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월 둘째 주 명상 기록
지난주 토요일 '감사 명상'에 대해서 발표했다. 두 명이서 한 조가 되어서, 각자 준비한 자료를 상대방이 발표를 하는 것이다.
평소 우리는 과거에 대한 후회나 미래에 대한 걱정과 근심, 불안으로 현재를 온전히 살지 못하곤 한다. 감사 명상은 현재에 집중하며, 일상에서 마주하는 익숙하고 사소한 것 들에도 감사한 마음을 느껴보는 것이다. 가족, 친구, 날씨, 커피 한잔에서 느끼는 감사한 마음을 경험해보는 것이다. 이를 반복해서 연습하면서 따듯함과 행복감이 마음 넓게 자리 잡게 된다.
나는 내 파트너가 준비해온 감사 명상에 관한 자료를 읽었다. 준비한 내용이 끝나자 대표님이 내가 물었다.
"유니, 너는 평소에 감사함을 잘 느끼며 살고 있니?"
"매 순간 감사하다고 느끼면서 살기 어려워요. 당연하게 생각하면서 사는 부분도 있고, 힘들고 불만스러운 부분도 있고요."
"가장 힘든 게 뭔데."
"음… 딸로서의 역할이 가장 어려워요."
"뭐가 제일 어려운데."
"지금은 아빠 간병하는 게 어려워요. 그래도 어느 정도 적응도 했고, 명상 덕분인지 아빠가 기분 안 좋은 표현을 해도 그 감정이 제게 박히진 않아요. 안쓰럽다. 불편하겠다. 내가 어떻게 하면 좋을까. 이 정도 까지만 생각이 들어요."
"그런데 긴 병에 효자 없다고 하는데."
아빠가 뇌종양 투병을 한지 어느덧 3년 차, 편 마비 온 지 1년 가까이 되었다. 전에 대표님에게 말씀드렸었다.
"살아 계신 거에 감사하고, 더 이상 나빠지지 않길 바라고만 있어요."
"그래? 아버지가 돌아가시면 어떨 거 같아."
"슬프겠죠. 아빠가 점점 약해지고 허물어진다는 매주 실감해요. 누구나 죽음을 향해 살아간다 걸 아빠를 보면서 직접적으로 느끼고 있어요. 마음의 준비를 하면서 지내고 있어요."
"힘들지 않아? 진짜 병간호하는 게 쉽지 않아."
"네. 힘들긴 한데 그런대로 할 만해요. 그런데 할 때는 아무 생각 없는데. 동생이 제 맘에 개입되는 순간 짜증이 날 때도 있어요. 아빠 간병을 자주 하는 건 아니지만, 왜 나만 하고 있지? 이렇게요. 그런데 이게 아빠 회사에서 반 강제적으로 일해야 했던 거부터 시작되는 듯해요. 동생은 공부하고, 동생이 앞으로 될 직업이 평생직장이라는 이유로 당연히 제가 해야 했거든요. 아니다. 어렸을 때 들었던 네가 언니니까 양보해야지 이 말부터 밀려오는 감정인 거 같아요."
"그런데 유니야. 네가 선택으로부터 얻을 게 있어서 하는 거 아니?"
"네?"
"네가 어쩔 수 없지 하고 있다고 하지만 다 네가 원해서 필요해서 하는 선택이야. 예를 들어 네가 아빠를 돌보지 않으면 오히려 너 마음이 불편하고, 아빠와 함께하고 엄마를 보다 편하게 해 주는 게 네가 좋아서 하는 거라고."
"아. 그 말씀도 맞는 거 같아요."
"모든 사람은 내가 유익하고 유리하고 여기는 것을 선택해. 그래도 선택 후에 네가 겪는 그 과정은 힘들겠지. 긴 병에 효자 없다는 말이 괜히 나오는 게 아니거든."
"네. 솔직히 힘들어요. 전보다는 덜 힘들지만 안 힘든 건 아니죠. 아빠가 과거에 저한테 다정하고 따듯하게 잘 대해줬던 그 과거의 추억 덕분에 저도 아빠한테 지금처럼 할 수 있어요. 아빠한테 사랑을 받지 않았더라면 못했을 거예요. 그리고 아빠가 돌아가시면 내가 편해지겠다는 생각도 하곤 해요."
"그래. 맞아. 해가 뜨고 지듯이 모든 것은 나타났다가 사라지는 거야. 그런데 네가 언제 성장했고, 언제 배웠다고 느껴?"
"처음에 못 해낼 일처럼 보였는데 제가 해냈을 때요."
"그래. 종교 있니?"
"종교 없어요."
"그럼 가장 마음이 가는 종교는 뭐야?"
"불교요."
"그럼 동생을 부처님 모시 듯 모셔."
"네?"
"동생이 무슨 짓을 해도 네게 일어난 감정이 너에게 아무런 해를 끼치지 않으면, 그땐 넌 해탈을 한 거야."
과연 내가 부처가 될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