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은... 계절과 세월을 따라간다

by Chong Sook Lee


어제 하루종일 비가 오더니 온도가 많이 내려갔다. 낮에 잠깐 외출할 때 두꺼운 재킷을 입고 다녔다. 여름은 떠난 지 오래고 가을조차 떠날 채비를 한다. 갑자기 추워지면 서리가 내릴 텐데 텃밭 정리를 하지 않아 걱정이지만 내일로 미루고 잠을 자고 일어났는데 아침에 일어나 보니 지붕에 서리가 하얗게 내렸다.

이런…
설마 서리가 올 줄이야..

텃밭에 남아있는 채소들이 얼어 죽었다고 생각하니 가슴이 철렁 내려앉는다.
귀찮아도 어제 정리를 했어야 하는데..
속이 상한 마음으로 밖에 나와 텃밭을 보니 다행히 채소들은 서리를 피했다. 오이, 고추, 토마토가 춥지만 견디고 서 있다. 몇 개 남지 않은 오이와 고추 그리고 아직 덜 익어 시퍼런 토마토를 따보니 괜찮다. 아... 다행이다.


얼마 되지 않지만 얼어 죽었으면 속상했을 텐데 추위를 견딘 채소들이 기특하다. 나는 조금 춥다고 두꺼운 재킷을 꺼내 입으며 채소들은 돌보지 않고 그냥 밭에 놓아둔 채소들에게 미안하다. 오늘은 비가 오지 않으니 조금 있다가 날이 따뜻해지면 추수를 해야겠다. 유난히 서리에 약한 깻잎은 이미 며칠 전에 뽑아서 깻잎 김치를 담가 놓았다. 오이와 고추를 따고 고춧잎도 따서 삶아서 고추장에 묻혀 먹고 토마토는 따뜻한 부엌에 놓아두면 빨갛게 익을 것이다. 파와 부추는 그런대로 추위를 견디니 두고 봐야 한다.

해마다 뒤뜰에 소꿉장난 하듯이 몇 개 안 되는 텃밭 농사를 짓는다. 해마다 기후에 따라 텃밭농사가 다른데 올해는 생각 외로 잘 되어 만족한다. 물을 좋아하는 오이와 고추를 해가 잘 드는 남쪽땅에 심었다. 남편은 아침저녁으로 정성을 다해 물을 주며 채소들과 대화를 한다. 덕분에 옆에서 자라는 장미와 금잔화 그리고 코스모스는 덩달아 물을 주게 되어 여름 내내 예쁜 꽃을 선물한다. 옆에 있는 채소덕에 더 많은 양의 물을 마셔서 인지 다른 해보다 훨씬 풍요롭게 피는 꽃들을 오며 가며 본다. 코스모스는 봄에 지인이 모종을 몇 개 가져다주었는데 물 덕분에 엄청 크게 자란 것을 보고 물이 얼마나 중요한지 실감한다.

요즘에는 물과 소금에 대한 글을 많이 접하게 된다. 사람의 혈액은 물과 소금으로 이루어진다고 한다. 사람이 물과 소금이 부족하면 여러 가지 건강상의 문제가 생긴다고 한다. 노쇠현상도 수분이 부족하면 생겨난다고 한다. 뇌도 몸이기 때문에 뇌에 수분이 부족하면 치매가 온다고도 한다. 과학자들이 알아낸 상식이지만 생각해 보면 그 말이 일리가 있다. 소금을 많이 먹으면 그에 따른 부작용이 많이 있지만 너무 안 먹어도 몸이 제대로 된 기능을 할 수 없다고 한다.


어릴 적 나는 해마다 봄가을 환절기에 몸살을 한차례 씩 앓았다. 그때는 특별한 약이 없어 하루 심하게 앓고 나면 엄마가 사다 주시는 시원한 배를 먹고 나면 씻은 듯이 나았다. 어린 나이고 큰 병이 아닌 감기몸살이었지만 배에는 특별한 것이 있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앓고 난 나에게 엄마는 늘 하시는 말씀이 있었다.

"사람의 몸은 계곡과 같다. 가물으면 계곡에 물이 없어 여러 가지 벌레들이 생겨나는데 비가 오면 물로 모든 더러운 것들을 씻어 내려가서 병충해가 없어진다. 그런 것처럼 사람도 물을 많이 마시면 창자가 깨끗해지고 병도 없어진단다. 배가 병을 낫게 하는 이유도 그와 비슷하다. 몸에 물이 부족하면 기능을 제대로 할 수 없어 병이 난다. 평소에 물을 많이 마셔라."

어린 나이에 이해하기 어려운 엄마말씀에 고개만 끄덕였는데 세월이 가고 엄마가 되고 할머니가 되니 이제야 이해가 간다.
수분부족은 생명과 깊은 관계가 있지만 염분 부족 또한 아주 위험하다.
물과 소금을 적당히 섭취함으로 혈액이 제대로 일을 한다. 여러 가지 현대병이 수분과 염분 부족으로 생겨난다고 지나치게 섭취하면 그것 또한 위험하다. 과유불급이라고 지나치면 모자람보다 못하다고 한다. 인터넷에 떠돌아다니는 잘못된 상식을 무조건 믿으면 안 되고 무조건 거부해서도 안된다. 도움이 될 것 같으면 과하지 않게 시험해 보는 것도 나쁘지 않다.

서리가 오면 겨울이 다가오고 머지않아 눈도 내릴 것이다. 텃밭을 정리하면 한 해가 간다. 여름 내내 식탁에 올라 식욕을 돋아주던 채소 밭은 내년 봄을 향한 안식을 할 것이다.
아침마다 일어나서 물을 주고, 밤새 자란 채소를 보는 즐거움은 없지만 겨울 안에서 봄은 올 것이다. 삶은 이렇게 계절과 세월을 따라 이어진다.
좋은 시절이나 힘든 시절이나 과거가 되어 묻히고 새날을 향해 걸어간다.


(사진:이종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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