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딘가 떠나고 싶은 마음이 드는 가을날이다. 그저 나무가 가을을 맞아 단풍이 드는 것뿐인데 괜히 마음이 싱숭생숭해진다. 유명하다고, 멋있다고 해서 가봐도 그렇고 그런데 가을이 되면 여행을 생각한다. 어디 가도 사람 사는 것 마찬가지고 집 떠나면 고생이라는 것을 아는데 멋지게 물든 가을에는 어딘가 멀리 가고 싶다. 집 앞에만 가도 멋진 풍경이 나를 기다리는데 굳이 멀리 갈 필요 없는 것을 알아도 너도나도 짐을 싸고 어디론가 떠난다. 가까이에 금광이 있는지 모르고 금을 캐러 멀리 떠난 광부가 금을 캐지 못하며 고생하다가 빈손으로 집으로 돌아와 뒤뜰에서 금을 발견하고 깨닫는다는 영화가 기억이 난다. 보물은 멀리 있지 않고 가까이 있다는 것을 경험해 보지 않으면 아무도 모른다. 멀리 가야 행복하고, 값진 물건을 사야 행복한 줄 안다. 하지만 멀리 가지 않아도, 값진 물건을 사지 않아도 얼마든지 행복할 수 있다. 뜰에 피어나는 들꽃에도 행복이 있고, 동네 숲에서 만나는 계곡에도 행복이 있다. 연보라꽃으로 들판을 덮던 들꽃이 헝클어진 하얀 머리로 서 있다. 예쁘던 모습, 곱던 모습이 계절 따라 변한 모습을 바라보며 하찮은 들꽃도 사람과 다르지 않음을 느낀다. 이 아름다운 계절에 혼자서 하얗게 씨를 물고 갈대처럼 서있는 모습은 한평생을 열심히 살아온 백발노인의 모습이다. 자연이 주는 아름다움에는 낡으면 낡은 대로, 늙으면 늙은 대로의 멋이 있다. 멀리 보면 그토록 아름다운 단풍도 가까이 가서 보면 낡고 해진 모습에 초라하다. 멀리 보이는 푸른 잔디도 가까이 가서 보면 여러 가지의 잡풀들이 많고 화장하여 아름다운 얼굴도 맨얼굴에는 잡티가 많다. 세월 이기는 장사가 없다고 한다. 오는 세월이 어디로 우리를 데리고 갈지 모른다. 아침에 일어나면 감사하고 저녁에 잠자리에 들면서 하루를 감사하기는 쉽지 않지만 감사라는 것이 별게 아니다. 건강하게 평안하게 지내는 것만이 아니고 내게 온 모든 것이 고맙다. 지나간 것을 생각하면 기적이고 앞으로의 세월은 희망을 가져온다. 아침에는 눈을 뜨고 하루를 맞이함에 감사하고 하루를 견디며 쉴 수 있는 저녁이 있음에 감사한다. 꽃이 피기 위해 눈보라를 견뎌야 하듯이 한 세상 살아가는 것이 쉽지 않다. 혼자 사는 것이 아니고 많은 사람들과 관계를 이어가야 한다. 학교생활, 직장 생활, 사회생활, 가정생활의 얽히고설킨 복잡한 관계는 우리를 살게 하는 끄나풀이다. 심각한 현대병의 하나가 관계를 이어가지 못하고 숨어 사는 사람들이 많다고 한다. 가족 중의 하나가 사회생활을 거부하고 집에만 있으면 식구들 조차 살아가기 힘들다. 못난 사람, 잘난 사람 함께 어우러져 사는 것이 건강한 사회인데 어디를 가도 끼리끼리가 형성되어 외톨이는 생긴다. 단풍을 본다. 어우러져 있을 때 가장 아름답다. 저마다의 색으로 늙어가는 모습이 더 좋다. 하나하나 따져보면 좋은 점도 나쁜 점도 눈에 보이지만 같이 있을 때는 모두 예쁘다. 굳이 따지자면 나무에 따라 단풍 모습도 다르기는 하다. 곱게 물들어가는 단풍이 있고 추하게 물들어가는 단풍도 있음은 부정할 수 없다. 노랗고 빨갛게 익어가는 단풍이 가까이 보면 삶을 정리하는 마지막 모습이다. 봄에는 너도나도 새잎을 만들고 여름에는 녹음이 져서 모르는데 하나둘 기운을 다하고 물들어 떨어져 가는 낙엽은 우리네 인생 같아 서글퍼진다. 그래도 멀리 보이는 단풍이 멋이 있어서 우리네 마음이 설레어 떠나고 싶게 만든다. 거리를 가다 보면 아직도 청춘 같은 푸르름을 지니고 꼿꼿이 서있는 나무가 있는 반면에 노랗게 물들인 나무가 있다. 먼저 왔다가 먼저 가는 것이고 자연의 섭리일 뿐 특별한 것이 아닌데 계절 따라 마음이 변한다. 봄이 오기도 전부터 봄을 기다리고 여름이 가기 전부터 가을을 생각한다. 가을이 이제 막 왔는데 겨울을 걱정하며 가을을 산다. 어차피 돌고 도는 세월 따라 계절도 오고 가는데 걱정하고 기다리고 그리워하며 산다. 계절이 갈 때마다 아쉬워하고 새로운 계절을 맞으며 겨울이 오기도 전에 봄을 기다리는 인간의 본능이다. 봄이 오려면 겨울이 다녀가야 봄이 온다는 것을 알면서도 겨울이 없었으면 좋겠다는 엉뚱한 생각을 한다. 여행을 가거나 집에 있거나 아름답게 익어가는 단풍에는 우리 모두들의 꿈이 있다. 추억을 생각하고 그리운 사람들을 그리워하며 막연히 좋은 날이 오기를 기대한다. 귀에 익은 오래된 유행가가 흘러나온다. 젊은 날 즐겨 부르던 노래라서 가사가 기억이 나서 따라 불러본다. 젊은 날들은 녹음처럼 가버리고 곱게 물들어 간다. 이제 내게 남은 세월이 얼마나 남았는지 모르지만 저기 보이는 단풍을 닮아가고 순응하며 받아들이는 연습을 해야 한다. 비가 오려고 바람이 불고 구름이 하늘을 덮는다. 아무리 아름다운 단풍도 떨어지고 언젠가는 나목이 되어 겨울을 보내야 한다. 가지고 있는 것이 많다고 전부는 아니다. 비울수록 가벼워지는 마음을 가지고 가을처럼 곱게 익어가고 싶다. 미련 없이 떨어지고 후회 없이 겨울을 맞는 나무가 대견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