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완서의 말_소박한 개인주의자의 인터뷰』에서 박완서 선생님은 이렇게 말한다.
“사람에겐 감정적 독립이 가장 어려운 게 아닌가 하는 것이 내가 불행을 겪고 난 뒤의 생각입니다. 흔히들 사람이 혼자 서기 위해서는 경제적 독립이 우선이라 하고 또 경제적 독립과 감정적 독립이 병행돼야 한다고들 말하지요. 나도 그러려니 했는데, 그게 아니라는 걸 이제야 깨닫게 된 거지요. (…) 의외로 내가 감정적으로 독립하기 어려운 사람이라는 것이 사랑하는 이들을 떠나보내고야 깨달은 점입니다.” [1]
우리가 가끔 누군가의 인터뷰를 찾아 읽는 이유는 삶의 방향이 헷갈릴 때 참고하기 위해 아닐까. 우연히 찾아 읽은 이 책에서 만난 글귀를 통해 현재의 나를 점검해 보는 시간을 갖게 되었다. 마흔이 다 된 싱글 여성인 현재의 나에게 경제적 독립과 감정적 독립을 했는지 물었다. 두 부분 모두 완벽히 “Yes”라고 답하기 어려웠다. 독립해서 살기 시작하면 어쩔 수 없이 경제적 독립은 하게 되기 마련이지만 시원하게 부모님께 용돈을 드리거나 밥을 사기는 힘든 프리랜서이고, 비교적 씩씩한 타입이지만 혼자 산 지 10년이 다 된 30대 후반의 싱글 여성에게 외로움이란 불현듯 찾아오는 불청객과 같은 정서이기 때문이다. 어쩌면 이 두 가지 독립이 잘된 사람일수록 몸과 마음이 건강한 게 아닐까?
박완서 선생님은 남편과 아들을 잃는 불운의 경험으로부터 경제적 독립보다 감정적 독립이 어렵다는 것을 깨닫았다. 자신의 마음을 잘 다스릴 줄 아는 사람이 감정적으로 독립한 인간이라는 것이 아닐까?
여기 경제적으로, 감정적으로 독립한 사람이 있다. 긴 군 생활을 통해 몸에 밴 규칙적이고 성실한 태도는 경제적 독립을 이끌었고, 좋아하는 ‘글씨 쓰기’라는 일을 통해 마음을 풍족하게 다스리며 감정적 독립을 이룬 중년 남성이다.
지오그라피 대표님의 첫인상은 마치 홀딱 벗은 사우나에서 만난 옆자리의 수다스러운 아줌마 같았다. 알몸의 상태에선 왠지 이야기도 편히 하게 된다. 편한 분위기를 가진 사람이지만 경제적 독립과 감정적 독립을 이룬, 게다가 자녀들까지 그걸 일찍이 해내게 만든 단단한 사람과의 편안한 대화가 시작되었다.
최경아 안녕하세요. 먼저 『Pop the Egg!』프로젝트에 참여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이 프로젝트는 다양한 요리를 만들 수 있는 계란이라는 식재료처럼 제가 궁금해하는 여러 분야의 분들을 모시고 대화를 나누는 프로젝트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계란 요리에 대한 질문으로 시작하고자 하는데요. 대표님은 요리를 잘하시나요? 하신다면 계란으로 주로 뭘 해 드시나요?
김영필 안녕하세요. 지오그라피 대표 김영필입니다. 일단 전 요리 엄청나게 잘합니다. (웃음) 식당 아들이었거든요. 어머니께서 서울 영등포역 앞에서 한식당을 하셨어요. 어릴 때부터 음식과 가까이 지냈다 보니 자연스럽게 먹는 것도 좋아하고, 특히 요리하는 걸 즐기는 편이죠.
최경아 오, 그러면 집에서도 요리 자주 하세요?
김영필 제가 딸이 둘 있는데요. 물론 지금은 둘 다 결혼했지만, 애들이 결혼하기 전에는 아내 포함해서 여자 셋을 아무것도 하지 못하게 했어요. 물론 제가 치우는 건 싫어해서 설거지는 하라고 했지만요. 그래서 제 딸들은 주로 차려 주는 밥상을 먹기만 하는 편이었는데요. 결혼을 해보니 시가의 식탁 문화가 너무 달라서 놀랐다는 거예요. 남자들이 앉아서 아무것도 안 하고 있어서.
최경아 대부분의 가정이 그렇지 않나요? 사실 저희 집도 그렇고요.
김영필 그 말을 듣고 저도 충격을 받아서, 사위들이 우리 집에 오면 주방으로 오라고 합니다. ‘네가 할 수 있는 것만 해보라’고 하면서 조금씩 교육을 했죠. 그랬더니 이제는 곧잘 한다고 하네요. (웃음)
최경아 사위만 변한다고 달라지는 게 아닐 텐데요. 그 집안의 분위기가 그렇지 않으면 아들이 주방에서 무언가를 하는 게 부모 입장에선 낯설게 느껴질 수도 있잖아요.
김영필 그래서 저희 작은딸이 처음 시가에 가서 우리 집과 다른 문화를 접하곤, 고기 구워 먹는 자리에서 시아버지께 호방하게 말씀드렸대요. “불 앞에서 일하는 게 기름도 튀고 위험한 일인데 같이 해야 맞지 않나요. 저희 집은 아버지가 고기 다 구우셨어요” 하고요. (웃음) 그랬더니 그 집 남자들이 변했다는군요.
최경아 따님 멋지다.
김영필 그렇다고 제가 매일 요리하는 걸 좋아하는 건 아니지만, 기본적으로 누군가에게 맛있는 음식을 대접하는 걸 통해 행복을 느낍니다. 최대 다수의 최대 행복 아세요?
최경아 영국 공리주의 사상 아닌가요?
김영필 네. 영국의 법학자이자 철학자인 제러미 벤담(Jeremy Bentham)이 한 말이에요. 고등학교 때 이 말을 처음 듣고 ‘미친 거 아니야?’ 하고 생각했는데, 지금 이 나이 되니까 이해가 돼요. 나 혼자 행복한 건 진짜 행복이 아닌 거예요. 내가 좋아서 했는데 여러 사람이 행복해하면, 그게 정말 행복이더라고요.
최경아 맞아요. 저도 제가 좋아하는 걸 아끼는 사람에게 기꺼이 공유하고 함께 할 때 가장 행복한 것 같아요.
김영필 그보다 좋은 게 없죠. 제가 좋아하는 걸 함께 좋아한다는 건 큰 기쁨인 것 같아요. 마치 같은 행복을 바라보고 있는 느낌이랄까요? (웃음)
최경아 그래서 계란으로 주로 뭘 해 드시나요? 이 이야기 하다가….
김영필 음… 많은데… 지금 떠오르는 건 토스트!
최경아 계란프라이 넣은 토스트요?
김영필 네. 고등학교 때, 친구 어머니가 역 앞에 있는 포장마차에서 토스트를 파셨어요. 어머니가 일이 있으실 땐 친구가 잠깐씩 봤거든요. 그때 따라가서 토스트를 얻어먹었죠. 채 썬 볶은 양파와 당근, 계란프라이가 들어간 토스트였는데 너무 맛있었어요. 그래서 그 기억이 좋아서 자주 해 먹어요.
최경아 기억이 깃든 음식은 맛이 없을 수가 없죠. 오랜 시간 동안 직업 군인이셨잖아요. 캘리그라피를 좋아하시게 된 특별한 계기가 있으셨나요?
김영필 제 직책이 대한민국 공군참모총장을 보좌하는 ‘공군주임원사’였는데요. 대한민국 공군 내에서 최선임 부사관으로 딱 한 명 있는 자리였어요. 그렇다 보니 남의 시선을 많이 받는 자리였고, 사생활이 거의 없었죠. 달리 말하면 외로운 자리였어요. 골프 연습장, 헬스장, 숙소를 규칙적으로 오가는 틀에 박힌 생활을 하다가 이 패턴이 너무 단조로워서 다른 취미를 하나 더 끼워 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죠.
최경아 그게 바로 캘리그라피였군요.
김영필 네. 정확히는 서예였어요. 무심코 서예 학원을 발견해서 호기심에 들어갔는데, 상담을 하던 중 바로 서예 붓을 주시더라고요. 그렇게 그냥 시작하게 되어 10여 년 글씨를 쓰다가 2019년 전역 후 바로 준비해서 개업했죠.
최경아 그런데 서예가 아니라 캘리그라피로 개업하셨는데, 사실은 언어만 다를 뿐이지 같은 의미 아닌가요?
김영필 맞아요. 서예를 영어로 하면 캘리그라피죠. 근데 우리나라에서 대중적으로는 현대적인 글씨, 예쁜 손글씨로 인식하는 것 같아요. 저는 개인적으로 상업적인 글씨에 가깝다고 생각합니다. 제가 배운 서예 학원에서는 정말 전통적인 방식의 서예를 가르쳤거든요. 그게 좋고 싫고를 떠나서, 제가 만약 이 아이템으로 사업을 한다면 전통 방식은 고수하고 싶지 않았어요. 현대 감각에 맞춰서 해야겠다고 생각했는데, 그때 마침 캘리그라피 붐이 일었거든요. 시기도 잘 맞았던 거죠.
최경아 지금은 정말 대중화됐잖아요? 저도 수업을 다니다 보면 많은 분들이 캘리그라피를 배우시더라고요.
김영필 요즘 드라마나 영화, 국가 행사 같은 것에도 캘리그라피를 자주 쓰거든요. 물론 전체를 다 쓰는 건 아니고, 포인트를 주고 싶은 명사에 주로 써요. 아무래도 효과가 있으니까 많이 쓰는 거겠죠? 대중화, 상업화가 많이 된 것 같아요.
최경아 어떻게 보면 이 전에 했던 일과 전혀 연관이 없는 일을 하고 계신 거잖아요. 직업 군인과 비교했을 때 이 일의 장단점은 무엇이 있을까요?
김영필 제가 하고 싶은 일을 한다는 것과, 시간을 자유롭게 쓸 수 있다는 게 가장 큰 장점이고요. 단점은 아무래도 따박따박 들어오는 일정한 수입이 없다는 거죠. (웃음)
최경아 오랜 군 생활 덕분에 생긴 생활 습관이 있으실 텐데, 그 습관이 이 일에 영향을 주기도 했나요?
김영필 도움이 많이 되죠. 늦잠을 자거나 게으름을 피우질 않고, 행정 업무도 수월하게 하고요.
최경아 서류 업무… 그게 예술가에겐 정말 쥐약인데, 공무원 생활을 오래 하셨으니 그 업무는 기똥차게 하시겠네요.
김영필 공무원에게 있어서 어떤 사람에 대해 알아보거나 평가할 수 있는 건 문서거든요. 그러니까 문서를 잘 쓸 수밖에 없어요. 오랜 기간 훈련이 돼서 그건 좀 유리한 것 같아요. (웃음)
최경아 그럼 반대로, 군 생활 경험이 방해가 된 경우도 있나요?
김영필 있어요. (웃음) 제가 결정이 좀 빠른 편이거든요. 저는 몰랐는데 함께 일하는 선생님들께서 군 출신이라서 빠른 것 같다고 하시더라고요? 오래 고민하는 것을 별로 좋아하지 않아요. 빨리 결정하고 다른 일을 하는 게 효율적이라고 생각하거든요. 다른 선생님들은 이런 저의 빠른 결정 때문에 간혹 당황하기도 하시죠. 그런데 저는 이 방식이 편하더라고요. 무언가 실수를 했을 때도, “죄송합니다” 하고 끝나면 되는데, 거기에 핑계를 대는 게 싫어요. 빨리 잘못을 인정하고 다른 일을 더 잘하자는 생각인 것 같아요.
최경아 저도 결정이 빠른 편에 속하는데, 오히려 결정이 빠르면 후회가 많이 없는 것 같아요. 오래 고민해서 결정하면 후회도 크더라고요. 그런데 어쩌다 직업 군인이 되신 거예요? 처음부터 직업 군인이 되고 싶었을 것 같진 않은데….
김영필 사실 저는 항공사에 입사하고 싶어서 공군에 지원한 케이스였어요. 왜냐하면 그때 당시 메이저 항공사 영업사원들이 공군 비행장에 와서 스카우트했거든요. 그걸 기대하고 지원했던 거죠. 원래 1989년에 전역이 예정되어 있었는데 당시가 제5공화국 정권이었기 때문에 여러 명이 한꺼번에 우르르 전역하는 게 쉽지 않았어요. 제 동기가 저 포함해서 세 명이었는데, 저만 기혼자고 나머지는 미혼이었거든요. 대대장이랑 면담하는데, 아무래도 제가 기혼자니까 안정된 곳에 얼른 자리 잡으라면서 절 잡으셨죠. 그래서 군대에 남게 된 겁니다. (웃음)
최경아 나머지 동기들은 전역하시고요? 그래서 메이저 항공사에 취직하셨나요?
김영필 네, 입사 후 몇 년 근무하다가 퇴직하고 한 명은 철물점, 한 명은 식당을 운영 합니다. (웃음)
최경아 그러면 억울하진 않으시겠네요. (웃음) 대표님도 결혼을 일찍 하신 편인데, 따님들도 요즘 세대치고 엄청 일찍 결혼하셨다고요? 대표님 닮아서 빠른 결정?
김영필 그런 것 같기도 해요. (웃음) 제가 스물넷에 했고, 작은딸은 스물둘, 큰딸은 스물아홉에 했으니까요.
최경아 작은따님이 공군이셨다면서요?
김영필 네. 대학교 1년 다니다가 저 몰래 공군 시험을 봤는데 합격한 거예요. 그래서 군 생활을 하다가, 거기서 육군 소위를 만나 결혼했죠. 사위는 지금 대위이고, 딸은 전역했어요.
최경아 그러면 작은사위가 장인어른께 깍듯하겠어요.
김영필 그럼요. 안 그러면 저한테 많이 혼나죠. (웃음) 원래 키울 때도 그랬지만, 딸들이 일찍 결혼해서 그런지, 가까이 살아도 서로의 생활에 크게 개입하지 않고 독립적이에요.
최경아 특히 요즘은 젊은 부부들이 맞벌이를 많이 하니까, 아이를 출산하면 조부모가 많이 봐주잖아요. 대표님은 왠지 그러지 않으셨을 것 같은데….
김영필 네. 각자의 인생을 존중하고 영역을 지켜주는 거죠. (웃음) 제 아내와도 그래요. 서로 취향, 취미가 다르니까 각자 하루 동안 좋아하는 거 하면서 살다가 저녁에 들어와서 한두 시간 대화하고 자죠.
최경아 보통 몇 시에 들어가시는데요?
김영필 밤 10시나 돼야 집에 들어가는 것 같아요.
최경아 군 생활을 하실 때보다 훨씬 늦네요. 뭐 하느라 그렇게 늦게 들어가세요?
김영필 모르겠어요. 일이 많아요. (웃음) 근데, 군 생활 할 때는 야근하면 야근 수당도 나왔거든요. 그런데도 행복하지가 않았어요. 근데 지금 하는 일은 제가 좋아해서 하는 일이니까 야근하고 돈을 못 받아도 재밌어요. 내 일이니까요.
최경아 제가 프리랜서로 10년 이상 생활해 온바, 일반 직장인들과 다르게 주중의 시간을 자유롭게 쓰고 사람 많은 주말엔 되도록 안 움직여서 좋기는 한데요. 왠지 주중, 주말 할 것 없이 365일 일하는 느낌이더라고요. (웃음) 수당 없는 무한 노동의 삶이랄까요? 물론 좋아서 하는 일이긴 하지만… 가끔은 좋아서 하는 일의 보상이 적절치 않으면 지칠 때도 있더라고요. 대표님은 안 지치세요?
김영필 아직은 괜찮아요. (웃음) 언젠가 그런 날이 오면 믿을 만한 분께 위임하려고요.
최경아 회사명인 ‘지오그라피’는 ‘뜻 지(志)’, ‘나 오(吾)’, ‘그라피’를 결합한 것으로, ‘나만의 생각이 담긴 글씨로 하나 되는 세상을 꿈꾼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고 들었는데요. 이것의 탄생 배경에 대해 말씀해 주실 수 있을까요?
김영필 보통 글씨를 쓰게 되면 ‘호’를 짓거든요. 저를 가르쳐 주신 선생님이 저의 호를 ‘무림’이라고 지어 주셨어요. 무성할 무(茂)와 수풀 림(林)을 합친 단어로, 무성한 숲을 뜻하죠. 재주가 많은 사람이지만 그 무성한 숲에 들어가 봐야만 알 수 있다는 의미를 담고 있어요. 그런데 저는 그게 사실 마음에 안 들었거든요. 무림 고수 같은 느낌도 나고… 군인 같기도 해서…. (웃음)
최경아 무림 글씨가 될 뻔했군요. (웃음)
김영필 네. 그래서 어떤 호로 다시 지을지 고민을 하던 중에 길을 가는데 푸르지오 아파트가 보이는 거예요. ‘지오? 괜찮은데?’ 하는 생각이 들어서 적절한 한자를 찾아봤죠. 거기에 ‘그라피’를 붙이니까 내셔널 지오그라피를 노이즈 마케팅 한 느낌도 나면서 현대 감각에 맞고 재밌겠다 싶었어요. 그래서 지오그라피가 된 겁니다. (웃음)
최경아 아이돌 팀 이름 짓는 방식이네요? (웃음) 아이돌들이 입에 잘 붙는 팀명부터 지은 다음에 거기에 뜻을 그럴싸하게 정하잖아요. 아예 뜻조차 없는 팀도 있고요. 일단 쉽게 잘 불리는 게 중요하니까.
김영필 아, 그런가요? (웃음)
최경아 ‘나만의 생각이 담긴 글씨’를 만들기 위해서는 디자인 감각이 좋아야 하겠네요? 캘리그라피에서는 어떤 작업을 좋은 작업이라고 말하나요? 기존에 나와 있는 다양한 글씨체가 있잖아요. 보통은 그 글씨체를 카피해서 옮겨 적는 작업을 하는 것으로 알고 있는데, 그걸 잘 카피하는 것을 좋은 작업이라고 하나요? 아니면 그 글씨를 변형해서 없는 글씨체를 만드는 것을 좋은 작업이라고 하나요?
김영필 미술에도 대중화된 것들 위주로 배우기 쉽게 만들어 놓은 교본 같은 것이 있듯이, 캘리그라피 세계에도 체본이라는 게 있어요. 역사가 오래됐다고 해서 어떤 글씨를 무작정 따라 쓰는 게 아니고, 수많은 글씨 중에 유독 사람들이 좋아해서 유명해진 글씨체들이 있거든요. 그걸 똑같이 쓰는 작업을 먼저 합니다. 그게 어느 정도 경지에 오르면, 그때 자기 글씨를 쓰는 시기가 와요. 그럼 그 글씨에서 변형해서 쓰는 거죠.
최경아 흔히 좋은 글씨체로 알려진 것을 따라 그린 후에 거기에서 약간의 변형을 하면서 내 글씨를 만드는 거군요. 그것도 내 아이디어를 통해 나온 것이니까 내가 디자인한 글씨라고 할 수 있고요.
김영필 네 맞습니다. 저도 수업할 때 제 글씨를 따라 쓰게 하거든요. 하지만 오랜 시간이 지난 후에도 제 글씨를 똑같이 쓰면 재미없을 거라고 말해요. 응용하는 재미가 커서 이 작업을 오래 할 수 있는 것 같아요.
최경아 쉽게 말해 응용 디자인이네요. 그걸 잘하려면 좋은 글씨를 많이 보고 써 봐야겠네요?
김영필 그렇죠. 대중들이 좋아하는 글씨를 잘 파악하고 잘 쓰면 성공할 수 있어요. 처음처럼, 참이슬 라벨에 붙어 있는 글씨체 있죠? 그 글씨들 가격이 억대예요. 모르셨죠? (웃음) 그래서 캘리그라피에서는 보통 사람 이름이나 시대 이름을 따서 글씨체 이름을 지어요.
최경아 대표님이 가장 좋아하시는 글씨체는 무엇인가요?
김영필 판본 여사서체입니다. 판본이라는 뜻이 목판에 원본 글씨를 조각칼로 파서 쓴 다음에 종이에 찍어내는 걸 말하거든요. 인쇄용 글씨라고 보면 돼요. 『 여사서 』라는 책은 유교적인 이념으로 가득 찬 전통 시대에 여성 지식인들이 살아남는 네 가지 방법을 서술한 보고서와 같은 책인데요. 우연히 그 책의 글씨체를 따라 쓰다 보니까 내용이 너무 좋은 거예요. 그래서 그 글씨까지 좋아지게 됐습니다. 수원 시내 돌아다니다 보면 이 글씨체가 간혹 보여요. 그럼 반갑죠. 사실 캘리그라피는 아는 사람만 쓰는 경우가 많거든요. 특히 공기관에서 쓰는 경우는 드문데, 공무원의 눈이 좀 발달하거나 예민한 경우에 가끔 볼 수 있습니다. (웃음)
최경아 글씨도 공부할 게 엄청 많겠네요. 현재를 알려면 과거를 들여다봐야 한다는 말이 있듯이 역사적인 서체를 응용하는 재미도 있을 것 같아요. 이런 걸 배울 수 있는 학과가 있나요?
김영필 글로벌 파인아트 학과, 서예학과, 문자조형학과 등이 있어요. 그보다 오래전의 학문으로는 금석학이라는 게 있죠. 금속이나 비석에 쓰인 글을 연구하는 학문이에요.
최경아 이야기를 듣다 보니까, 제가 하는 그림 작업과 대표님이 하시는 캘리그라피 작업의 가장 큰 차이점은 복제가 가능하냐인 것 같아요. 물론 100% 똑같이 복제하는 건 힘들겠지만, 글씨는 어느 정도 가능할 것 같거든요. 그림은 종류에 따라 다르겠지만, 완벽히 똑같이 새로 그린다는 건 거의 불가능하다고 보거든요.
김영필 그럴 수 있죠. 그래서 제가 아끼던 작품이 팔리거나 기증하게 돼도 그렇게 아쉽지 않아요. 새롭게 다시 쓰면 되니까요. (웃음) 얼마 전에 육군에 기증한 작품이 하나 있는데, <관동별곡>을 손으로 쓴 것과 전각 작업을 해서 찍은 것을 섞어서 만든 작업이었거든요. 그런 작품의 경우에도 도장이 있으니까, 글씨만 다시 쓰면 원본 작품과 거의 비슷하게 재현하는 게 가능하죠.
최경아 도장과 글씨를 레이아웃한 작업이면… 그림이라고 볼 수도 있겠네요. 편집 디자인 감각도 있으면 좋겠네요.
김영필 서예나 전각에서 원칙처럼 쓰는 디자인이 있긴 있어요. “상실하허 좌실우허(上實下虛 左實右虛). 위쪽이 실하고 아랫쪽이 허하고, 왼쪽이 실하고 오른쪽이 허해야 안정적으로 보인다”는 말인데요. 붓을 들고 왼쪽 위에서부터 쓰기 시작해서 오른쪽 아래에서 끝나야 보기가 좋다는 논리입니다.
최경아 어찌 보면 동양화에서 말하는 여백의 미와 비슷한 거군요. 글씨뿐 아니라 디자인이나 그림도 많이 봐야 좋은 작업을 할 수 있겠네요.
김영필 맞아요. 글씨를 아무리 아름답게 잘 써도 배치를 잘 못하면 좋은 작품이 될 수 없는 거죠.
최경아 지금은 취미가 직업이 된 셈이잖아요. 그럼, 현재의 취미로는 뭐가 있으세요?
김영필 취미가 일인 것 같아요. 일하는 게 재밌으니까. 굳이 한 개 뽑아보자면 음악 듣는 거 좋아해요. 그래서 한때 오디오도 모았어요.
최경아 그럼 그 좋은 오디오로 어떤 음악을 주로 들으세요?
김영필 라디오? 음원은 라디오만큼 좋은 게 없어요. 송출 방식의 음질이 제일 좋아요.
최경아 라디오 어떤 채널 들으시는데요?
김영필 93.1, 93.9 두 채널만 듣습니다. 클래식과 대중음악 채널이요.
최경아 오디오도 깊이 파다 보면 돈 좀 뜯길 텐데….
김영필 다행히 제 귀가 그렇게 예민하지 않아서 다행입니다. 막귀여서 많이는 안 털렸어요. (웃음)
최경아 좋아하는 일이 직업이 되었다는 게 대표님께 가장 큰 기쁨일 것 같은데요. 앞으로의 목표나 꿈이 있다면 무엇일까요?
김영필 글씨로 하나 되는 세상이에요. 사업을 더 확장할 생각은 없는데 수원, 혹은 경기 남부 쪽에서만이라도 글씨 좋아하는 사람들과 지속적으로 관계하면서 공부도 하고, 전시도 하고 싶어요. 저는 67세 정도까지만 사업하다 놀고 싶거든요. 그때는 불려 다니면서 글씨 이야기하며 같이 즐기고 싶어요. (웃음)
최경아 대표님은 퇴직 이후에 제2의 인생을 주체적으로 즐겁게 사시는 이 시대의 참 어른이라는 생각이 드는데요, 청년 세대들에게 혹시 해 주고 싶으신 말이 있을까요?
김영필 수원 글로벌 평생 학습관에 가서 본 글귀인데요. “혼자 공부하면 현명해질 수 있고, 함께 공부하면 행복해질 수 있다”고 하더라고요. 100세까지 산다고 가정했을 때, 50세까지는 현명하게 살고, 남은 50년은 행복하게 사는 게 어떠냐고 말해주고 싶어요. 50세 이전에는 공부도 열심히 하고, 돈도 좀 벌어 놓고, 50세 이후에는 그걸 함께 나누면서 사는 게 좋을 것 같아요.
최경아 저… 50세까지 10년 정도 남았는데 돈 모을 수 있을까요…?
김영필 저도 생각해 보면 군 전역하기 5년 전부터 돈이 모였던 거 같아요. 그 전에는 저도 돈 없었어요. (웃음)
최경아 그럼 마지막 질문을 드리겠습니다. 글씨 작업 하실 때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시는 게 있을까요?
김영필 정리 정돈이에요. 주변이 어수선하면 글씨가 안 써져요. 그래서 일단 주변 정리를 깔끔하게 해 놓고 작업을 시작합니다.
최경아 그것도 왠지 오랜 군 생활의 좋은 영향인 것 같네요. (웃음) 앞으로도 좋은 글씨를 많은 분들과 나눠주세요!
2023.10.30.
[1] 박완서, 『박완서의 말_소박한 개인주의자의 인터뷰』, 마음산책, 2018, 20-21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