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배웠다!

지금도 흐른다! 876

by 초롱초롱 박철홍

초롱초롱 박철홍의

지금도 흐른다! 876


― 나는 배웠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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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역사 글을 자주 올리지 못하고 있습니다. 이미 말씀드린 바 있지만, 한국사 전체를 완성한 이후로는, 고대사부터 다시 정리하며 '브런치'에만 연재하고 있습니다.


내용을 새로 다듬으면서 기존과는 많은 부분이 달라지고 있습니다. AI 도움도 받아 문장도 훨씬 세련 되어졌습니다. 이런 방식으로 전면적으로 다듬는 데만도 앞으로 2년은 더 걸릴 듯합니다.


참 머나먼 길입니다.


그런데 조금 서운한 것은, 꽤 오랫동안 <역사는 흐른다>를 멈추고 <지금도 흐른다>만 올리고 있는데도, 왜 '역사 글'을 더 이상 쓰지 않느냐고 물어보는 분이 거의 없다는 사실입니다. ^^


그런 분이 나올 때까지는 오래 전에 썼던 <지금도 흐른다> 글들을 다시 손봐서 올려보려 합니다. 다시 손은 보지만 거의 새로운 글들입니다.


아래 글은 지금으로부터 20년 전, 2005년에 쓴 글입니다.


2002년, 담양군청 군수비서실장 으로 들어가 3년이 지나던 즈음, 여러 상념에 젖었던 때 썼던 글 입니다.


그리고 이듬해인 2006년, 내 첫 선거출마인 전남도의원 선거에 출마하기 직전 해 였습니다.


그 당시 저는 <열린우리당 여당 후보로 전남도의원 공천>을 받아 출마했지만, 당시 전남에 불었던 <꼬마민주당> 돌풍으로 낙선 했습니다.


사실 열린우리당은 당시 전남 지역 국회의원을 대부분 차지하고 있었지만, 전남도의원 60석 중 당선된 열린우리당 후보는 딸랑 1명이었습니다.


사실, 노무현대통령 탄핵되고나서

치루어진 '총선' 때처럼 노무현 열풍이 남아있었다면 나 또한 거뜬히 당선 되었을 것이고 제 인생도 많은 변화가 있었을 것입니다.


선거 후, 결국 열린우리당과 꼬마민주당은 통합되었지만, 민심이란 때로 예측불허 광풍처럼 지나가기도 합니다.


민심은 결코 고정되어 있지 않고, 항상 옳지만도 않습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언젠가는 민심이 옳은 방향으로 돌아오리라는 믿음을 저는 지금도 품고 있습니다.


아래 글은 2005년 12월 22일, 그러니까 마흔여섯, 사십대 중반 넘기던 그 겨울날 쓴 글입니다.


지금 읽어보니 조금 오글거리기도 하지만, 그 시절 저를 있는 그대로 남기고 싶어 옮겨봅니다.


사람은 나이를 먹는다고 해서 반드시 더 현명해지는 것은 아니라는 생각을, 요즘 60이 훌쩍 넘은 제가 그때 글을 다시 읽으며 새삼 느끼고 있습니다.


과연 나는 그때보다 지금 더 나아졌는가?


내가 여러 면에서 발전했고, 생각도 성숙해졌다고 말할 수 있을까?


정말, 의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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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2005년 12월 22일]


눈이 하염없이 쏟아진다.

폭설로 피해를 입는 분들을 생각하면 가슴 아프지만,

눈앞이 보이지 않도록 퍼붓는 눈발은 그 자체로 경이롭다.


움직일 수 없이 사무실에 앉아, 창밖으로 내리는 눈을 바라보다

문득, 오랜만에 스스로를 돌아보며 이 글을 쓴다.


요즘 괜히 마음이 싱숭생숭하다.

한 해가 또 지나가고, 내 나이 어느덧 마흔여섯.

사십대 중반을 넘긴 나는 이제 ‘중년’이라는 단어가 피부에 와닿는다.


하지만 솔직히 지금까지 한 번도 내 자신을 중년이라 생각해본 적 없다. 몸도, 마음도 여전히 청춘 처럼 살아왔다.


조금은 거침없이, 자유롭게.


그런데 이제는 자꾸 뒤를 돌아 보게 된다.


과거에 내가 옳다고 믿고 행해온 생각들과 행동들이, 그 전부는 아니었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나는 원래 격식을 싫어하는 체질이었다.


겉으로만 점잖은 체하는 왜곡된 유교적 양반 체면문화가 몹시도 싫었다.


그러한 것들이 우리사회를 병들게 했다고까지 여겼다.


친구 관계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체면 따지고 격식차리는 친구들은 나와 잘 맞지 않았다.


쌍욕도 스스럼없이 주고받고, 웃고 떠들며 자유롭게 농담하는 친구들이 좋았다.


군청에 들어와서도 처음엔 적응이 무척 어려웠다.


식사자리에조차 계급따라 자리가 정해지는 게 우습기도 하고, 안쓰럽기도 했다.


행사에서는 내빈 소개만 10분이 넘고, 정작 중요한 시간은 축사와 의례적인 격식으로 진이 빠져 버리는 모습들이 이해되지 않았다.


나는 내가 개혁적이고 자유로운 사고를 지닌 사람이라고 자부 했다.


어느 정도는 사실이기도 했다.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내 생각에 대한 확신이 흔들리기 시작했다.


스스로를 돌아봤을 때, 내가 싫어했던 ‘격식’과 ‘체면’ 같은 것들이, 실은 인간과 조직 품위를 유지하기 위해 불가피한 장치일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다른 사람과 조직을 바꾸려 하기 전에 나 자신 부터 변화해야 한다는 사실을 깨닫기 시작했다.


사십이 ‘불혹’의 나이라고들 하지만, 사십 중반을 넘긴 지금은 오히려 더 자주 흔들린다.


그렇다고 갑작스러운 변화를 원하지는 않는다.


아직 나는 배우는 중이다.


마지막으로, 그 시절의 내 마음을 대변해주는 시 한 편을 남기고 싶다.


지금 다시 읽어도 가슴이 따뜻해지고, 한 줄 한 줄 공감이 가득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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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배웠다>


-오마르 워싱턴-


나는 배웠다.

다른 사람을 억지로 나를 사랑하게 만들 수는 없다는 것을.

내가 할 수 있는 건 다만 사랑받을 만한 사람이 되는 것뿐임을.

사랑은 사랑하는 사람의 선택이라는 것을.


나는 배웠다.

내가 아무리 마음을 쏟아도,

사람들은 때로 아무런 반응도 보답도 하지 않는다는 것을.


신뢰는 쌓는 데는 여러 해가 걸려도 무너지는 데는 단 하루도 걸리지 않는다는 것을

나는 배웠다.


인생은 내가 무엇을 갖고 있는가가 아니라 누구를 믿고 있는가에 달려 있다는 것을

나는 배웠다.


우리의 매력은 고작 15분을 넘기지 못하고, 그 후엔 무엇을 알고 있는지가 중요하다는 것도

나는 배웠다.


나는 배웠다.

남과 비교하느라 자신을 소모하지 말고, 어제의 나와 오늘의 나를 비교해야 한다는 것을.


인생은 어떤 사건이 일어났느냐보다 그 사건에 내가 어떻게 대처하느냐에 달려 있다는 것을 나는 배웠다.


어떤 일이 아무리 얇게 베어져 있어도 그 일에는 항상 양면이 있다는 것을 나는 배웠다.


사랑하는 사람에게는

언제나 사랑한다는 말을 남겨두어야 한다는 것을.

그 순간이 마지막일 수도 있다는 것을 나는 배웠다.


결과에 집착하지 않고

해야 할 일을 묵묵히 하는 사람이

진정한 영웅임을 나는 배웠다.


사랑을 마음에 가득 담고 있으면서도 그 표현 방법을 모르는 사람이 있다는 것을

나는 배웠다.


분노할 권리는 있어도

타인을 잔인하게 대할 권리는 없다는 것을 나는 배웠다.


진정한 우정과 사랑은

물리적 거리를 뛰어넘는다는 것도

나는 배웠다.


그리고, 아무리 좋은 친구도

가끔은 나를 아프게 할 수 있고,

그래도 그들을 용서해야 한다는 것도 나는 배웠다.


내가 너무도 아끼는 사람들이

너무 빨리 이 세상을 떠난다는 것을 나는 배웠다.


*******************


그리고 무엇보다 나는 배웠다.


글을 쓰는 일이,

말을 나누는 일이

마음의 아픔을 덜어준다는 것을.


이 시를 읽고,

그리고 20여 년 전 내가 쓴 글을 다시 읽으며

나는 또 배웠다.


배운 것도

금세 잊혀질 수 있다는 것을.


배움은 한 번으로

끝나는 게 아니라,

반복하고 되새겨야 한다는 것을.


나이가 들어간다는 것이

반드시 더 현명해지고

성숙해지는 건 아니라는 것을.


나는 또 배웠다.


ㅡ 초롱박철홍 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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