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개월째 삼시세끼
오 마이 갓...
오늘은 워킹맘, 아니 모든 엄마들의 영원한 숙제죠. 밥에 대한 이야기를 해볼까 합니다.
초등학생, 유치원생이 함께 있는 저희 집은 사실상 작년 12월부터 긴 방학 중입니다. 벌써 8개월째네요. 초등학교 2학년 큰애는 4월 말에 개학을 했지만, 일주일에 한 번만 등교 수업을 하고 나머지는 집에서 온라인 수업을 합니다. 작은 애는 얼마 전부터 유치원에 다시 나가기 시작했고요. 어쨌든 저는 계절이 세 번 바뀌는 동안 두 아이의 삼시 세끼 책임자가 되어 주방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렇다고 제가 삼시세끼 모두 김이 모락모락 나는 새 밥을 지어 밥상을 차리느냐? 그건 절대 아닙니다. 그렇게 하고 싶어도 물리적인 여건이 안 되죠. 저는 집에서 일하는 엄마이기 때문인데요. 이해를 돕기 위해 제 오전 일과를 간략히 설명드려 볼게요.
엄마, 밥 줘!
배고파서 쓰러지겠어
저는 보통 6시 전후로 일어납니다. 남편 아침만 차려주고 곧바로 번역을 시작하죠. 이때는 외신 기사 번역을 해요. 밤중에 올라온 기사라 되도록 빨리 넘겨줘야 하죠. 기사 번역을 마치면 8시쯤 애들 깨워 아침 먹이고 작은 애를 유치원에 보냅니다. 그러고 나면 큰애 온라인 수업 준비해 주고 저는 바로 두 번째 식탁 출근을 하죠. 이때부터는 책 번역을 해요. 큰애 수업 끝나는 12시 마감을 목표로 정말 집중해서 일을 합니다. 딸아이가 수업 끝나면 바로 이렇게 외치거든요. "엄마 밥 줘! 배고파. 너무 배고파서 쓰러질 것 같아."
위 스케줄을 보면 저는 아침 6시에 일어나 낮 12시까지 대략 4시간~4시간 반 정도를 번역에 할애합니다. 그런데 그 시간 동안 세 사람의 아침과 점심도 함께 준비해야 하죠. 과연 이게 가능한 일일까요? 써놓고 보니 저도 숨이 차네요. 그런데 가능합니다. 일타이피식 집밥이라면!
일타이피,
워킹맘의 집밥 생존법!
일타이피. 한 번에 감이 잘 안 오실 수도 있는데요. 말하자면 한 번의 재료 준비로 다양한 요리를 만들 수 있는 방법입니다. 몇 가지 예를 들어 볼까요?
제가 가장 사랑하는 식재료는 우엉. 저는 냉장고에 우엉조림이 떨어지면 허전하고 불안할 정도로 약간 우엉 중독이에요. 하하. 우엉은 껍질 벗기고 채칼로 쳐서 식초에 담갔다가 조리는 과정이 좀 번거롭긴 한데 그래도 마음먹고 하루 날 잡아 왕창 조려 두면 두고두고 효자 노릇 하는 식재료랍니다. 일단 반찬으로도 더할 나위 없는 건강식이고, 마땅히 먹을 거 없는 날 김밥이나 주먹밥으로 활용할 수 있어서 정말 좋아요. 그래서 저희 집 냉장고에는 항상 우엉과 단무지, 김밥 김이 쟁여져 있답니다.
두 번째는 삶은 닭이에요. 저는 닭을 살 때 보통 생닭 두 마리를 사서 들통에 넣고 푹 삶아서 김치냉장고나 냉동실에 소분해서 보관합니다. 잘 삶아진 닭고기와 진한 육수 몇 병이면 정말 간단하게 여러 가지 요리를 할 수 있거든요. 고춧가루 팍팍 넣은 닭개장, 매운 것 못 먹는 아이들을 위한 맑은 닭개장, 닭칼국수, 닭고기 카레, 닭죽. 육수만 남았다면 각종 찌개 요리에도 활용할 수 있고요. 특히 닭칼국수는 면만 있으면 라면만큼 빨리 끓일 수 있어 아이들 점심으로 애용하는 편이에요.
이 외에 짜장 소스도 대량 생산해두면 짜장밥, 짜장면, 짜장 돈가스 등으로 다양하게 활용할 수 있고요. 돼지고기 수육 거리도 한 번에 좀 많이 삶아서 바로 먹을 땐 초간장 찍어 수육으로 먹고, 한 끼 정도 먹을 건 냉장고에 넣었다가 맛간장에 양파, 대파 잘게 썰어 조려주면 또 한 끼 반찬 걱정 덜 수 있답니다.
아, 그리고 하루 중 아침 시간이 제일 바쁜 저를 위한 먹거리도 상비해두지요. 바로 해독주스인데요. 보통 1주일치를 한 번에 삶아서 김냉에 넣어 두고 그때그때 갈아 마셔요. 바나나 한 개 쏙 넣고 먹으면 든든한 아침이 된답니다. 애들 챙기다 보면 정작 저는 밥 한 숟가락도 제대로 못 먹고 지나칠 때가 많은데 그나마 해독주스가 있으니 다이어트도 되고 일석이조인 듯요!
지금까지 소개해 드린 소위 일타이피 집밥은 하루 정도 날 잡고 준비해 놓으면 두고두고 편한 방식이긴 한데요. 또 하루 날 잡고 대량 생산하는 것도 말처럼 쉽지는 않아요. 그래서 저는 보통 책 번역 끝나고 한두 달 여유 있을 때 몰아서 하는 편이고요. 그마저도 힘들 땐 계란 프라이에 김 싸서 먹이기도 하고, 국 하나 달랑 끓여서 주는 날도 많아요. 정말 바쁠 땐 짜파게티나 홈쇼핑 갈비탕도 애용하고요. 그런 게 더 맛있다고 하면 진심 맥 빠지 고요. 하하.
저희는 외식을 거의 안 하고 배달음식도 기껏해야 일 년에 한두 번이 전부예요. 제 손을 거쳐야 비로소 식구들 입에 밥이 들어가는 시스템이죠. 남편이 외식을 싫어해서 신혼 때는 이 문제로 엄청 싸웠어요. 그런데 그 덕분에 제가 음식 하는 걸 배워서 그나마 코로나 시대의 삼시세끼 일상을 웬만큼 버텨내고 있는 듯해요.
요즘은 번역 일에 브런치 글쓰기까지 더해져 예전만큼 밥에 신경을 못 쓰고 있어서 미안하네요. 그래도 이 정도면 잘하고 있다고, 모든 걸 다 잘할 수는 없는 거라고 위안해 봅니다. 오늘도 각자의 자리에서 삼시 세 끼를 위해 고군분투하는 이 땅의 모든 엄마들 파이팅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