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매일이 소중한 날

by Chong Sook Lee


누구나 자신만의 특별한 날이 있다. 생일이나 기념일을 비롯해서 기억에 남아 지워지지 않는 날이다. 사랑하고 실망하고 절망한 날이 있고 기쁨에 넘쳐 희열이 넘친 날도 있고 슬픔에 빠져 일어설 수 없이 쓰러진 날도 있다. 결코 다시는 일어설 수 없을 줄 알았던 시간도 세월 따라 흐릿해지고 희미해지지만 기억 속에 남고 추억이 되어 그날들을 기억하게 된다. 좋았던 날들은 세월이 가도 여전히 나를 기쁘게 한다. 가슴 떨리던 날들을 생각하면 지금도 가슴이 설렌다. 학교 교정을 친구들과 같이 걸으며 앞으로 만날 미래에 대해 이야기하며 하얀 아카시아 꽃이 흐드러지게 만발할 때 꽃을 손으로 잔뜩 훑어서 먹던 장난꾸러기 시절도 생각나고 운동부에 들어서 이런저런 운동을 하는 선후배 들과 같이 몰려다니며 어깨를 으쓱거리던 것도 생각나고 운동이 끝나면 맛있는 음식을 먹던 것도 추억이 되었다.


학교를 졸업하고 신문 광고를 보고 인터뷰를 하고 직장을 잡았을 때 참으로 좋았던 기억이 새롭다. 첫 출근 하던 날을 위해 동네에 있는 양장점에서 옷을 두벌 맞춰주시던 엄마가 보고 싶은 날이다. 하얀 와이셔츠와 검은색 조끼와 나팔바지를 입고 긴 머리를 찰랑대며 걸어오던 나의 모습이 너무 예쁘다고 하시던 아버지도 그립다. 미니 스커트가 유행하던 때에 연두색 투피스를 맞춰주시고 하이힐을 사주셨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하다. 친구들과 야간열차를 타고 가서 등산을 하고 산꼭대기 정상에서 ‘야호’를 외치던 날들이 그립다.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서 연애를 하고 결혼을 하고 고국을 떠나 캐나다로 이민을 와서 세 아이를 낳아 기르는 세월 동안 참으로 많은 일들이 기억 속에 추억이 되었다. 감사한 일도 많고, 미안한 일도 많고, 더 이상 생각하고 싶지 않은 잊고 싶은 일도 많다. 이민 온 지 24일 만에 큰아들을 낳고 향수병으로 울며 고국을 그리워하였고 갑작스레 닥친 경제 공황으로 직업을 잃고 둘째는 세상에 나오려고 하던 날, 여러 가지로 신경을 너무 많이 쓰다 보니 생각지 못한 제왕절개술을 하게 되었다. 세상은 그야말로 알 수 없는 길을 걸어가는 것이다.


세상은 더 어지러운 상태로 직업을 잡기 어려웠지만 남편은 틈틈이 공부를 하여 자격증을 따고 직업을 잡으며 셋째도 태어나 다섯 식구가 되었다. 세 아이들은 잘 자라고 열심히 일을 하고 사업을 하며 세월이 어떻게 지나가는지 모르게 나이가 들어 정년퇴직을 했다. 아이들은 모두 짝을 만나 아이들을 키우며 열심히 살고 어느새 손주들이 다섯이나 되어 둘이 와서 열 세 식구가 되었다. 하루하루가 지나 일 년, 이 년이 지나고 십 년, 이십 년이 지나 이민 43년이라는 세월이 흘렀다. 좋은 일도 많았고, 기쁜 일도 많았고, 힘들고 슬픈 일도 많았지만 수많은 세월이 흐르는 동안 건강을 허락해 주심에 감사한다. 한때는 더 많은 것을 바라고 높이 오르기를 바라기도 했지만 지금 이대로가 행복하다.


누구나 정해진 운명 속에 정해진 길을 걷는 것이다. 원하는 것이 많아도 내 것이 아니면 나를 떠난다. 내것은 없다. 바람은 잡을 수 없고 스쳐 가는 것처럼 이 세상 모든 것들은 나를 스쳐갈 뿐이다. 인간은 죽음을 안고 태어나고 만남은 이별을 예고한다. 하지 못한 것들은 남은 이들의 몫이고 하루하루 나의 몫을 하면 된다. 하고 싶은 것을 하지 못한다고 불평할게 아니고 할 수 있는 것을 찾아서 하면 된다. 멀리 가야만이 여행이 아니고 가까운 곳에서 좋은 곳을 찾는 것도 좋다. 만날 수 없는 사람을 그리워하며 사는 게 인생이지만 가까운 곳에 있는 사람들과의 교류를 하면 된다.


원하는 모든 것들을 이루기는 어렵지만 꿈을 가지고 추진하다 보면 언젠가는 꿈을 이룰 수 있다. 살아온 날들이 지금의 내 모습을 만들었고 앞으로도 이어질 것이다. 남들에게는 특별하지 않은 것도 내게는 특별할 수 있다. 지워지지 않는 추억은 나를 이끌어 주는 원동력이 되어 살아가게 한다. 기적은 아무런 일 없이 잘 넘어가는 것이라고 한다. 특별한 것을 바라지 말고 하루를 잘 살아가다 보면 원하는 것을 만나게 된다. 심심하다고 생각하던 날들이 지나고 보면 특별한 날들이 된다. 무언가를 하려고 하지 않아도 내게 오는 순간들은 특별한 인연이다. 지나칠 수도 있는 순간들이 나를 찾아오는 것이다.


우연히 만난 친구와 식사를 하며 옛날이야기를 하며 많이 웃은 날이다. 오래전 같이 여행을 가면서 생긴 일이다. 쭉쭉 뻗은 고속도로를 가다 보면 자신도 모르게 속도를 내게 될 때가 있다. 한참 달리고 있는 우리를 보고 반대편에 있던 경찰이 속도위반을 한 남편을 발견하고 쫓아오는 줄도 모르고 내 뒤를 따라오던 친구가 갑자기 속도를 내어 나를 따돌리고 앞으로 가는 것을 보던 경찰이 친구차를 향해 가는 것이 보였다. 남편은 속도를 줄이고 뒤를 따라 가는데 경찰은 친구차를 잡아 세우는 것이 보인다. 친구는 그때서야 속도위반 한 것을 알았지만 이미 때는 늦었다. 경찰이 잡으려고 한 남편보다 더 빠른 속도로 달려가는 친구를 잡은 것이다.


세월이 많이 흘렀는데 그때 이야기를 하면 지금도 웃음이 난다. 과속 운전으로 벌금을 냈지만 좋은 추억으로 남아 있다. 지나간 이야기를 하며 철없던 날들을 추억한다. 자꾸만 짧아져 가는 해가 오늘이 지나면 조금씩 길어진다. 어느새 가버린 한 해를 기억하며 새로 찾아오는 해를 맞을 준비로 바쁜 때이다. 좋았던 날도, 힘들었던 날도 다 지나간다. 날마다 찾아오는 새날에 감사하며 미련 없이, 후회 없이 살아야겠다. 시간이 지나면 매일매일이 추억이 되고, 기억하고 싶은 날이 된다.


(사진:이종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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