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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부의 시골 빵집

[농부가 만난 사람들-6]

by 최담

곳곳의 이름난 빵집을 찾아다니는 빵투어가 유행이다. 전국 빵지도를 들고 빵지순례를 다닌다. 도시의 상징이 된 빵집이 있는 곳에선 빵 축제도 열린다. 빵이 문화가 되고 음식이 되었다.


나도 빵을 좋아한다. 아무 빵이나 먹었으나 지금은 아무 빵이나 먹지 않는다. 진짜 빵만 먹는다. 언제부턴가 빵을 먹고 나면 속이 좋지 않았다. 몸은 다른 빵을 원했지만 머리는 아무 빵이나 집어 들게 했다. 먹고 나면 후회하기를 여러 번. 먹어도 속이 편하고 영양 많은 빵집을 수소문했다. 진짜 빵의 첫 번째 기준은 우리 밀로 만든 빵이다. 다음으로는 반죽을 쉽게 하고 빵을 보기 좋게 하며 빵 맛을 돋우기 위해 사용하는 몸에 해로운 첨가제들을 넣지 않아야 한다. 환경의 중요성과 건강을 생각하는 사람들이 늘어나면서 좋은 빵, 착한 빵을 찾아다니는 사람들이 많아졌다. 시대 흐름에 맞춰 건강한 빵을 만들어 내는 빵집도 증가했다. 나름의 까다로운 기준으로 특별한 빵집을 발굴하는 재미가 쏠쏠하다.


어느 날, 지인으로부터 찾고 있던 빵집을 소개받았다. 그리 멀지 않은 지역의 작은 면 소재지에 있었다. 빵집도 작았다. 장년의 부부(세례명: 가우덴시오와 모니카)가 운영하고 계셨다. 가우덴시오가 빵을 만들고 모니카는 차와 커피와 빵을 팔았다. 꼭 필요한 빵들이 필요한 만큼만 놓여 있었다. 빵집이 알려지면서 조금 늦게 가면 품절인 빵들이 늘어났다. 나름 자리를 잡아가던 빵집은 사정이 생겨 더 이상 그곳에서 영업을 할 수 없게 되었다. 상처가 컸지만 좌절하지 않았다. 다시 훌훌 털고 일어났다.

모든 일은 나름의 의미와 목적을 지니며 우리 앞에 펼쳐진다. 헛된 일은 없다. 여러모로 오히려 좋은 기회가 주어졌다. 평소 마음속에 담아 두었던 가까운 곳에 다시 빵집을 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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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우덴시오와 모니카는 2008년, 귀농했다. 아무 연고 없는 곳으로 덜컥 내려왔다. 귀농의 이유는 낭만적인 시골생활에 대한 동경이었다. 딱히 무엇을 해야겠다는 계획은 없었다. 그렇게 시작된 시골 생활은 역시 만만치 않았다. 이것저것 부딪치는 대로 헤쳐 나갔다. 힘든 순간도 많았지만 도시와는 다른 환경이 주는 만족과 긍정적 사고, 신앙의 힘으로 거뜬히 극복할 수 있었다. 생각하면 어느 것 하나 쉬운 일이 없었지만 시골로 내려온 걸 후회한 적은 없다. 두 분은 그렇게 지금의 자리까지 오게 됐다.


처음 시작한 농사는 우리 밀 재배였다. 가까운 이웃들이 밀 농사를 짓고 있었다. 3천 평의 논에 밀을 심었다. 밀 농사를 계기로 지역의 기술센터에서 가공교육을 받았다. 제빵학원을 다니며 빵 만드는 기술도 익혔다. 지원을 받아 오븐까지 구입하게 됐지만 지역적 여건과 현실적 제약으로 제대로 가동할 수 없었다.

다시 생계를 위해 이곳저곳에서 일하며 다양한 경험을 축적해 나갔다. 돌아보면 좌충우돌 많은 경험이 재산이었다.

그러던 중 어렸을 때 집에 국수기계가 있었던 추억이 떠올라 농사지은 밀로 칼국숫집을 열었다. 읍내에서 가게를 열어 식당을 할 때는 잘 안됐으나 시골집 한편에서 다시 시작한 들깨 칼국수는 맛집으로 소문이 났다. 칼국수 집이 자리를 잡아갈 때쯤 갑자기 민원이 들어와 어쩔 수 없이 식당을 접었다. 식당을 운영하면서 수요일마다 만들어 팔았던 우리 밀 감자빵은 인기가 많았다. 자신감을 얻어 본격적으로 빵집을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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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접 농사 짓는 밀밭>


처음엔 모니카가 빵을 만들었으나 몸이 힘들어지면서 가우덴시오가 전수받았다. 가우덴시오는 한눈에 봐도 제빵사의 풍모다. 지금까지 일궈낸 작지만 알찬 성공의 비결은 맛과 신뢰다. 기본에 충실했다. 듬뿍 들어간 좋은 재료가 최고의 비법이었다. 직접 농사지은 우리 밀로 빵을 만든다. 유화제와 개량제 등 첨가물은 넣지 않는다. 빵에 들어가는 부재료는 지역에서 생산된 농산물을 사용한다. 설탕도 유기농이다. 18시간 저온 발효된 반죽으로 10여 가지의 빵을 만든다. 그날 만든 빵은 그날 판매하는 것을 원칙으로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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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빵집의 히트 상품은 요즘 빵의 대세를 이루고 있는 '소금빵'이었다. 소금빵을 먹고 나면 여운이 남았다. 그 여운은 빵에 대한 자신감을 심어 주었다. 인적 드문 시골이지만 다시 문을 연 빵집엔 손님들이 잊지 않고 찾아왔다. 소문이 소문을 타고 손님을 불러왔다. 믿고 먹을 수 있는 좋은 빵을 찾아 멀리서도 온다. 어떤 손님은 자주 오기 힘들다며 그날 내놓은 한 종류의 빵을 거의 쓸어 담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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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우덴시오는 60대 중반인 올해, 새로운 배움을 위해 대학의 조리제빵학과에 입학했다. 만학도의 열정은 지칠 줄 모른다. 새벽 5시에 일어나 그날 판매할 빵을 만들어 놓고 학교에 간다. 배움의 끝에서 만나게 될 빵이 벌써부터 기대된다.


시골 작은 빵집의 빵엔 다른 곳에선 따라 할 수 없는 최고의 첨가제가 들어 있다. 농부의 땀과 바람과 햇빛과 선한 마음이다. 농부와 함께 비와 바람을 맞으며 겨울을 지나온 밀밭의 풍경이 떠오르는 빵. 고향의 정과 추억, 이웃 간의 어우러져 살아가는 모습이 담겨 있는 빵. 늘 웃는 얼굴과 푸근한 인상으로 손님들을 맞이하는 가우덴시오와 모니카의 마음이 버무려진 빵집은 다녀온 후에도 깊은 여운을 남긴다.


모니카는 소망을 실현하는 삶을 산다. 성당에서의 결혼식과 귀농이 그랬다. 그 이후의 시간들도 작은 소망을 이뤄가는 날들이라 생각하며 기쁘게 받아들였다. 가우덴시오는 모니카를 존중하며 함께 꿈을 실현시켜 나가는 가장 든든한 조력자다. 그만큼 신뢰가 깊다. 요즘은 멋진 노후를 꿈꾸고 있다. 푸드트럭을 몰고 전국을 다니며 직접 만든 빵을 나누어 먹는 꿈. 지나 온 날들이 가우덴시오와 모니카의 꿈이 머지않아 이루어질 것임을 증명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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