔다. 지금은 일 잘하기로 소문이 나 지역의 일만으로도 벅찬 날들이다.

가장 무거운 장비를 가장 부드럽게 다룰 줄 아는 영봉 형님의 좌우명은 단순하면서도 명확하다. '내 일처럼 일한다'이다. 그리고 '배불러서 일 안 한다는 소리는 듣기 싫다'라며 시간이 허락되는 범위 내에서는 최선을 다하려 한다.


얼마 전, 농장에 쉼터를 조성하기 위해 일정한 범위를 정확하게 수평으로 다듬어야 했다. 영봉 형님께 부탁드렸다. 울퉁불퉁 거친 땅을 세밀하게 다듬었다. 작업을 끝낸 형님이 수평자를 가져와 땅에 놓아 보라고 했다. 그 넓은 공간이 정확하게 수평을 이뤘다. 또 한 번 놀랐다.

KakaoTalk_20250327_001322882.png 쉼터 만들기 위한 바닥 수평작업


영봉 형님의 하루는 늘 새벽 5시에 시작된다. 일찍 일어나 직접 농사짓고 있는 대추밭을 둘러본다. 이른 아침을 먹고 작업 현장에 도착해 본격적으로 일을 시작한다. 굴착기의 하루 작업시간은 공식적으로 8시간이다. 월요일부터 금요일까지 쉴 새 없이 일한다. 육중한 기계로 안전에 유의하며 예민한 작업을 한다는 게 보통 어려운 일이 아니다. 좁은 공간에 앉아서 하다 보면 허리와 무릎, 발목에 무리가 온다. 역시 쉬운 일은 없다.

요즘은 주중에 굴착기 일하는 것 자체가 즐거움이다. 오랜 꿈인 '라이더'가 되었기 때문이다. 주말이면 바이크에 몸을 싣고 라이딩할 생각만으로도 힘든 줄 모른다. 웃음이 절로 나온다.

KakaoTalk_20250402_214510213_05.jpg


영봉 형님의 일감은 늘 끊이지 않는다. 앞으로도 체력이 허락하는 한 계속 일할 생각이다. 완벽한 일 처리는 세월의 흐름을 거슬러 더 많은 사람들에게 만족감을 안겨 줄 것이다.

내가 할 수 없는 일을 믿고 맡길 수 있는 사람 좋은 영봉 형님이 있어 든든하고 고맙다.




<3톤 이상의 굴착기는 굴착기 운전 기능사 면허를 취득하고 시군 구청이나 차량등록사업소에서 건설기계조종사 면허를 발급받으면 된다. 3톤 미만은 중장비학원에서 2일 동안 소형 건설기계조종교육 12시간을 이수하고 3톤 이상과 같은 방식으로 건설기계조종사 면허를 발급받는다.>





keyword
이전 04화네팔에서 온 동생, 히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