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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Chong Sook Lee Nov 08. 2020

오는 계절 막지 말고... 가는 계절 잡지 말자


마가목 열매가 하얀 모자를 쓰고 있다.(사진:이종숙)




눈이 펑펑 쏟아진다. 어제는 가을이었는데 잠자고 일어났더니 겨울이 되었다. 천지가 다 하얗다. 며칠 동안 눈이 오고 싶어서 찌뿌둥하던 하늘이 하얀 눈을 쏟아낸다. 얼마 전 첫눈이라고 오긴 했지만 시시한 눈발을 날리다 말았는데 오늘은 작정을 했나 보다. 한번 오기 시작하면 무서울 정도로 많이 오기 때문에 얼마나 올까 하며 하늘을 본다. 하얀 눈처럼 눈을 잔뜩 담은 하늘도 하얗다. 저 하얀 하늘이 눈을 다 쏟아내고 나면 파랗게 되겠지만 일기예보로는 오늘 하루 종일 10센티의 눈이 올 것이라고 했지만 이대로 오다가는 30센티 이상 올 것 같다. 새벽에 눈을 떴을 때는 오지 않았는데 아침이 되자 함박눈이 내리며 온 세상을 하얗게 덮어간다. 지붕도, 피크닉 테이블도, 나뭇잎에도 눈이 소복하게 쌓여 있다. 마가목 나무의 빨간 열매도 하얀 눈이 쌓여 마치 열매가 하얀 모자를 쓴 것처럼 예쁘다.



(사진:이종숙)



이제는 겨울이 되어 좋은 시절 다 지나간 것 같지만 좋은 시절과 가까워지고 있다고 믿고 싶다. 겨울이 깊어갈수록 봄이 가까워지는 것이니 좋다. 겨울은 춥고 암울하고 어둡지만 봄과 가장 가까운 계절이다. 우리의 삶도 바닥으로 내려가 앞이 깜깜하고 내일을 알 수 없을 때가 있다. 앞으로 가지도 못하고 뒤로 물러설 수 없을 때도 있지만 우리가 모르는 어딘가에서 희망의 꽃은 피고 있다. 실망과 희망은 가장 가까이 있는데 절망이라는 마음이 눈을 가리게 한다. 눈은 계속 내린다. 길 건너 학교 운동장에 있는 언덕에서 아이들이 미끄럼을 타며 신나게 논다. 눈이 많이 오고 추운 이곳은 겨울 스포츠가 많다. 눈이 온다고, 춥다고, 그냥  집안에만 있을 수 없고 유난히 겨울이 길기에 나름대로 놀 거리를 찾지 않으면 긴 겨울을 보낼 수가 없다. 스키를 타고, 스케이트를 타고, 아이스하키를 하고 언덕에서 미끄럼을 탄다.



(사진:이종숙)



넘어지고 뒤집히며 오르내리는 아이들은 피곤하지도 않은지 좋기만 하다. 아이들의 웃음소리가 동네를 깨운다. 나무에도, 지붕 위에도, 눈이 자리를 잡고 편하게 누워있다. 겨울이 맛만 보여주고 가을로 돌아가서 겨울이 늦게 오려나보다 생각했는데 오산이었다. 지난주만 해도 '인디언 서머'가 와서 덥다고 좋아했는데 냉정한 계절은 지맘대로  한다. 가고 싶을 때 가고, 오고 싶을 때 온다. 기다린다고 오지 않고, 오지 말라고 해도 온다. 오지 않을 것 같아 좋아하면 오고, 가지 않을 것 같아 좋아하면 가버린다. 내 맘을 전혀 모른다. 그래도 괜찮다. 어느 날 살며시 찾아와 날 놀래 줄 것을 알기에 받아들인다. 이민 온 지 얼마 안 되어 8월 중순에 첫눈이 온 해가 있었다. 그렇게 일찍 눈이 와서 사람들을 겁을 주더니 12월까지 눈이 안와 사람들은 걱정을 했다.




(사진:이종숙)



이대로 가다가는 하얀 크리스마스가 아니고 밤색 크리스마스가 될 것이라고 걱정을 했는데 여전히 눈이 오지 않았다. 크리스마스 날 사람들은 오토바이를 타고 가벼운 옷을 입고 거리를 산책하며 이대로 가면 이곳에 인구가 폭등할 것이라는 농담도 하였다. 연말이 지나고 1월 중순이 되자 무서운 겨울이 시작되었다. 갑자기 영하 30도 이하로 내려가고 눈이 무릎까지 오는 날이 계속되어 세상은 눈으로 덮여있고 사람들은 꼼짝없이 집 안에 갇혀있어야 했다. 이곳보다 더 많은 눈이 온 다른 주는 군인까지 동원하여 제설작업을 하였다. 눈이 돌아다니며 심술을 놓는 바람에 사람들은 정신을 못 차리고 늦게 온 겨울을 천천히 보내야 했다. 계절이라는 것이 조금 늦게 올 수도 있고, 조금 일찍 올 수도 있는데 조금 늦으면 안 오기를 바라고 조금 빨리 오면 벌써 왔나 해서 눈총을 준다. 계절이 알아서 하는데 사람들은 안달하고 재촉한다.




(사진:이종숙)



 무섭게 변하는 세상에 못 만드는 것이 없는 인간은 계절만큼은 어쩌지 못한다. 기계로 눈도 만들고 인공지능의 인간도 만드는데 자연은 거스를 수 없다. 그것이 우리 인간에게 마지막 남은 유일한 희망인 것 같다. 무언가를 한없이 연구하여 자연까지 인간이 좌지우지하는 세상이 올까 은근히 걱정이 된다. 아무것도 모르고 살던 때 천재지변이라고 믿었던 일들을 조금씩 미리 알고 준비하며 살아간다. 과학이 발달하여 무수한 생명을 구한 것은 참으로 위대하다. 눈이 하염없이 내리는 모습을 바라보며 가을을 눈으로 덮는 겨울과 만난다. 쌓이고 녹고 또 쌓이다가 해가 길어지고 눈이 녹기 시작하며 봄을 만날 때까지 기다려야 한다. 올봄 코로나가 생겼을 때 한국을 비롯해 다른 나라는 확진자수가 많아져 무수한 사람들이 아프고 죽었는데 이곳 캐나다는 어느 정도 확산을 줄이며 잘 넘어갔다.




(사진:이종숙)



하지만 날씨가 다시 추워짐과 동시에 확산하기 시작하더니 지금은 심각한 단계까지 가고 있다. 오늘내일 사이로 캐나다에 눈이 많이 온다 하는데 눈으로 코로나 바이러스를 다 없애 버렸으면 하는 엉뚱한 바람을 해본다. 경제도, 사람들의 생활도 엉망인데 제발 없어지면 좋겠다. 창문을 내다보니 길거리는 길인지, 도로인지 구별을 못 하겠다. 아침 7시부터 내리기 시작한 눈이 8시간 동안 계속 내린다. 앞으로 얼마나 더 내릴지 모른다. 아침 10시 반에 나가서 눈을 치고 왔는데 그 뒤로 계속 내려 다시 치워야 해서 남편과 나는 다시 겨울옷을 단단히 입고 집 주위에 내린 눈을 치러 나갔는데 아침보다 더 많이 왔기 때문에 한쪽으로 밀어 쌓았더니 눈 산이 하나 생겼다. 한꺼번에 치우려면 힘이 들기 때문에 틈틈이 치운다. 단독주택에 사니 여름에는 잔디 깎느라고 힘들고 겨울에는 눈 치우기 힘들지만 운동도 할 겸 기쁘게 한다. 가까이 사는 둘째 아들이 눈을 치워주겠다고 전화가 왔지만 괜찮다고 했다. 우리가 할 수 있을 때까지 우리 힘으로 하려 한다.


어제는 갔다. 오늘 이렇게 많은 눈이 올 줄 모르고 잤다. 내일을 모르는 우리네들이다. 아무리 과학이 발달되었다 해도 자연이 하는 일을 말릴 수 없다. 계속해서 내리는 눈을 보며 오고 싶을 때까지 올 테면 오라는 말밖에 할 말이 없다.


영화 '닥터 지바고'에 나오는 한 장면을 떠올리며 하염없이 내리는 눈을 바라본다. 오지 않을 것 같던 겨울이 친구 하잔다. 오는 계절을 막지 말고 가는 계절을 잡지 말아야 할 것 같다.



(사진:이종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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