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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초무으야우 Oct 26. 2023

좋아하는 시

좋아하는 시는 사실 딱히 없다. 시는 나에게 느린 시간과 노력을 요구하고 시를 천천히 각 잡고 읽어본 적이 잘 없기 때문이다. 그래도 시 하나를 말하라면 나는 아래의 시를 꼽곤 한다. 빠르게 심장에 꽂힌 시는 역시나 함의가 적고 에세이다운 시였다. 



사람이 온다는 건 
실은 어마어마한 일이다 
그는  
그의 과거와 현재와 
그의 미래와 함께 오기 때문이다 
한 사람의 일생이 오기 때문이다 
부서지기 쉬운 
그래서 부서지기도 했을 
마음이 오는 것이다-그 갈피를 
아마 바람은 더듬어볼 수 있을 
마음, 
내 마음이 그런 바람을 흉내낸다면 
필경 환대가 될 것이다


(정현종 시 ‘방문객’)




원래 있었던 관계, 그리고 지금 있는 관계, 그리고 어느 순간 사라진 관계들을 다시 되새기다 보면 겪는 감정이 있는데, 이를 잘 표현한 것 같다. 그냥 스치는 사람들이라고만 생각했는데, 그 사람들의 일생이 온다고 생각하면 괜히 마음 한켠이 먹먹해진다. 나도 모르는 사이에 살아온 과거 그리고 현재, 그리고 살아갈 미래를 짊어지는 내 주변 관계들이 어떻게 보면 대견하고 어떻게 보면 짠하다. 그리고 내가 모를 수밖에 없는 그들의 과거가 부디 그들에게 친절했길 바랄 때가 많다. 생각보다 더 심하게 과거가 우리의 발목을 잡기에. 누군가와 더 가까워질수록 나는 어떤 책임감 같은 것을 느끼곤 했는데, 그들이 그저 나에게 온 것이 아니라 하나의 인생이 왔구나, 부서지기 쉬운, 그리고 부서지기도 했을 마음이 왔기 때문일 것이라 이 시를 통해 결론 지을 수 있었다. 세상에 더 좋은 시들은 많다. 그리고 사람마다 좋아하는 시는 다른 건 자명하다. 우리가 시를 좋아하지 않을 수밖에 없는 이유는 이런 것 아닐까. 아주 압축적이게 나의 마음을 꿰뚫을 마음의 초상을 부여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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