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절이 바뀌고 내 마음도 바빠진다. 새로운 계절을 만나려면 이것저것 할 일이 많다. 아직은 가을이지만 언제 추운 날씨가 찾아올지 모른다. 여름 내내 베짱이처럼 놀다 보니 치울 것이 한두 개가 아니다. 여기저기서 치워달라고 데모를 한다. 한 해 동안 한 번도 쓰지 않았던 물건이 많아 미련 없이 내어 놓는다. 언젠가라는 날은 오지 않는다. 오늘 내가 쓰지 않는 물건은 앞으로도 쓰지 않을 것이다. 무언가를 만들어 보려고 사다 놓은 천들이 많은데 이제는 다 부질없는 것 같다. 물건이 흔한 시대인데 더 보탤 필요는 없다. 멀쩡해 보여도 시대에 뒤떨어져 보이는 물건은 가지고 있을 필요가 없다. 유행은 다시 돌아온다고 하지만 비슷한 듯해도 다른 패션이 되어 돌아온다.
유행은 유행대로 변하고 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의 눈도 변한다. 한동안 밤색을 좋아했는데 올해는 밝고 환한 색이 좋다. 올해 산 옷은 환하고 원색에 가까운 밝은 색이다. 내년에는 또 다른 색과 다른 디자인을 선호할 것이다. 올해 마음에 든다고 비싼 돈을 주고 산 물건이라도 내년에도 좋아할 것이라는 보장이 없다. 여러 물건이 있어도 그중 편하고 마음에 드는 것만 입게 되어 나머지는 옷장에서 자리만 차지한다. 이제는 좋은 곳에 갈 때 입는 옷도 따로 놔둘 필요도 없음을 느끼게 된다. 결혼식을 자주 가서 축하를 해 주었는데 이제는 결혼식 양상이 달라져서 가족끼리만 하는 결혼식을 하는 사람들이 많다. 장례식 외에는 정복을 입을 기회는 거의 없고 검은 정장 하나만 있으면 된다.
좋은 옷을 입으면 더러워질까 봐 신경 쓰이고 자주 입지 않아 불편해서 바로 벗게 된다. 요즘에 만든 옷들은 합성으로 만들어서 백 년이 가도 떨어지지 않을 정도로 질기다. 생활 패턴이 달라져서 사람들이 중노동을 하는 것도 아니고 한두 개 가지고 입는 것도 아니다. 물건은 흔하고 유행은 하루아침에 달라진다. 몇 번 입고 걸어 놓고 있다 보면 구식이 된다. 일 년에 몇 번 입기 위해 비싼 돈을 들여 사는 게 아까워서 옷은 되도록 사지 않는다. 유행이 지난 옷이라 하더라도 안에 입고 바쳐 입으며 산다. 겨울에는 두꺼운 패딩 하나만 있으면 겨울을 충분히 따뜻하게 보낼 수 있다.
퇴직하기 전에는 사회활동을 하기 때문에 계절마다 갖추어 입었지만 지금은 편하고 따뜻한 옷이 제일 좋다. 신발도 조금 불편해도 모양이 예쁘면 신고 다녔는데 다리가 아프고 나서는 편한 게 최고다. 예쁘고 멋있고 편하면 더 이상 바랄 것이 없는데 그런 것은 찾기 힘든다. 옛날에는 가지고 있는 것이 많으면 부자였는데 지금은 다르다. 꼭 필요한 것만 가지고 단순하게 사는 사람들이 부자다. 가난한 사람들은 물건을 쌓아놓으며 대리 만족을 하는 경우가 많다 고 한다. 있고 없고를 막론하고 너저분한 물건이 많으면 보기 안 좋다.
한동안 물건을 보는 대로 사던 시절이 있었다. 사실 우리가 필요한 물건은 그리 많지 않은데 괜한 욕심으로 이것저것 산다. 그렇게 사다 놓은 물건을 쓰면 좋은데 한두 번 쓰다 보면 흥미를 잃고 구석에 처박아 놓는다. 거의 새것이라 버리기는 아깝지만 앞으로도 안 쓰게 되는 것은 확실하다. 식당을 하던 나로서는 음식을 만들 때 쓰기 위한 기계들을 많이 샀는데 이젠 안 쓰게 된다. 식구들 많을 때 요리를 쉽게 하기 위해 산 기계들인데 무용 지물이 되었다. 옷도 신발도 그릇도 모두 때가 있는 것이다. 가방도 여러 개 가지고 바꾸며 들고 다녔는데 지금은 가장 가볍고 작은 가방을 어깨에 메고 다닌다. 보기 좋은 것보다 쓰기 편한 것이 최고다.
모든 물건은 한두 개 여유로 있으면 된다. 무엇이든지 색색대로 사다 놓고 쌓아놓아야 좋은 줄 알았는데 모든 것이 짐이다. 살 때는 기분 좋게 사고 버리기는 힘들다. 지구는 물건이 넘치고 쓰레기가 넘친다. 사람들이 만드는 모든 것들은 결국 쓰레기가 되는데도 여전히 멈추지 않는다. 어제 뉴스를 보는데 플라스틱 용기 대신에 먹을 수 있는 용기를 만든다고 한다. 과자 같은 스푼에 음식을 넣어 팔면 쓰레기가 나오지 않는다고 하는데 어떤 결과가 나올지 궁금하다. 사람들의 편리를 위해 만들어진 플라스틱은 인류의 적이 되었다. 재활용은 불과 몇 프로밖에 되지 않는데 나머지는 어디로 가야 할지 한심하다.
3 년 만에 한 불꽃놀이는 성황리에 잘 끝냈는데 쓰레기는 산더미라는 한국 뉴스를 보고 놀란다. 국민 의식 운운해 봤자 얼굴에 침 뱉기다. 적어도 내가 먹은 쓰레기는 책임지면 좋을 텐데 참 안타깝다. 바다에는 낚시꾼들이 버리고 간 쓰레기가 넘치고 바다가 오염되면 결국 인간에게 다시 돌아온다. 어리석은 인간들은 언젠가 갈 곳이 없어져도 남 탓만 하고 있을 것이다. 물건을 안 사다 보면 조금은 도움이 될지도 모르는데 시장경제를 생각하면 안 쓸 수도 없다. 이래도 저래도 문제가 된다.
지금부터라도 덜 사고, 덜 만들고, 덜 버리는 것을 실천해봐야겠다. 꼭 필요하지 않으면 사지 말고 있는 것을 찾아 최대한으로 버텨보자. 어찌 보면 궁상을 떠는 것 같지만 쓰레기가 넘치는 지구를 위해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리라 믿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